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김포, 김포형 도시재생의 길을 찾다_8 사례에서 배우다⑤ 아이디어가 다한다

도시가 성장하면 반드시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낡은 도시를 모두 없애고 다시 짓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아니라 느리지만 생활 터전과 공동체를 유지하며 활력 잃은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는 ‘재생’은 힘들지만 의미 있다. 도시재생 초기단계인 김포.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편집자 주>

 

1. 김포 도시재생사업 현황 진단

2. 도시재생사업, 무엇이 중요한가?

3. 도시재생지원센터의 역할을 묻다

4. 사례에서 배우다① 주민 의지의 중요성

5. 사례에서 배우다② 주민협의체의 적극성

6. 사례에서 배우다③ 유관기관과의 협력

7. 사례에서 배우다④ 거버넌스의 힘

8. 사례에서 배우다⑤ 아이디어가 다한다

9. 사례에서 배우다⑥ 서울가꿈주택 집수리 지원사업

10. 사례에서 배우다⑦ 상권이 살아야 성공

11. 사례에서 배우다⑧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12. 주민, 행정, 전문가가 말하는 김포 도시재생 방향

▲6월 말 제주 도시재생지원센터 상생모루에서 열린 광해군 테마 상품 품평회 모습
 
도시재생사업은 그 지역의 물리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적 자원을 활용해 활성화를 꾀하게 된다. 물리적 자원을 활용해 좀 더 나은 공간을 만들며 사회 공동체가 회복되기도 하고, 문화적 자원으로 경제적인 활성화를 이루기도 한다. 지역에 존재하는 자원을 활성화계획으로 어떻게 끌어내느냐에 따라 성과가 달라질 수 있는 것.

 

도시재생사업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어느 곳을 가도 도시재생사업 결과가 비슷하다”고 말한다. “용역사의 성공한 계획들이 이 도시 저 도시에서 옷만 바꿔 입은 모양으로 펼쳐진다”는 것이다. 지역주민의 의견을 반영해 지원센터와 전문가와 행정이 함께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발굴한, 지역에 꼭 맞는 활성화계획이 아쉽다는 말이다. 더불어 그 안을 찾아내는 게 도시재생 성공의 열쇠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제주도 원도심 도시재생사업의 관덕정 주변 활성화사업의 하나로 진행된 ‘으라차차 어쨌든 원도심’ 사업은 지역의 문화 요소를 기반으로 아이디어를 확장시키며 문화적, 경제적인 활성화를 꾀한 성공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기본 아이디어 발굴을 위해 지역 관련 기관과 협업하고, 도출한 콘텐츠를 기반으로 원도심 상가 사업주의 참여를 통해 결과물을 만들어냄으로써 지역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문화·사회적인 활성화를 넘어 경제적 활성화까지 거두었다.

 

제주 유배생활 유일 왕, 광해에서 착안... 스토리텔링 개발

아이디어는 ‘광해군이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했다’에서 시작됐다. 제주도민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제주 유배생활 유일 왕, 광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제주 원도심을 활성화시키는 콘텐츠 개발이 이뤄졌다. 원도심은 광해군이 인조반정으로 폐위된 뒤 강화도에 이어 귀양살이를 한 곳으로 4년 동안 위리안치되었다 눈을 감은 곳이다.

 

제주도도시재생지원센터(이하 지원센터)는 ‘광해군 스토리’를 원도심 활성화계획과 연계해 지역역사, 문화자원, 문화시설, 상권 등과 연계해 콘텐츠를 개발, 관광상품으로 발전시키자는 계획을 세웠다. 2019년 6월 지원센터는 제주대 스토리텔링연구개발센터,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광해군 스토리텔링과 ‘광해밥상’ 레시피를 개발했다.

 

광해군은 최근 새로운 평가가 이어지며 영화와 드라마 등 문화콘텐츠 분야에서 흥미로운 소재로 다뤄져 주목받고 있다. 전쟁 피해 복구를 위한 노력, 강대국 사이 펼친 실리외교, 대동법 시행 등이 폭군의 이미지를 상쇄하기에 충분하다. 지원센터 오신애 연구원은 광해군 콘텐츠의 의미를 원도심의 부활과 연결지었다.

 

“제주문화를 이끌어온 중심지였던 원도심이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한 채 밀려난 것이 왕이었다 유배인이 된 광해군과 닮아 보였다. 도시재생으로 부활하는 원도심에서 광해군을 매개로 그의 삶을 느끼며 제주다움을 볼 수 있는 콘텐츠를 연결시키기 위해 다양한 테마상품을 개발했다. 이를 계기로 제주도민의 향수가 깃든 원도심이 활성화되고 재조명되길 바라고 있다.”

 

지난해 지원센터는 광해군 콘텐츠를 이용해 먹거리와 상품, 체험 등 총 다섯 가지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광해, 빛의 길을 걷다’, ‘원도심 광해 요리사’, ‘광해군 테마 기념품 및 체험 프로그램’, ‘으라차차, 어쨌든 원도심 캠페인’, ‘온라인 토크-원도심 광해을 만나다’ 등이다.

 

‘원도심 광해 요리사’ 프로그램은 음식점과 카페 7곳이 참여해 광해군이 즐겨 먹은 것으로 알려진 꽈배기와 영화에서 광해군이 좋아한 음식으로 나온 단팥죽을 상품화했으며, 광해군의 삶을 상상하며 제주 특산물과 연결시킨 ‘광해고사리잡채소반’, ‘심지귤방’ 음료, ‘동백꽃약반’, ‘매밀귤병과’ 등 7가지 음식이 결과물로 나왔다.

▲동문올레찐빵이 개발한 '광해 보리꽈배기'
▲백년 귤화다가 개발한 '메일귤병과'

원도심 공방과 작가들의 참여로 광해군 테마상품과 체험키트 7종도 탄생했다. 광해군의 시 ‘제주적중’을 새겨넣은 유리문진, 고독과 절망을 눈물로 형상화한 손수건, 왕의 곤룡포를 모티브로 한 핫팩 겸 제습팩, 마스크 파우치, 도자기 문장, 컬러링 페이퍼, 광해단청 리사이클 벽시계 체험키트 등이 광해군의 삶과 제주와의 인연을 토대로 상품화됐다. 품평회와 시범운영을 거쳐 정식 판매되며 시민과 관광객의 발길을 끌어모았다.

 

문화자원으로 상권 활성화를 꾀한 광해군 테마 사업은 14개 업소가 참가하며 다양한 음식과 상품 개발이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지원센터는 원도심 7개 상인회를 돌아다니며 홍보, 많은 상인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은 물론 선정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워크숍, 사업장별 개별 컨설팅, 상품 품평회, 프로그램 통합 BI 개발 등으로 적극 지원했다.

▲감성카페 심지가 개발한 '광해 행찬'
▲건입동 백설공주가 개발한 '광해소반'

 

2년간 광해군 테마 음식과 상품 개발... 사업장 연계 여행콘텐츠도

올해 이어진 광해군 테마사업은 지난해 ‘광해군 이야기가 잘 안 보인다’는 평가를 바탕으로 광해군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강화해 상품에 녹여냄으로써 상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고도화 작업이 진행됐다. 지원센터는 사업장의 상품개발을 위해 전문가 멘토링을 시행했고, 보다 세심하고 치밀한 진행을 통해 11개 사업장에서 12개 상품이 지난해보다 업그레이드되어 나왔다.

개별 사업장도 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광해군을 이해하기 위한 워크숍에 참여하고 따로 광해군을 공부해 상품과 연결시키는 작업에 몰두했다. 지난해와 올해로 이어지는 코로나19에 상가의 상황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하지만 도시재생사업이 돌파구를 찾는 매개 중 하나가 되면서 “코로나로 힘들고 지쳐 넋 놓고 있기보다 광해군 테마 상품을 개발하면서 새로운 시도로 무언가 열심히 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돼 좋았다”는 사업주의 평가처럼 상권에 활력을 줄 수 있는 불씨가 된 것은 확실하다.

▲더 아일랜더가 개발한 '제주적중' 시가 새겨진 '유리문진'
▲피크닉메이트가 개발한 '제주적중 손수건'
▲가마앤조이가 개발한 '컬러링페이터&커팅 광해 체험 키트'

 

올해는 특히 제주입도, 승하일, 제사, 시신출도 등이 해당되는 기간인 7월과 9월 사이 월별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원도심 테마 상품 사업장을 연계한 여행 콘텐츠를 개발해 코스를 만든 점이 두드러졌다. 또한 상품 판매에 치중하지 않고 ‘광해군을 배우다’ 인문학 강좌를 비롯해 ‘광해, 빛이 길을 걷다’의 원도심 걷기 투어, 역사퀴즈, 퍼레이드, ‘광해’ 책 보따리 등 어린이까지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성해 광해군 스토리가 제주의 정체성을 강화시킬 수 있도록 했다.

▲김영수 도서관 친구들의 '광해, 책 보따리'
▲요보록소보록이 개발한 '광해 도자기 문장'
▲그릇이야기 최작이 개발한 '광해 소금팩'
▲포스트 아일랜드가 개발한 '쁘띠 카라'와 '제주 노리개'

 

 

아쉽게도 광해군 테마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기간에 코로나19 방역이 4단계로 올라가 관광객과 지역주민들이 많이 참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광해군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다양한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접근함으로써 지역 콘텐츠가 지역주민을 넘어 관광객에게까지 확산돼 제주 원도심을 새로이 정립하는 계기가 되기에는 충분했다.

 

‘으라차차 어쨌든 원도심’ 광해군 테마사업은 올해 도시재생사업이 마무리되면서 끝나지만 한번 기획된 상품과 음식들은 지자체와 상인, 주민들의 협력과 노력에 의해 지속성을 유지하며 더 많은 상품 개발과 지역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 원도심이 광해군의 발자취를 찾는 관광객의 발길로 복작거리길 소망해본다.

사진 제공=제주특별자치도 도시재생지원센터

 

<사업장 인터뷰> 세 자매 팥죽집 ‘건입동 백설공주’ 윤영현 대표

영화 속 광해군이 좋아한 팥죽 ‘광해소반’

어렸을 적 살았던 집터에 ‘백설공주’라는 죽집을 낸 세 자매는 광해군 테마사업에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영화 <왕이 된 남자, 광해>에서 팥죽을 좋아하는 모습으로 그려진 광해군에서 착안, 제주음식인 빙떡과 함께 어울려 ‘광해소반’을 만들었다.

 

멘토링을 통해 트레이에 담아 한상 대접 맞는 스타일로 정리된 팥죽은 세 자매의 할머니가 동짓날 쑤어주시던 음식이다. 매일 그날 팔 팥만 삶고 쌀을 불렸다 바로 끓여주는 게 ‘백설공주’만의 비법이다.

 

“지난해 팥죽소반을 개발해 내놓았을 때 맛있다는 반응이 많았다. 지역의 엄마들이 와 간단히 먹고 가기도 하고, 단체로 와 먹기도 했다. 지금은 코로나 방역단계가 올라가 어떤 날은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지만 세 자매가 힘 합쳐 이겨내고 있다.”

 

광해소반을 위해 그릇을 새로 구비하는 등 온 마음을 다해 열심히 상품을 개발한 맏언니 윤영현 대표는 “관광객뿐 아니라 지역주민들도 팥죽을 먹으며 광해군에 대해 되새겨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업장 인터뷰> ‘그릇이야기 최작’의 최영희 작가

가장 화려한 왕의 옷, ‘곤룡포 소금팩’

최영희 도예작가는 광해군 테마사업을 제안 받고 왕이 입었던 곤룡포를 떠올렸다. 전공과는 다른 작업이었지만 곤룡포 모양으로 본을 떠 주머니를 만들고 그 안에 소금을 넣어 핫팩과 제습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깨지는 도자기는 관광객들이 구입을 꺼리는 상품이라 고민이 많았다. 그런 면에서 곤룡포 모양 팩은 광해 왕을 상징하는 가장 화려한 옷을 간직한다는 의미와 ‘당신을 왕으로 모시겠소’ 하는 뜻을 담아 선물할 수 있는 면도 있어 상품으로 도전하게 됐다.”

 

지난해는 직접 만드는 체험 키트 프로그램을 진행해 외국인 사이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일일이 손바느질로 제작하는 상품이라 에너지 소모가 심하지만 지원센터에서 귀찮을 정도로 많이 도와주고 홍보해줘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고 말하는 그는 해가 지나며 더욱 알려져 관광상품으로 자리 잡길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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