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우리동네⑩ <그게, 가스라이팅이야>

“실망이야.”

이 말을 아이에게 내뱉을 뻔했습니다. 꿀꺽 삼키기는 했지만, 저의 눈빛이며 손짓, 몸짓이며 말투, 표정과 같은 온갖 비언어적 표현으로 이미 그 충분한 의미가 아이에게 가 닿았겠지요.

 

생각해보면 어릴 때 엄마에게 들은 말 중 가장 제 마음을 아프게 했던 말, 듣는 순간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는 듯한 느낌을 주었던 말이 바로 ‘실망이야’였습니다. 이제 제가 엄마가 되어 똑같은 말과 표정을 딸에게 전달하고 있구나 싶어 구름 잔뜩 낀 기분이 되었습니다.

 

이럴 때 갑자기 읽고 싶어진 책 <그게, 가스라이팅이야>(에이미 말로 맥코이, 2021, 에디토리출판사)을 펼쳤습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가족에게 “실망이야”라고 말하는 건 죄책감을 심어주는 가스라이팅의 표현이라는 부분에서 시선이 멈추었습니다.

 

이 책은 ‘가스라이팅 유형 및 피해자를 위한 회복법 총망라’라는 홍보문구처럼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지는 않은지(또는 당한 적 있는지) 되돌아보고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저에게서 가스라이터의 모습을 자꾸 찾게 되네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밑줄 그었습니다.

 

📖 나쁜 의도 없이도 가스라이팅과 같은 정서적 학대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게 믿어지나요? 놀랍게도 모든 학대가 부정적 관계에서만 발생하는 건 아니에요. 때론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정서적 학대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이때 가스라이터들은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경우, 가스라이터는 더욱 건강한 관계를 만들기 위한 의지와 동기를 가지고 있는 바람에 자신의 행동에 따르길 권유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상처를 줍니다. 또 때론 아무 의도 없이 한 행동이 상황 맥락상 가스라이팅이 되는 경우도 있죠. 건강한 관계에서 의도치 않게 일어나는 가스라이팅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정말 알아차리기 어렵기 때문에 면밀한 관찰이 필요합니다. (p.245)

 

📖 시간이 흐르면, 가스라이팅 피해자들은 어느새 가스라이터와 똑같이 해로운 행동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 모릅니다. 안타깝게도, 학대 피해자들은 또다시 피해자가 되는 상황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이 자신이 당한 학대를 다른 사람에게 돌려주는 것이라 오판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자신의 행동에 묻어 있을지 모르는 가스라이팅의 잔재를 경계하면서 관계에 임하기 바랍니다. (p.246)

 

확실하게 나쁜 의도를 품은 가스라이팅보다 무서운 것이 '건강한 관계에서 의도치 않게 일어나는 가스라이팅'인 것 같아요. 사랑한다는 이유로, 좋은 의지와 동기로 의도치 않게 상처 주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봅니다. 특히 엄마와 자식 간에는 이런 유형의 가스라이팅이 자주 일어나는 게 아닐까, 나 역시 아이를 위한다는 이유로 그러고 있지 않나 돌아보게 됩니다.

 

‘대놓고 육아서’가 아닌 책에서 이렇게 아이를 키우는 데 도움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아이를 내 마음대로 이끌려 하지는 않았는지, 아이를 위한다는 이유로 아이의 생각을 외면하지 않았는지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확장하여 주변 인간관계에 있어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는 책 <그게, 가스라이팅이야>를 많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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