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우리동네17 <사랑의 목격>

인생 책 한 권을 소개하라는 것은, 책방지기인 내게도 어려운 일이다. 손님들의 취향에 맞게 좋아할 만한 책을 추천해주는 일은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정말 소중한 인생 책 하나만 꼽아보라고 한다면 난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아마 누군가 내 이마를 치며 땡! 이라고 말해주기 전까지, 나는 있는 힘껏 눈알을 굴리며 그간 읽었던 책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고 있을 것이 뻔하다.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스피드로 책들을 훑는 것이 목적이지만, 아마 나는 해맑은 나무늘보처럼 이 책 저 책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아 이 책도 좋았지, 이 책도 좋았는데, 아 이것도 좋았고~’ 하다가는 이내 ‘어휴~ 세상에 좋은 책이 얼마나 많은데…’하고, 되려 책 하나만 골라보라고 한 사람을 원망하는 표정으로 노려봤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도 이 책방에서 단 한 권의 책만 팔아야 한다고 한다면, 나는 본능적으로 책장으로 뛰어가서는 최유수 작가님의 <사랑의 목격>을 집어 들었을 것이다. 분홍색의 띠지가 귀엽게 둘러싸여 있는 옅은 회색의 책. 손안에 폭 들어오는 작은 책.

 

나의 최측근들은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나는 사랑꾼이다. 사랑꾼이라 해서, 흔히 생각하는 남자친구밖에 모르는 그런 가벼운 이미지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 방금 네이버에 ‘사랑꾼’하고 검색을 해봤는데.... (그런 느낌의 사랑꾼이 아니라, 더 고차원의 의미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근데 이럴 수가!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 사랑하는 사람에게 온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나온다. 하하. ‘나 빼도 박도 못하는 사랑꾼이네’ 그렇다. 뭐 아무렴 어떤가. 나는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이 맞으니.

 

온 정성을 다했던 사랑이 끝난 지난여름, 나는 한동안 마음이 몹시 공허했었다. 나의 20대를 함께했던 오랜 연애를 끝낸다는 것은, 마치 살점을 도려내는 일 같았기에. 아니, 정말로 심장을 꺼내는 것처럼, 내 삶에서 ‘사랑’이라는 것 자체가 사라져버렸다고 느끼던 날들이었다. 누군가를 만나서 다시 감정을 교류하고 사랑하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 내가 사랑에 대한 배신감, 그런데도 어쩔 수 없는 그리움으로 인해 날마다 울면서 밤을 보낼 때마다, 늘 내 곁에 있어 주었던 책이 바로 이 녀석이다. <사랑의 목격>

 

이 책은 내게 말을 건넸다. 이별은 정말 슬픈 것이라고. 하지만 누군가와 이별했다고 해서 결코 너의 사랑이 끝난 것이 아니라고. 너의 사랑은 온전히 네 안에 남아있다고. 네가 머무는 집의 창가와 테이블 위와 말라버린 커피잔 안에도, 고스란히 너의 사랑이 존재한다고.

 

그때 나는 처음으로, ‘사랑’이란 것이 꼭 누군가와 나누어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사랑은 그저 자기 자신을 지속하기 위해 우리의 목소리를 빌리는 것뿐이라고. 사랑한다는 말은 어쩌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건네는 말이 아니라, ‘사랑’이 우리에게 건네는 말인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존재하는 사랑은, 쉬지 않고 나를 돌보아주었고, 서서히 나의 마음을 회복시켜 주었다.

 

덕분에 여전히 나는 사랑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늘 사랑에 관심이 많고, 가장 소중히 여기고, 때로는 그게 삶의 목적이 되기도 하고, 그 어떤 경제적인 성공이나 명예를 이루는 것보다 가장 잘 이뤄내고 싶은 가치일 만큼. 물론 앞으로도 예상할 수 없는 이별을 또 겪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또다시 배신감과 그리움으로 베개를 눈물로 적시는 날들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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