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열쇠

 

김남수

 

까치산 가는 길에 열쇠 집이 있습니다

 

사거리 신호등 여닫힐 때마다 ‘1급 기능사의 집’ 펄럭이는 입간판이 혼자 분주한 국제열쇠

허리끈 같은 도로를 오토바이에 걸쳐놓고 강씨가 공구함을 집어 듭니다

벽면 주렁주렁 열린 눈 없는 열쇠들 지루하게 늙어가고 ‘잠시 외출 중입니다’

아크릴 간판이 오후 세 시를 잠급니다

 

덜덜거리는 오토바이가 ‘30초 복제완성’ 국제열쇠를 꽁무니에 싣고 구름놀이터로 올라갑니다

산 번지 골목들이 차례로 열립니다

 

야근 서두르는 달맞이꽃 하나둘 제 몸 여는 언덕 아래 대추나무집,

몇 년째 소식 끊긴 아들 기다리던 어머니는 세상 문을 닫았습니다 이웃들 왕래마저 빗장을 잠갔습니다

 

지도가 외면한 골목들 철컥철컥 여는 사내,

만능 국제열쇠도 벼락 맞은 대추나무집 녹슨 어미 가슴을 열지 못했습니다

 

시감상

열쇠집이 많았었다. 지문이나 번호가 아닌 열쇠로 열어야 열리는 집이 대부분이던 시절. 열쇠집 아저씨는 못 여는 문이 없었다. 깜박하거나 잃어버리거나 분실했거나 열쇠 아저씨에게 전화하면 득달같이 와서 잠긴 문을 열어주셨다. 점점 익숙한 것들이 사라져 간다. 열쇠집, 전파사, 사진 현상소, 레코드 가게. 어쩌면 낭만이라는 것도 그렇게, 이웃이라는 것도 그렇게, 국제열쇠가 녹슨 어미 가슴을 열지 못했듯 우리들의 빗장도 꽁꽁 잠겨 밖으로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못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분실한 열쇠를 찾아야 할 계절이다. (글/ 김부회 시인, 문학평론가)

 

프로필

충남 부여, 평화신문 신춘문예 당선, 서울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시집 <장미가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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