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이
책방 짙은: 대표

아이에게 영어그림책을 하루 한 권씩 읽어주기로 했다. 첫 그림책은 <Leo the Late Bloomer>라는 책이다. 주인공 Leo(레오)는 어느 것도 잘하지 못하는 아기호랑이다. 아빠는 Leo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걱정한다. 엄마는 아빠에게 꽃을 지켜보면 피지 않는다며 인내하고 기다리라고 말한다. 

그러던 어느 날, Leo만의 좋은 시간에, Leo는 피어난다. Leo는 읽고 쓰고 그리고 말하게 되었다. Leo가 좋은 때를 만나 피어났다고 표현한 장면이 인상 깊었다. 그 전까지 Leo의 표정은 시무룩했었는데 흐드러지게 핀 꽃들과 함께 Leo의 얼굴에는 의기양양한 미소가 살짝 걸려 있다. 그런데 딸아이는 이 장면이 아쉽다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잘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잘하게 된 게 아쉬워서란다. “아빠가 나중에 지켜보지 않아서 생략된 거지 레오가 보이지 않게 노력해서 서서히 발전한 게 아닐까”하고 말했더니 “일리 있는 말이네요.”라고 했다. 그렇게 대화를 끝내고 책을 덮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째가 되면서 석연치 않은 감정에 시달렸다. “Leo는 보이지 않게 노력했을 거야”라는 말은 정말 일리 있는 말일까? ‘노력’하지 않으면 피어날 수 없을까. 우리 아이는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학원에서, “열심히 하면 할 수 있어.”, “노력하면 된단다.”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을까. 개인의 노력과 책임을 강조하는 사회의 프레임에 나도 아이도 갇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자 괴로워졌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지 않고 우리 아이만의 속도에 맞춰 기다리며 지지해주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보이지 않게 노력했기에 잘할 수 있었을 거야”라는 말을 뱉어놓은 지금은 과연 그 동안의 내 태도와 말이 ‘진심’이었는가 돌아보게 된다.

나도 모르게 기대하고 욕심 부리며 아이가 끊임없이 ‘노력’하기를 바라온 것이 아닐까.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많은 사회구조 속에서 개인의 ‘노력’과 ‘책임’만을 강조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에 대해 생각했던 적이 많았지 않은가.

피어나지 않을까봐 불안해하는 마음이 모두를 시들게 하고 있다. 지켜보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고, 기다리면 된다. 노력하지 않아도 언젠가 아이는 피어난다. 아무리 기다려도 피어나지 않으면 또 어떠랴. 마흔이 넘은 나 역시 아직도 피어나고 있는 중인데. 그 ‘어느 좋은 때’가 내게도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옳다.

<구성 : (사)한국문인협회 김포지부 고문 이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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