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누리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예전에는 ‘아님 말고’라는 말을 정말 싫어했다. 참 무책임한 말이라 생각했다. 어릴 적 자기가 생각한 대로 말을 막 뱉었다가, 사실이 아니면 “그래? 아님 말고.”하는 어른들을 종종 봐서 그런 것일까. 나는 저런 무책임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다짐한지 20년이 흘렀다.

크면서 나는 약간의 완벽주의 기질이 있는 사람으로 자랐다. 모든 일에 열과 성을 쏟았다. 지각 한 번 해본 적 없고, 모든 일에 기한을 엄수하며,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지언정 최선을 다해서 결과물을 내놓았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며 참 책임감이 강하다며 박수를 쳐주었다. 이렇다보니 나는 남들에게 허술해 보이고 싶지 않았다. 쉽게 남에게 물어볼 만한 것도 자존심 탓에 끝까지 혼자 물고 늘어졌고, 사소한 실수 하나도 남이 하면 그러려니 하면서 내가 하면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았다. 남들은 한 발 한 발을 쉽게 내딛는데, 나에게는 큰 계획과 결심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 나와 성향이 정반대인 분을 만났다. 내가 3년간 몸을 담근 작은 회사의 대표님이었다. 잔뜩 긴장하고 첫 전화를 걸었더니, 마치 오랜만에 만난 동네 아저씨처럼 “목소리가 밝아서 좋네요. 좀 있다 봅시다!”하며 호탕하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으셨다. 몇 달 뒤, 당시만 해도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나에게 갑자기 정직원으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셨다. “그럼 계약서도 써야하고, 수습기간도 있는 건가? 출퇴근은 어떻게 하고, 근무시간은 언제부터 언제인거지?” 나는 갑작스러운 제안에 속으로 이것저것을 생각하고 고민해보고 다시 말씀드리겠다며 자리를 떴다. 인생 최대의 결정을 하듯 집에서 계속 고심하던 나는 다음날 사장님에게 “저 다닐게요!”라고 대답했다. 뭔가 엄청난 일이 생길 줄 알았는데, 그 이후로도 회사생활은 여전했다. 다만 근무시간이 늘어나면서, 사장님과 투닥거리는 일도 많아졌다. 내가 볼 때는 절대 안 되는 일도, 사장님은 “일단 물어나 보자고. 될 수도 있잖아.”하며 전화를 걸어보곤 하셨다. 원칙이 이런 거라 물어봐도 소용없을 거라고 말씀드려도 사장님은 고집스럽게 상대방에게 사정을 설명하셨다. 놀라운 점은 그 방법이 통하는 때가 있다는 것이었다. “안 될 거 뭐 하러 물어봐?” 라고 생각한 것도 나의 착각, 그것은 막상 열어보니 ‘되는 일’이기도 했다. 심지어 예상처럼 역시나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도, 사장님은 “에이, 아님 말고.”하면서 훌훌 털어버리곤 했다. 사장님의 고민은 극히 짧았다. ‘아님 말고’는 사소한 실패를 훌훌 털어버리고 다음 일을 진행시키는 마법의 주문이었다.

시험에 좀 떨어지면 어떤가, 남에게 싫은 소리 좀 들으면 어떤가. 그저 나와 인연이 아니었던 것뿐인데. 그럴 때면 어깨 한번 툭 털고 내뱉어보련다. “아님 말고.”

 

 

<구성 : (사)한국문인협회 김포지부 고문 이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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