남겨진 가을

 

이재무

 

움켜쥔 손안의 모래알처럼 시간이 새고 있다

집착이란 이처럼 허망한 것이다

그렇게 네가 가고 나면 내게 남겨진 가을은

김장 끝난 텃밭에 싸락눈을 불러올 것이다

문장이 되지 못한 말(語)들이

반쯤 걷다가 바람의 뒷발에 채인다

추억이란 아름답지만 때로는 치사한 것

먼 훗날 내 가슴의 터엔 회한의 먼지만이 붐빌 것이다

젖은 얼굴의 달빛으로, 흔들리는 풀잎으로, 서늘한 바람으로,

사선의 빗방울로, 박 속 같은 눈꽃으로

너는 그렇게 찾아와 마음의 그릇 채우고 흔들겠지

아 이렇게 숨이 차 사소한 바람에도 몸이 아픈데

구멍 난 조롱박으로 퍼 올리는 물처럼 시간이 새고 있다

 

 

시감상

손 안의 모래알처럼 시간이 새고 있다는 말이 와닿는다. 집착도 집착이지만 세월도 그렇다. 하냥 지금일 것만 같은 지금도 내일이면 과거가 된다. 며칠 비가 내리더니 가을이 모래성처럼 사라져 간다. 겨울이 오면 가을을 잊을 것 같은데 늘 가을은 잊지 못할 계절로 남아 있다. 유독 가을에 대한 기억이 많은 것은 누구나 같은 모양이다. 2021년도 가을, 우린 과연 무엇을 남기려나? 혹은 기억하려나? 없다면 지금부터 만들어야겠다. 물처럼 시간이 새고 있다.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프로필

충남 부여, 동대 대학원 국문과, 편운 문학상 외, 시집 <푸른 고집>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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