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다

 

양애경

 

젊은 사람들이 자라서 떠난 동네 입구

동네 노인이랑 채소 행상 나온 노인이랑 한담 중이신데

앉으신 의자가 로코코식이다

 

핑크색 몸에

크림색 꽃무늬가 있는 그 의자

길가 담장 옆에선 너무 튀는데

예식장에나 어울릴 법 한데

 

의자 다리가 동그스름하게 양쪽으로 휘어진 건

관절염으로 휘어진 어르신들 다리와 닮긴 닮았다

 

작은 상자 위에 집에서 따 온 파란 호박 몇 덩이 놓고

어르신, 무슨 정담이 그리 깊으신지

핑크색 로코코 의자 푹 퍼져 있고

그 위에 얹은 엉덩이 푹 퍼져 있고

 

버려진 핑크색 로코코 의자와

노인들

따스운 가을 햇빛 아래

쉰다

의자 다리가 흙에 둥그렇게 파묻힐 때까지

 

시감상

로코코식 의자라는 말이 눈에 확 들어온다. 핑크색 몸에 크림색 꽃무늬. 노인들이 앉아 있다. 젊은 날의 한때, 나 역시 로코코식 색감과 문양과 꽃무늬로 장식하고 살았는데 나이 들어 로코코는 관심도 없다. 다만, 의자일 뿐. 잠시 쉬는 마을 회관 앞 의자일 뿐. 시를 읽으며 하루가 저물어가는 풍경을 떠올린다. 인생이란 모든 관심에서 나를 놓으며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로코코든, 분홍이든, 꽃무늬든, 따스운 가을 햇빛에 비할 것인가?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놓아두자.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프로필

문학박사,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내가 암늑대라면>외 다수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