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박 철

오늘이 누이의 결혼기념일이란 얘길 들었다
누이는 병중에 있고 매제는 먼 곳에 있다
연초부터 부쩍 눈곱이 끼는 팔순의 어머니가
기침처럼 고향에 가보고 싶단 얘길 한다
낮에는 서어나무 숲을 걷는데 도토리 떨어지는
소릴 들었고 산비둘기 우는 소릴 들었다
밤에는 아내의 숨넘어가는 소릴 들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귀는 오랜 우물처럼
너무 많은 것을 담아서
길어도 길어도 얘기가 마르지 않는다
당장이 급해 두 눈이 쌍심지를 켜고 세상 온갖 것을 보아도
삐딱하게 숨어 있는 귀를 막아서지는 못한다
뭉크의 절규는 눈이 아니라 귀를 그린 것이다
눈은 보이지 않는 것은 알 수 없으나
귀는 들리지 않는 것도 듣는다
빛은 지나가고 소리는 머물러 대지를 울린다
부처도 막판에는 눈을 감고 귀를 열었다
말했듯이 귀는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담는 것이 아니라 퍼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귀가 앞에 달린 것이고 눈은 옆에 달렸다
그 탓에 우리가 이제껏 흔들려
옆으로 걷는 것이다

시 감상
귀는 오랜 우물이다. 담지 않아야 할 것과 담아야 할 것을 모두 담았다. 부처도 막판에는 눈을 감고 귀를 열었다. 귀는 담는 것이 아니라 퍼주는 것이기 때문에 귀에는 모든 것을 담아도 되고 안 들리는 소릴 들어도 된다. 귀는 내가 낼 소릴 가장 먼저 듣는 첨병이다. 귀. 자칫 그저 ‘귀’에 멈출 수 있는 생각을 귀가 아닌 것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이 시의 역할이다. 들어도 듣지 못하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귀라는 생각이 든다.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프로필] 박철 : 단국대 국문과, 제12회 백석문학상, 창비 1987 작품활동 시작, 시집<작은 산>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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