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우리동네16 <페미니스트입니다만, 아직 한드를 봅니다>

<오징어게임>이 장안의 최고 화제다. 어디 한국뿐이랴. <오징어게임>이 전 세계 넷플릭스 차트를 싹 쓸었다는 소식과 함께, 출연배우들의 SNS 팔로워가 수십 배 늘었다는 뉴스, 어느 나라에서는 드라마 속 설탕 뽑기 이벤트에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는 뉴스도 들려왔다.

 

<오징어게임>만이 아니다. 최근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하는 콘텐츠에서 한국 드라마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확실히 이전 지상파 채널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장르 드라마들의 선전이 돋보인다. 드라마와 책은 여러모로 관계가 깊다. 출판된 소설이나 만화가 드라마화 되는 경우도 많고 반대로 인기 드라마가 책으로 출판되기도 한다.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말이 있다. 쉽게 미디어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인데 드라마 비평도 이에 속한다. ‘한국드라마에 여전히 기대하는 당신을 위한 이야기’라는 부제를 가진 <페미니스트입니다만, 아직 한드를 봅니다>(권순택, 김세옥 저/탐탐)는 미디어 리터러시, 특히 젠더적 관점에서 인기 드라마들을 살펴보고 있다.

 

한국드라마는 너무 뻔하다. 막말로 의학드라마는 병원에서 연애하는 이야기고, 법정드라마는 검사와 변호사가 연애하는 이야기라는 말도 있지 않나? 그간 한드에 내려졌던 일반적인 평이다. 그 대안으로 미드니, 일드니 최근에는 넷플렉스로 드라마도 국적을 탈피하고 있는 듯하다.

 

저자는 미디어 전문매체의 전직기자이자 언론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세옥, 권순택 씨. 긴 제목과 부제에서 연상되듯, 두 저자가 한국드라마 속의 돋보이는 여성 캐릭터와 여성 서사를 짚어내고 이후 저자를 비롯한 몇몇 미디어 활동가의 토론, 일명 수다를 담았다. 소환되고 있는 드라마는 <슬기로운 감빵생활>, <슬기로운 의사생활>, <동백꽃 필 무렵>, <스카이캐슬>, <부부의 세계> 등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작품들.

 

책 속에 언급된 드라마를 대부분 시청하지 않았지만, 읽고 이해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 ‘수다회’라고 명명된 드라마 토론은 아주 일상적인 언어로 구성되어 있고 각 드라마의 의의와 한계를 분명히 짚고 있다. 아직 한국드라마가 벗어나지 못한 가부장적 시선 중 하나를 언급하자면,

 

남성연대의 조직일수록 여성들의 자리는 좁디좁고, 여성들이 그 안에서만 경쟁하길 부추긴다. 90을 가진 남성들끼리의 적대는 거창한 정치로 취급하면서도, 여성들의 경쟁은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멸시의 언어로 쉽게 조롱한다. (JTBC 미스티, 108p)

 

현실 여성들의 모습은 드라마 속 여성들과는 괴리되어 있다. 사실 드라마가 현실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드라마 속의 판타지나 설정을 우리의 현실에 이입시켜 스스로를 부정적인 시선 안에 가두기도 한다. 한편 드라마가 보여줄 수 있는 바람직한 연대의 방향성도 제시한다.

 

용기는 낼 만하니 내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낼 수밖에 없기에 용기다. 극의 마지막 박차오름의 용기는 결과적으로 실패했지만 의미 있는 연대의 첫발을 만든다. …틀리지 않지만 불편한 이야기를 던지는, 그리하여 내가 알고도 혹은 알지 못해 외면하던 현실을 직면하게 만드는 더 많은 박차오름의, 더 많은 불편한 목소리가 소중한 이유다. (JTBC 미스함무라비, 44∼45p)

 

아무튼 한 가지는 분명하다. 한국드라마가 발전하고 있는 이유는 분명 창작자들과 제작환경의 변화에도 있지만 이를 소비하는 시청자들의 변화도 한몫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 ‘방구석 ○○’라는 말이 유행이다. 방구석 드라마 폐인까지는 아니어도, 오늘은 뭘 볼까 고민하며 TV 채널을 돌리고 있을 당신. 재미있게 드라마를 보자. 그리고 드라마를 읽자. 예전 어른들은 TV를 바보상자라고 불렀는데, 이제 더 이상 바보상자가 아니란 것을 우리는 안다. 드라마를 보는 것이 아닌, 드라마를 읽는 당신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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