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광 김포우리병원기획관리실장

“너는 이담에 커서 뭐가 되고 싶어? 네,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되겠습니다”. 군인(軍人)!!.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전쟁 또는 유사시에 대비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한창 혈기왕성한 젊었을때 나는 군인 중에서도 부대 지휘와 부하 통솔이 매력 있는 장교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래서 사관학교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정예 장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군사 학교가 사관학교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업성적과 체력, 인간성을 모두 갖춰야하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만 한다. 이래야 4년제 사관학교 졸업과 동시에 학위취득과 함께 소위 계급장을 달고 장교로서 군복무에 임하게 된다.

 

꿈과 희망을 갖고 사관학교에 대한 입시전형 등 알아보다가 실망과 좌절을 동시에 맛보게 됐다. 신체적으로나 체력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생각했는데 신체검사 규정상 평발은 사관생도가 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체력검사 통과가 기본인데 1.5k 오래달리기가 필수로서 평발일 경우는 불합격이란다.

 

마라톤이나 축구, 농구 등 다방면에 체력과 체육에는 누구에게 지지 않고 잘하는데 오래달리기가 불가하다며 안 된다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관학교 입시전형 규정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규정이 그렇다는데 받아들여야만 했다. 구보, 훈련, 임무수행에 필수인 걷기가 규정(오래달리기) 때문에 평발은 사관학교에 못 간다니 나는 사관학교 지망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평발!! 한자어로는 평편족이라고도 한다. 발바닥의 오목한 구조, 즉 발바닥 아치가 매우 약하거나 없는 발을 뜻한다. 일반적으로는 체중을 실은 채 발바닥을 땅에 댔을 때, 그러니까 똑바로 서서 발바닥의 힘을 풀고 체중을 지탱만 하고 있을 때, 발바닥의 아치가 사라지거나 거의 없으면 평발이라고 한다. 발자국을 찍어 보면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발바닥의 오목한 굴곡 구조는 신체의 하중에 의해 발에 가해지는 압력을 발바닥과 지면의 접촉을 최소화하여 지면에 분산하기 위해서 있는 것인데, 평발은 이 압력을 분산하는 기능이 약하므로 발이 쉽게 피로해지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이 걷고 많이 뛰는 군대 특성상 평발은 사관학교의 규정으로 제한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잘 아는 유명 스포츠 스타중에 축구의 박지성, 손흥민, 일본 국가대표 출신 혼다케이스케(중학생 때 평발이라고 감바오사카 유소년 축구교실 입단을 거절 당했다고 함), 마라토너 이봉주는 물론 쇼트트랙의 김동성, 안현수, 프로야구의 레전드로 불리는 양준혁, 연예인 이정재, 김병만, 하하 등 수많은 사람들이 일반에 알려진 평발이다.

 

물론 평발에도 종류가 있어 심한 강직성 평발에 비해 동양인의 10명중 8명은 유연성 평발로 일상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 평발이다. 나 역시 유연성 평발에 속하는 쪽이다. 그 당시에는 신체검사에서 유연성 평발은 일반 현역병 입영은 가능하나 사관학교는 강직성이던 유연성이던 평발은 무조건 안 되는 규정이었다. 지금은 매우 완화되어 평발이 신검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한다.

 

유머 하나) 최불암이 20대가 되자 징병검사 통지서가 날아왔다.
군대는 가기 싫은데 징병검사 날짜는 점점 다가왔다.
어떻게 하면 군대를 빠질 수 있을까 고민하다 과감히 팔을 부러뜨렸다. 팔이 불구가 됐으니 군대를 빠질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징병검사장에 갔다. 최불암의 신체검사가 끝나자 수석 징병관이 이렇게 말했다.
"최불암 6급, 병역 면제 대상."
이 말에 최불암이 속으로 기뻐하려는데 징병관 왈,
“면제 사유는 평발”

 

실례 하나) 80년대 코미디 프로에서 ‘회장님 회장님 우리회장님’,‘공포의 삼겹살’로 인기를 끌었던 김형곤이 46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는데 90𝐤체중에서 100𝐤 넘게 증량한 게 화를 불렀다 한다. 그가 스무살 되던 해 징집영장이 나오자 살을 찌워 군에 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한동안 죽기 살기로 먹어댔고 평소에도 과체중이었던 몸이 120𝐤을 웃도는 뚱보가 됐다. 역시나 신체검사에서 바라던 면제 처분을 받았다. 돼지처럼 먹고 마시고, 잠만 잔 보람이 있었다. 사람은 스스로 돕는 자는 돕는다고 했다던가.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판정관의 면제사유는 엉뚱한 데 있었다. 평발 때문이란다.

 

그가 TV 대담 프로그램에서 밝힌 유머스러한 군 면제 사연이다. 몇해 전에 국방부가 ‘병역판정 신체검사 등 검사 규칙’을 입법예고했다. 주 내용은 평발(평편족), 비만, 시력, 문신 관련 병역판정 신체검사 기준을 대폭 완화시켰다. 뱃살이 파도를 치고, 돋보기를 쓰는 지독한 근시라도 군 생활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평발도 당연 징집대상이고 완전무장을 하고 구보를 뛰어야 한다. 용, 호랑이에 독수리, 코브라 뱀으로 옴몸을 문신으로 도배했어도 현역 입영대상자 판정을 받게 됐다. 진단 및 치료 기술의 발달 등 의료환경 변화에 따라 신체등급의 판정 기준을 개선해 병역판정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높였다는 게 입법의 취지였다.

 

그러나 그 내막을 들여다 보면 또 다른 의미가 있음을 쉽게 눈치챌 수가 있다. 저출산으로 인한 병력 자원부족 현상 때문일 것이다. 불과 수 년 전, 35만 명이던 징병대상 연령자가 2022년 이후 22만 명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지금 기준은 2015년 현역병 입영 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강화한 것으로 이 잣대로는 적정 병력을 유지 할 수 없다는 예측에 따라 5년만에 2014년 이전의 완화 기준으로 되돌리게 됐다.

 

일각에서는 당장 군 전력이 약해질 것이란 우려와 관심 병사만 늘게 생겼다고 걱정한다. 이에 해당되는 예비 당사자들은 불만에, 실망스런 반응이다. ‘이참에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로 전환해 직업군인들이 병역을 담당해야 한다’ 고도 주장한다. ‘성평등 말만 하지 말고 여성들도 병역의 의무를 져야 한다’는 다른 목소리도 있다. 저출산이 국방을 흔들고 있으니 이제 외국 용병이라도 수입해야 할 처지라는 웃기는 현실의 농담도 이어진다.

 

한때 군인이 되어 국가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사관생도를 꿈꾸었던 젊고 패기 있던 소망이 세월이 흘러 돌이켜보니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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