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김포, 김포형 도시재생의 길을 찾다_7 사례에서 배우다④ 거버넌스의 힘

도시가 성장하면 반드시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낡은 도시를 모두 없애고 다시 짓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아니라 느리지만 생활 터전과 공동체를 유지하며 활력 잃은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는 ‘재생’은 힘들지만 의미 있다. 도시재생 초기단계인 김포.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편집자 주>

 

<연재순서>

1. 김포 도시재생사업 현황 진단

2. 도시재생사업, 무엇이 중요한가?

3. 도시재생지원센터의 역할을 묻다

4. 사례에서 배우다① 주민 의지의 중요성

5. 사례에서 배우다② 주민협의체의 적극성

6. 사례에서 배우다③ 유관기관과의 협력

7. 사례에서 배우다④ 거버넌스의 힘

8. 사례에서 배우다⑤ 아이디어가 다한다

9. 사례에서 배우다⑥ 서울가꿈주택 집수리 지원사업

10. 사례에서 배우다⑦ 상권이 살아야 성공

11. 사례에서 배우다⑧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12. 주민, 행정, 전문가가 말하는 김포 도시재생 방향

▲이종필 서울 도시재생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도시재생사업은 ‘주민이 참여하고 주도하며 실행’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계획 수립과 집행은 행정의 몫이다. 이 둘 사이에서 사업의 구슬을 꿰는 도시재생지원센터의 역할이 필요하고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가도 있어야 한다. 이렇게 4~5년 동안 지역의 자원을 살려 가치를 회복하는 도시재생사업의 공동 목표를 위해 행정과 주민, 센터, 전문가가 거버넌스를 형성하게 된다.

 

도시재생사업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사업이 성공하려면 거버넌스가 잘 작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어떤 화려한 계획도 거버넌스가 함께 협력하고 힘을 모으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이다. 성공하는 사업지는 거버넌스가 서로 신뢰하며 힘을 모으는 가운데 추진력을 발휘하고 있다.

 

‘서울로7017’ 보행 연계지역 중림동, 서계동, 회현동 도시재생

2016년 시작해 지난해 마무리된 ‘서울역 일대 도시재생지원사업’(이후 ‘서울역 일대사업’)은 가장 바람직한 ‘거버넌스의 모범’을 보여준 사업으로 회자되고 있다. 서울역 일대사업은 ‘서울로 7017’ 프로젝트로 고가로 인해 나뉜 서울역 동쪽과 서쪽을 보행으로 연결시키면서, 연계된 낙후지역도 함께 도시재생해 보행도시로서의 가치를 지역으로 확산하고자 계획되었다.

 

서울역 주변은 역이 생기면서 동서 양쪽이 다르게 변화했다. 동쪽은 개발로 발전된 모습을 갖춰나간 반면 서쪽은 그렇지 못해 좁은 골목길과 열악한 주택들이 많다. 서울역을 중심으로 동서 양쪽이 균형적으로 성장하지 못했고, 이는 사회·문화적인 차이도 가져왔다. 서울로7017은 단절됐던 서울역의 동과 서를 보행으로 연결해 지역이 서로 소통할 수 있게 했다. 또한 보행으로 연결되는 낙후지역을 함께 재생함으로써 사회적, 경제적인 활성화를 꾀했다.

 

서울역 일대사업의 대상지는 중림동과 서계동, 회현동이다. 자치구가 중구와 용산구로 나뉠 정도로 3개동이 멀리 떨어져 있다. 각 동이 처한 환경과 상황이 달라 주민의 요구 또한 다양하다. 그런 현장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5년 동안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현재 도시재생기업 ‘서울 도시재생 사회적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는 이종필 이사장을 만났다.

 

“거버넌스는 협력적 의사결정에 방점이 있다. 협력적이라는 건 각자가 갖는 포지션에 대한 이해가 있다는 걸 말한다. 주민은 행정의 논리를 알아야 하고, 행정은 현장의 시간과 속도를 이해해야 한다. 이는 항상 서로 다시 묻고 토론하고 같이 결정하는 과정에서 얻어진다. 이곳은 서울시의 적극적인 역할수행, 주민과 행정을 잇기 위해 노력한 현장지원센터, 주민의 요구를 찰떡같이 알아듣는 전문가들의 협력 속에서 주민참여가 이뤄졌다.”

 

8개 거점공간 통해 사회적, 경제적 지역 활성화 꾀해

용역사가 올린 계획에 대해 주민과 현장지원센터에 물어봤는지 꼭 체크하는 행정의 역할, 중간지원조직인 현장지원센터의 7명 코디네이터가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변동 없이 사업의 시작과 마무리를 함께한 한결같음을 통해 주민들은 거버넌스의 효용성을 체감할 수 있었다.

 

“우리는 뉴딜사업에서 필수사항인 도시재생대학을 하지 않았다. 교육보다는 워크숍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 생각했다. 1년 반 동안 집중적으로 지역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 방안을 만들어 내는 워크숍을 통해 구체적으로 소통했다. 그리고 그렇게 합의한 안이 그대로 실행되는 걸 보여주며 거버넌스의 효과를 실감할 수 있게 했다.”

 

사업이 시작되며 동마다 주민협의체가 결성됐고 각 동에 현장지원센터의 코디네이터가 2명씩 배치돼 지속적으로 주민과 소통하며 지역의 문제를 풀어나갔다.

 

“3개동이 함께 진행되다 보니 내 것만 주장하기 쉽지 않아 의견조율이 조금 수월한 면도 있었다. 지역에 오래 사신 주민들이 무엇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회현동에는 특히 3대째 사는 분들이 많다. 그만큼 지역에 대한 애정이 깊었고 외부압력에 흔들리지 않았다. 동네가 좋아지는 것을 반겼다. 또한 서울역 근처라 그런지 주민들 대부분이 오픈마인드였다.”

 

갈등도 있었다. 중림동의 경우 보행로를 넓히는 데 상인들 반대로 합의에 2년이 걸렸고, 회현동은 아스콘이냐 블록이냐는 문제로 보도를 깔지 못하기도 했다. 17년간 개발에 시달렸던 서계동은 개발 이익을 바라는 건물 소유주 때문에 눈물을 삼키며 좋은 계획을 포기해야 했다.

 

그래도 합의되지 않으면 실행할 수 없기에 현장지원센터와 전문가들은 시간이 오래 걸려도 자꾸 만나 설득하고 토론하고 협의하는 시간을 지속적으로 가졌다. 이종필 이사장은 “그런 협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도시재생사업이며 집중하는 과정을 통해 주민 역량을 키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40년 된 불법 창고를 리모델링해 만든 복합문화공간 ‘중림창고’
▲4개 동으로 길게 늘어선 중림창고는 현재 책방 ‘149쪽’으로 운영되고 있다.
▲2층 한적한 곳에서 책을 읽을 수도 있다.

 

 

서울역 일대사업은 거점공간을 통해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어 주목을 끈다. 리모델링과 신축을 통해 8개의 거점공간을 만들었다. 중림동엔 복합문화공간 ‘중림창고’, 서계동엔 문화예술공간 ‘은행나무집’, 마을카페 ‘청파언덕집’, 공유주방과 서가 ‘감나무집’, 동네관리사무소 ‘빌라집’, 회현동엔 커뮤니티 카페 ‘계단집’과 공동육아가 운영되는 사랑방 ‘회현사랑채’, 쿠킹스투디오 ‘검벽돌집’ 등이 생겼다.

 

‘여기서울’이라는 브랜드로 통일된 이 앵커시설들은 서울역 일대 명소로 자리 잡았다. 빌라집, 회현사랑채, 은행나무집, 감나무집은 지역주민들이 이용하며 공동체를 더욱 활성화시킬 수 있는 공간으로, 계단집, 중림창고, 청파언덕집, 검벽돌집은 외지인의 방문을 끌어들여 도시재생에 새로운 활력을 가져다주는 거점시설로 운영되고 있다.

▲회현동 언덕에 위치한 커뮤니티 카페 ‘계단집’.
▲‘주민공동체사업가’ 프로그램으로 바리스타 교육을 받은 주민이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아늑하고 세련된 카페 ‘계단집’이 입소문을 타고 지역 명소로 자리 잡았다.

 

 

‘서울 도시재생 사회적협동조합’ 결성, 사업 후 도시재생 이어가

서울역 일대사업의 거버넌스는 사업 종료 이후로도 이어지고 있다. 도시재생기업인 ‘서울 도시재생 사회적협동조합’을 꾸려 전문가와 주민이 함께 사업 후 이 지역의 도시재생을 지속시켜 나가고 있는 것.

 

“활성화사업은 마중물사업이다. 사업이 끝나면 주민들이 스스로 도시재생을 운영해 나가야 한다. 이를 대비해 주민들과 현장지원센터 이후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사업이 끝나면 지원센터는 철수하게 되는데 주민들은 현장지원센터의 효용성을 느끼고 있어 협동조합을 만들어 이후를 준비하자고 하니 주민들이 흔쾌히 응해줬다.”

 

이종필 이사장은 조합원이 78명인 ‘서울 도시재생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주민이 70% 이상이다. 서울시도시재생지원센터 내에서도 지역의 다양한 의제를 지역자원과 결합, 활용하는 사업 모델을 개발해 지속 가능한 도시재생을 추구하는 지역 중심의 기업인 도시재생CRC(Community Regeneration Corporation)에 대한 연구가 이뤄져 기업선정과 육성에 힘을 쏟았다.

 

“2019년 도시재생CRC에 선정돼 서울역 일대 위탁공간과 거점시설 등 9개 공간을 운영·관리하고 있다. 기업인 만큼 수익을 내야 해 올해 위탁공간 40%, 거점공간 70%의 자립도를 목표로 세웠다.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해 신규사업도 벌여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좀 더 지역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리는 게 더 중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본질에 더 충실하려고 한다.”

 

그는 아파트처럼 저층주거지역을 관리해주는 집수리생활협동조합을 구상해 회원을 모집하고 있다. 일정 연회비를 받고 집을 관리하는 기본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집수리와 관련된 부분을 저렴하게 제공하는 형태다. 집의 성능점검, 이력관리 등을 통해 ‘주계부’를 만들어 집을 관리를 해주는 사업 등을 통해 주민 곁으로 더 가까이 가고자 한다.

 

직원 25명 중 10명이 주민이라 사업 후 일자리까지 창출하게 된 서울 도시재생 사회적협동조합. 앞으로 교육을 통해 주민 일자리를 더욱 늘려나갈 계획이라는 그는 “도시재생은 주민과 센터, 공무원의 사이가 좋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과를 낼 수 없다”고 다시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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