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김포, 김포형 도시재생의 길을 찾다_4 사례에서 배우다① 주민 의지의 중요성

도시가 성장하면 반드시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낡은 도시를 모두 없애고 다시 짓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아니라 느리지만 생활 터전과 공동체를 유지하며 활력 잃은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는 ‘재생’은 힘들지만 의미 있다. 도시재생 초기단계인 김포.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 <편집자 주>

 

1. 김포 도시재생사업 현황 진단

2. 도시재생사업, 무엇이 중요한가?

3. 도시재생지원센터의 역할을 묻다

4. 사례에서 배우다① 주민 의지의 중요성

5. 사례에서 배우다② 주민협의체의 적극성

6. 사례에서 배우다③ 유관기관과의 협력

7. 사례에서 배우다④ 거버넌스의 힘

8. 사례에서 배우다⑤ 아이디어가 다한다

9. 사례에서 배우다⑥ 서울가꿈주택 집수리 지원사업

10. 사례에서 배우다⑦ 상권이 살아야 성공

11. 사례에서 배우다⑧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12. 주민, 행정, 전문가가 말하는 김포 도시재생 방향

▲'마을호텔18번가' 골목 오른쪽
▲'마을호텔18번가' 골목 왼쪽

 

도시재생은 지역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인 만큼 그 지역에 살고있는 주민의 인식, 욕구, 의지, 참여, 주도 등이 중요하다. 즉 ‘주민’이 빠지면 이뤄질 수도, 성립될 수도 없는 사업이기에 도시재생은 주체가 되는 주민의 의지가 사업 전체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마을호텔18번가’는 주민의 도시재생에 대한 의지가 얼마나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보여준다. ‘마을 골목이 호텔이 되는’ 신선한 발상을 구현한 골목의 변신이 바람직한 도시재생의 모범답안을 보는 듯하다. 골목 입구부터 양쪽으로 라운지, 식당, 사진관, 이발관, 세탁소, 숙소 등이 펼쳐져 있는 이곳은 여행을 위해 골목 호텔에 들어선 느낌을 준다.

 

폐광된 후 빈집 늘어나 밤에 피해 다니는 골목된 곳

고한은 사북과 함께 1960대 개발된 탄광촌이다. 한때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지역경제가 호황을 누리기도 했지만, 1980년대 이후 대체 에너지가 보급되며 1989년 정부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에 따라 폐광 수순을 밟았다. 일자리를 잃은 광부들은 하나둘 고한을 떠났고, 강원랜드와 하이원리조트 등이 들어서며 다시 지역이 살아날 것 같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결국 고한은 빈집이 점점 늘어나 황폐해갔다. 고한 18리 골목이 특히 심했다.

 

“20년 동안 강원랜드 수익금의 일부를 개발기금으로 폐광지역에 내려줘 매년 10억 정도의 기금으로 고한군에서 지역개발사업을 했다. 그런데 도로를 까는 등의 하드웨어 측면은 성과를 냈지만 마을로 스며들지는 못해 오히려 더 힘들어졌다. 강원랜드를 살려 지역활성화를 꾀한 개발사업이 적어도 주민들에게는 실패였다.”

 

▲김진용 마을호텔18번가 협동조합 상임이사

 

김진용 마을호텔18번가 협동조합 상임이사의 말이다. “주민들은 황당해했고, 결국 답은 ‘우리가 해야 되는구나, 스스로 하지 않으면 동네가 안 바뀐다’는 걸 깨닫게 됐다. 주민 스스로 마을을 살려야겠다는 고민을 시작했고 도시재생을 모색하게 됐다.”

 

지역활동가이자 마을 토박이였던 김진용 이사는 2017년 10월, 골목의 빈집을 구입해 광고기획사 ‘하늘기획’을 차린 뒤 골목을 살리는 전초기지로 삼았다. 우선 이장, 반장 등을 주축으로 한 ‘마을만들기위원회’를 꾸렸다. 2018년 1월 공유오피스 ‘이음플랫폼’도 골목에 오픈하며 힘을 보탰다.

 

쓰레기 치우고 청소, 집 앞에 꽃 심으며 골목 환해져

 

“40여 가구 정도 되는 이 골목은 상가와 살림집이 혼재해 있는데, 살림집엔 주로 어르신이 거주하신다. 사시다 돌아가시면 빈집이 되니 밤에는 사람들이 피해 가는 골목이 됐다. 마을만들기위원회를 만들고 처음 한 일은 매일 골목에 방치된 쓰레기를 치우고 청소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집 앞에 꽃을 심고 벽에 페인트도 칠했다. 할머니가 사시는 노후된 집을 고치기도 하면서 골목이 점점 환해지기 시작했다.”

▲마을회관으로 리모델링한 공간. 주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있다.
▲마을회관 안.  LED야생화, 지역작가의 작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골목 풍경이 바뀌기 시작하고 주민들이 함께할 수 있는 골목길 아카데미, 골목길 콘서트 등을 진행하며 서로 신뢰하는 연대감이 쌓여갔다. 그렇게 마을을 살리기 위한 주민들의 노력이 알려지자 행정에서도 도움의 손길을 보탰다. 소규모재생사업에 지원하며 재정지원을 통해 2018년 빈 집 10채를 단장하고, 2019년엔 노후주택 10채를 리모델링하는 등 지금까지 30여 채가 새롭게 바뀌었다. 골목이 변하니 상가가 살아나며 상점이 들어오기도 했다.

 

“예전엔 이곳에 사는 게 창피했는데 마을이 깨끗해지고 함께 즐겁게 하는 일이 생기다 보니 주민들이 마을에 자부심을 갖게 됐다.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살겠다’고 말할 정도로 마을 충성도가 높아졌다. 자랑스럽다는 건 지속가능성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속가능성은 경제적이든 어떤 측면으로든 주민에게 이익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대가 없이 봉사로 시작한 마을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마을사업이 있어야 한다.”

 

빈집·노후주택 개조에서 골목이 호텔되는 ‘마을호텔’로 이어져

지자체의 재원, 전문가의 역량을 도움 받아 ‘마을호텔’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계획하고 작년 5월 마침내 ‘마을호텔18번가’를 오픈했다. 고한읍 18리 골목의 상점들이 하나로 모여 호텔처럼 운영되는 형태다. 한우식당을 개조해 2인실 2개, 3인실 1개 객실을 갖춘 숙박시설을 만들고, 골목 안에서 영업 중인 중국집, 카페, 사진관, 이발소, 주민공간 등을 호텔 안 부대시설로 이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물론 할인된 가격으로.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깨끗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마을호텔은 입소문을 타고 관광객의 발길을 이끌었다. 주민의 의지로 맺은 결실이 많은 언론과 방송에서 조명됐고, 2018년 도시재생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유명 가수의 뮤직비디오 촬영지가 되기도 했다.

▲마을호텔18번가 앞 정경 
▲마을호텔 입구. 카페 같은 분위기로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마을호텔 객실

 

 

그동안 주민들은 할 수 있는 사업을 꾸준히 계획하고 실행했다. 2019년 골목길 정원박람회를 개최해 행안부의 ‘지역골목상권활성화 우수사례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고, LED야생화 공예를 배우고 만들어 공예작품 전시회를 열면서 밤에도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줄 수 있는 골목으로 탄생시켰다. 급기야 지난해 이 사업을 토대로 정선, 고한 등 6개 마을에 걸친 170억 규모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지원, 선정되기도 했다.

 

“이 골목이 3년 동안 이렇게 많이 변할 수 있었던 건 개별사업으로 하나씩 진행해 나간 덕분이다. 집 한 채씩 집주인과 논의하고 리모델링하는 방식으로 하니 마을 전체를 대상으로 의견을 조율하고 주민 동의를 받는 등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됐다. 개별사업 하나하나가 모여 마을호텔로 연결됐다. 이런 주민의 도시재생 과정과 경험이 뉴딜사업 선정의 토대가 됐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동안 아무런 갈등 없이 일이 순조롭게 풀려간 것은 아니다. 시장과 연결되는 위쪽 골목은 장사가 되는 편이라 골목 아래쪽 빈집이 많은 곳을 주차장으로 재개발하길 원해 골목 전체를 살리는 도시재생에 반대했다. 주차장이 없어서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김 이사는 “주차장 만든다고 사람 오지 않는다. 볼 게 있으면 차 세울 곳이 없어도 온다. 관광객이 많아지면 행정에서 주차장 해줄 수밖에 없다”고 설득하며 사업을 진행했다. 3년을 지켜본 주민들은 이제 도시재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마을호텔의 카페. 호텔에 투숙하면 이곳에서 아침이 제공된다.
▲골목 작은 공간에 마련한 쉼터. 지역작가도 힘을 보탰다.

협동조합 만들고 ‘마을 여행 플랫폼’ 구축해 지속성 실현하고자

마을호텔18번가의 최종 목표는 ‘마을 여행 플랫폼’이다. 마을호텔 2호, 3호를 더 만들고 마을 기존 자원을 연계해 마을 여행을 안내하는 여행자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역 상가 할인, 하이원리조트, 정선군 관광상품 연계 등 서비스 영역을 더 확장하는 등으로 사업을 확대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런 구상은 ‘마을호텔18번가 협동조합’을 통해 실현해 나갈 계획이다.

 

“마을만들기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뜻이 맞지 않아 그만두기도 하면서 11명 정도가 남아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이 골목의 지속가능을 위해서 사회적경제든 마을기업이든 경제생태계가 꼭 필요했다. 뉴딜사업 3년 차에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을 반드시 만들어 지속성을 담보하게 하는데 우리는 그냥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작년 코로나로 어려웠으나 수익금의 1/10을 배당하기로 하고 조합원당 5만 원씩 배당했다. 사회적협동조합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협동조합원들은 대부분 골목의 상인들이다. 김 이사는 “지금은 마을호텔이 행안부 마을기업으로 지원을 받고 있지만 앞으로 5년 동안 자리를 잡아 자력으로 운영되는 마을호텔이 되려면 마을호텔18번가 플랫폼으로 30% 수익이 나야 한다. 그걸 목표로 조합원이 함께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니 인터뷰]

고한의 젊은 숨결, 들꽃사진관 이혜진 대표작가

“청년을 지역으로 이끄는 예가 되고 싶다”

▲이혜진 대표작가

김진용 이사는 ‘마을호텔18번가’가 마을여행 플랫폼으로 자리 잡아 가는 데는 20, 30대의 젊은 시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한다. 마을이 청년을 원하는 이유다. 하지만 고한은 주민 4,735명에 평균연령 48세,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21%인 곳이다. 이에 부모들은 젊은 자식이 고향에 있으면 걱정거리가 된다. 일자리 구해 타지로 나가지 못한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2019년 슈퍼 자리였던 곳을 개조해 문을 연 ‘들꽃사진관’의 이혜진 대표작가는 이 골목의 유일한 20대다. 고한에서 나고 자란 그는 경찰학과를 나왔지만 전공과 관련 없는 NGO 관련 일을 하다 사진 공부를 했다. 서울살이가 힘들어 잠시 쉬어가려고 내려온 고향에서 그는 탄광과 주변 인물을 찍으며 새로운 분야와 연결됐다. 그리고 그 길이 직업이 돼 들꽃사진관으로 이어졌다.

 

“김 이사에게 사진관 대표작가를 제안받았을 때 생각해보니 제가 이곳에서 크면서 지역의 혜택을 많이 받았더라. 지역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다. 주민들 증명사진, 가족사진 등을 찍어주며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또 하나는 이곳에서 뭔가를 하고 있는 나를 보며 청년들이 지역에 남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했다. 어른들이 지역의 청년을 실패자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게 되는 예가 되고 싶었다.”

▲고한 주민뿐 아니라 정선 등 타 지역에서도 가족사진과 기념촬영을 위해 방문하고 있다.

그의 바람은 개관 3년 차로 접어드는 지금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다. 고한 유일의 사진관으로 지역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으며 다양한 촬영의뢰로 생활을 안정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마을에 청년모임도 늘어나고 있다.

 

“청년을 위한 골목 아이템이 필요한 상황이라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들어왔으면 한다. 하지만 ‘청년’을 무기 삼아 무언가를 얻어내려고만 하는 청년들은 곤란하다. 폐쇄적인 지역이라 이미지를 어떻게 쌓아가느냐가 중요한데 얕은수로 달려들어서는 곤란하다. 지역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고민해야 오래 갈 수 있다.”

 

도시의 편리함과 문화가 아쉽기는 하지만 마을호텔18번가 골목에서 주민들과 도시재생을 위한 작업을 함께하는 지금이 즐겁고 행복하다는 그는 마을에 필요한 청년들의 건강한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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