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우리동네12 <삶의 한가운데>

살면서 한 번쯤은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것만 같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내가 가진 고민을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아무도 나를 온전히 이해해 줄 이가 없다는 무력감이 삶을 감싸는 순간이면, 삶에 대한 의지나 혹은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의미를 찾기 어려워지곤 하죠.

 

우리가 알지 못한 몇 명의 누군가들이 그런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즈음, 북변동의 오래된 골목의 건물 2층에서는 노란 조명이 켜지고 그 아래 청년들이 모여있습니다. 책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가고 싶은 이들, 청년독서모임 <꿈꾸는마들렌>의 모임이 시작된 것이지요. 네. 맞습니다. 매주 목요일 저녁과 일요일 아침에는 게으른정원에서 고전독서모임이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대상은 20~30대의 김포에서 거주하거나 근무하는 청년들로, 김포의 청년센터인 ‘창공’에서 주최하고 제가 모임 리더가 되어 6개월 가까이 꾸준하게 운영하고 있는 모임입니다.

 

이날 각자가 손에 들고 온 책은 루이제린저의 <삶의 한가운데>였습니다. 이 날 이 책 하나를 두고, 수많은 외로움과 삶의 의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고 그만큼 저의 기억 속에도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는데요. 삶의 의지를 다시금 일으키고 싶은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오늘은 우리가 함께 읽고 나누었던 루이제린저의 <삶의 한가운데>를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삶의 한가운데>는 독일의 여성작가 루이제린저가 쓴 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여주인공 ‘니나’를 사랑하는 20살 연상의 의사 ‘슈타인 박사’가 19년 가까이 한결같이 그녀를 애정한 마음이 담긴 일기장을 ‘니나’의 친언니를 통해 들여다보는 형태로 서술이 되어있는데요. 겉으로 보기엔 한 여성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한 남자의 일편단심의 사랑이야기 같지만 실제 그 내막을 들춰보면 왜 이 책이 독일의 페미니즘을 상징하는지, 왜 이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 주인공 니나를 추종하는 수많은 여성들을 통해 ‘니나신드롬’을 일으켰는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니나는 조금은 불우한 상황과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처음 병원에서 슈타인 박사를 만나게 됩니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니나를 사랑하게 된 슈타인 박사는 정원이 있는 멋스러운 집과 안정적인 생활을 모두 갖고 있기에 자신의 능력으로 니나의 빚을 모두 갚아주고 자신의 품으로 데려오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니나는 끊임없이 그의 유혹적인 도움의 손길을 거부하며 자신의 힘으로 살아나가기를 원합니다.

 

죽어가는 친척 할머니의 가게를 돌봐가며 담배와 사탕, 비누를 팔고, 나치를 피해 망명하는 사람들을 돕고, 그 이야기들을 두 권의 책으로 써 내려가다 금서가 돼 수감됩니다. 그러나 나치 집권이 해제되며 그녀와 그녀의 책은 함께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고 그녀는 작가로서의 인정과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힘으로’ 멋스러운 집을 얻게 됩니다.

 

니나의 상황이 안타까웠던 슈타인이 니나를 데리러 친척 할머니의 가게로 찾아온 날, 니나는 슈타인에게 말합니다. “나는 이 상황을 받아들였어요. 인간이 순응만 하면 참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요. 예를 들어 이 가게도 처음에는 싸구려 냄새 때문에 너무나 역겨웠어요. 그러나 나는 이 가게의 어두컴컴함, 서늘함, 그리고 나름대로 갖춘 질서들로 해서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중략) 이것도 삶의 일부일 뿐. 나는 모든 것을 경험해야 해요. 추악한 것을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은 중요한 것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과 같아요.(...중략) 나는 살려고 해요. 나는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을 사랑해요.”

 

니나는 마치 자신에게 닥치는 불우한 운명의 파도에 몸을 얹는 방식으로, 되려 그 운명을 저항하고 이겨내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혼자라고 느껴지는 그 모든 순간에도 누군가에게 의지하기보다는 스스로가 가진 믿음으로 걸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진 사람처럼. 마치 자신이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요. 과연 우리는, 벼랑 끝에 선 순간 그녀와 같은 삶의 의지를 발휘할 수 있을까요?

 

이 고전을 함께 읽었던 <꿈꾸는마들렌>의 멤버들은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거나 직장생활을 한 지 5년 이내 정도 되는 20대와 30대의 청년들이었기에, 아주 빈번히 ‘세상에 혼자 있는 듯한’ 감정을 느낀다고 고백했는데요. 이날, 우리는 이 책을 함께 이야기하고 나누며 니나의 생의 의지에 감탄하고 삶에 대한 경외와 아름다움으로 마음을 적셨습니다.

 

혹여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이, 조금은 무기력함과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면 저는 오늘 당신이 스스로 삶의 한 가운데에 온전히 설 수 있도록 해 줄, 루이제린저의 <삶의 한가운데>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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