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광성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1. 존재감
중국 명나라 말경 홍자성이라는 위인이 저술한 ‘채근담’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오랫동안 움츠리고 있으면서 힘을 비축해 온 새는, 일단 날면 반드시 높게 치솟는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함축한 말인 것 같아 항상 가슴에 새기고 사는 명언이지요. 

일찍 피는 꽃은 일찍 지고 맙니다. 인생이라는 것은 ‘길고 긴 사업(Longturm Business)’이므로 분별없이 전진만 하다가 도중에 좌절하거나, 지쳐서 쓰러지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또한 자신의 모습을 올바르게 디자인하여 버거워도 여유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보는 것처럼 지혜를 바탕으로 유연하게 사회를 바라보는 미덕이 바른 사회를 만드는 첩경입니다.

지식인이 만연한 시대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좋은 방법은 전국적인 방송에 나가 단골 패널이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시청각 매체인 TV에 출연하여 좋은 인상을 남겨 단골 패널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실력을 갖추어야 함은 물론 시청자들의 입맛에 맞게 입 안에서 단내 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므로 우리가 항상 TV에서 같은 얼굴만을 보게 되는 것은 어쩌면 인지상정인지도 모릅니다. 

같은 패널이라도 예능인과 다르게 정치인이 시각적인 자신을 만들기 위해서는 평소 아무리 냉
철한 지성을 가진 당신일지라도 TV 매체 안에서는 냉소적인 입장을 제어한 체 가능한 한 미소 짓고 미소 짓고 또 미소를 지어야만 합니다.

시청자들이 편안해하고 만족해야 다음에 PD가 또 불러주니까요. 하여 어렵겠지만 집에서, 혹은 사무실의 화장실에서라도 거울을 보며 무수하게 미소 짓는 연습을 수시로 해야만 변신이 가능한 것입니다. 어렵지요. 크든 작든 위정의 길은 하여 겁나 먼 왕국과 같은 것이지요.


2. 바라보기
근대 조선 시절, 갑신정변 당시에 개화파는 외국의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민족적 위기 상황을 독자적으로 극복해 가자는 민족적인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존심을 모토로 한 애국주의는 정변을 뒷받침하던 군사력의 절대적인 부족과 당시의 집권층이던 수구파들의 비협조적인 냉소, 그리고 외래 세력과의 충분하지 않은 거래 협상 등의 원인이 작용되어 삼일천하로 끝나고 말지요. 

당시 갑신정변의 실패는 부족한 준비성으로는 역사적인 거사를 치를 수는 절대로 없으며, 개인
이든 조직이든 민의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행동은 제약을 받게 마련이라는 교훈을 심어 주었습니다.

정변의 주동자들이 아무리 역사적인 당위성을 역설하고 근대적인 국가의 건설이라는 명분으로 평가를 받긴 했어도, 후대 역사학자들의 대부분 의견은 갑신정변을 ‘각기 이해관계가 다른 정치 세력들 간의 정권 쟁탈전이었다.’라는 시각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범위를 축소하여 내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인 김포시의 경우에 갑신정변 같은 시각을 대입하여 보면, 모두 함께 가야 할 발전의 현장에 정작 주도해야 할 시민은 없고 잿밥에 눈먼 주변인들만 판치며 배를 산으로 끌고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라보기’를 잘해야 합니다. 

‘본다’는 의미는 자신의 눈에 비친 사물이나 현상을 그대로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관찰한다’는 말은 조금 거리를 두고 대상이나 지형물을 어떤 뚜렷한 의도를 가지고 살피는 것이지요. ‘관람한다’는 말은 이곳저곳 보고 싶은 것을 두루두루 조망하는 것이고, ‘시찰한다’는 말은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살펴보고 다른 궁리를 하겠다는 선전 포고입니다. 관찰하며 바라볼 때 비로소 관람하며 시찰할 수 있는 ‘바라봄’의 바른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3. 지혜의 발견
중국 춘추전국 시절, 위나라의 왕이 초나라 왕에게 양귀비보다 더 고운 미녀를 선물했습니다. 
그러자 당연히 초나라 왕은 그 미녀에게 푹 빠져 정사를 돌보기를 소홀히 하였지요. 애초에 위나라 왕의 계략은 미인계를 통한 당시의 패권 국가 초나라의 국력이 쇠잔해지길 기다리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초나라의 왕에게는 현명하고 명민한 애첩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위나라의 미녀에게 말하여 왕을 알현할 때는 항상 코를 가리게 했고, 궁금한 왕에게는 그녀가 왕에게서 나는 냄새가 지독하여 코를 가리는 것이라고 간언했죠. 당연히 화가 난 초나라의 왕은 그 위나라 미인의 코를 베게 하였고 나라는 지켜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대륙이라고 말하는 중국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그늘에는 초나라 왕의 총애를 받던 위나라의 미녀도, 위나라 왕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미소년 미자하도 종국에는 시기와 모함으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을 수밖에 없었던 비극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비전을 공유하면서 전국 시대의 예나 갑신정변을 예로 든 것은 자신이 가진 존재의 한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벌이는 거사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자기 능력의 과부하는 생각하지 않고 세상에 던지는 출사표가 얼마나 위험한 것이지를 말하고자 함이었습니다. 노
력하고 노력해도 어려운 것이 위정(爲政)의 길인데 하물며 덜 준비된 인물이 섣부르게 출사하는 현상의 나열은 가뜩이나 할 일 많은 우리 사회의 난제를 더 어렵게 만들 뿐입니다. 

자신의 정열을 완전히 불태웠을 때만이 비로소 연소 된 잿더미 안에서 정제된 내가 태어납니다. 능력이 출중하여 세상에 과시하는 용기도 좋고, 미디어 매체를 이용해서라도 세상에 자신이 알려지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완전하게 절제된 나, 내공이 단단하여 단전에 힘이 비축된 나를 만들어 창공으로 힘차게 비상하는 ‘참된 나’를 발견하는 작업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 사회에 질서는 활짝 그 꽃을 피우고, 사회적인 분별력을 확실하게 획득한 
내가 내 나라와 지역사회에 모범이 되는 우뚝 선 존재로서 앞장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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