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인 홍길동

 

이동재

 

운전면허 갱신 기간이 지난 아내를 따라

범칙금을 납부하러 파주경찰서에 간 날

거기서 다시 그를 만났다

고소고발인 홍길동

민원인 홍길동

분실신고자 홍길동

사백 년째 민원인으로 혹은 그 대리인으로

그는 서류에 이름을 남기고 있었다

대출을 받으러 농협에 간 날은

거기서도 그를 만났다

원래 근본이 없는 인간이라 그런가

그는 수백 년째 그렇게 민원인으로

대출자로 고소고발자로

온갖 민형사 사건의 주인공으로

부동산 금융 기관의 단골 대출 고객으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었다

아직도 호부호형이 문제인지

빽 없고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의 대명사로

그는 여전히 이름을 팔고 있었다

민원인 이름에 그를 지우고 잠시 여경의 눈치를 보다가

진시황, 이건희, 오바마, 전두환의 이름을 써본다, 써봤다.

상대가 놀란다. 그렇게 겁박해봤다. 마음 속으로.

 

시감상

홍길동은 은행 대출 안내문에도, 세금 고지서 안내문에도, 본문의 말처럼 빽 없고 돈 없는 사람들의 대명사로 존재하고 있다. 나도 어디선가 내 이름이 들어갈 자리에 홍길동이라고 쓰여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오랜 기억의 어디쯤 홍길동으로 각인 되어있을지도 모르는 이름. 어쩌면 산다는 것은 온통 대명사로 가득 채우는 일 같다. 누구 엄마, 누구 아빠, 누구네 누구. 마치 대명사로 사는 것이 옳은 일이라며 삶을 가득 채우는 나의 대명사들. 가을이다. 아내 이름을 슬며시 불러보자. 커피 한잔하자며. 이름을 불러본 지 참 오래되었다.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프로필

인천 강화, 문학과 의식 등단, 시집 <세상의 빈집>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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