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와 환경을 고민하며 실천하는 사람들①

포장재 없이 알맹이 내용물만 판매하는 리필점

‘제로 웨이스트’ 공감하는 20대 주축 방문 이어져

용기 가져와 원하는 만큼 구입, 재활용 제품도 다양

▲평일 오후에도 많은 ‘제로 웨이스트’ 동참자들로 북적이는 매장.

서울 합정역 근처에 위치한 알맹상점은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오라’는 모토로 지난해 6월 문을 연 가게다. 그런데 이곳에 20대를 주축으로 하루 60~70명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모토가 말해주듯 이곳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포장재 없이 내용물만을 파는 ‘리필 스테이션’이다. 물론 용기는 본인이 가져오거나 이곳에 비치된 에코백, 유리병을 이용해 구매할 수 있다.

‘2050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목표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코로나19로 많아진 배달음식, 새백배송 등을 통해 불필요하게 발생하는 거대한 쓰레기에 두려움을 갖기 시작했다. 이렇게 쏟아내는 포장재로 과연 우리는 어떤 세상을 맞이하게 될까? 열심히 플라스틱을 분리수거해도 20~30%밖에 재활용되지 않고 소각된다는 사실은 아예 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는 게 답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런 자각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를 실천하도록 이끌고 있다.

▲토너에서 로션, 크림, 클렌징오일 등 다양한 화장품류가 구비된 코너. 저울에 가져온 용기를 올려 재고 원하는 만큼 g 단위로 넣은 뒤 무게를 적어 계산한다.

‘플라스틱 프리’ 활동에서 이어진 리필 스테이션

알맹상점의 시작은 망원동시장이다. 여성환경연대에서 활동했던 고금숙 씨와 주부였던 양래교, 이주은 씨는 시장 앞에서 ‘검정 비닐봉지를 없애고 장바구니를 쓰자’, ‘선포장하지 말자’ 등의 플라스틱 프리 운동을 벌였다. 그러다 공산품류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시장상인회 한 켠에 ‘세제소분숍’을 운영하기에 이르렀고, 보다 본격적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6개월의 준비 기간을 거쳐 알맹상점을 열게 됐다.

세 사람이 공동대표이자 시간제로 일하고 있는 이곳은 생활에 필요한 400여 제품을 취급하고 있다. 액체로 된 세탁세제, 섬유유연제, 샴푸, 린스 등은 물론 클렌징, 토너, 로션, 크림 등의 화장품, 올리브오일, 발사믹소스 등의 식품까지 원하는 만큼 덜어서 구입할 수 있다. 용기 앞에는 제조업체, 제조번호, 제조일자 등과 성분이 표시되어 있어 안심하고 구입할 수 있다. 모든 제품이 환경부 친환경 인증을 받았으며 화장품의 경우 동물실험도 하지 않았다.

▲세 명의 공동대표 중 한 명인 이주은 대표.

고체비누, 대나무 칫솔, 천연수세미, 커피 찌꺼기로 만든 화분과 연필, 소창으로 만든 다회용 커피필터, 종이테이프, 버려진 플라스틱으로 만든 줄넘기 등 천연재료로 만든 제품과 버려진 것을 활용해 재탄생한 제품도 눈길을 끈다. 다만 취급하고 있는 모든 물건들이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성이 아닌 다회용 사용가능 물건이며 ‘플라스틱 프리’들이다.

이주은 공동대표는 “제로 웨이스트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마진을 높게 잡지 않아 판매가격을 낮게 책정했음에도 알맹상점의 뜻에 동참해 멀리에서도 와주는 열정적인 고객 덕분에 순항하고 있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주변의 염려를 떨치고 알맹상점은 오픈 몇 개월 만에 지속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알맹이만을 팔기 위한 시도가 쉬운 건 아니었다. 리스트는 플라스틱 프리 생활을 하고 있던 세 대표가 사용 중인 제품으로 채울 수 있었지만 소량으로 포장 빼고 납품을 받는 일은 기업의 오랜 관행을 깨는 어려운 일이었다. 기업은 속포장과 이중, 삼중으로 된 포장을 빼고, 개별 포장도 않고 내용물만 보내달라는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해 반송이 이어졌다. 별도의 약속을 통해서만 겨우 거래가 성사될 수 있었다.

▲올리브오일, 발사믹소스 등을 원하는 만큼 덜어 구입할 수 있는 코너.

세제, 화장품, 오일, 소스 등 원하는 만큼 담아서 구입

이주은 대표는 화장품의 경우 강도 높은 고난의 길을 걸었다고 말한다. “화장품 공장의 최소 판매는 100kg, 200kg인데 우리는 20kg짜리 공급을 원했기 때문이다. 업체 입장에서도 생산 라인을 따로 만들어야 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행히 한 친환경 화장품업체가 우리 뜻을 공감해 과감한 결정을 해줬다”며 이 업체가 리필통 재사용 시스템까지 갖춰 위생적인 사용이 가능하도록 했단다.

알맹상점은 손님들에게 다 쓴 유리병과 플라스틱 병뚜껑을 기증받는다. 재활용되지 않는 우유팩도 모아오면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만든 치약짜개를 받을 수 있다. 유리병은 세척 소독해 용기 준비가 안 된 손님에게 500원에 제공하고 있다. 에코백도 기증 받아 마찬가지로 손님이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손님들이 다 쓴 유리병을 모아 가져다 주면 소독 후 용기를 가져오지 않은 손님에게 제공한다.
▲상점에서 제공하는 유리병은 자체 소독작업을 한다. 미처 소독하지 못한 용기를 가져왔다면 이 플라스틱 통에 넣고 손으로 돌리면 소독이 된다.
▲친환경 재료로 만든 고체 비누와 세제.

알맹상점은 기업을 대상으로 제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쓰레기 어택’을 진행하기도 한다. 지난해 외국에서는 수거시스템을 도입해 재활용되도록 운영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은 ‘브리타 필터’에 수거시스템을 도입하라는 촉구 어택을 진행해 기업의 답변을 들었다.

지금은 화장품업계에 재활용이 편하도록 용기 재질과 구조를 바꾸라는 화장품 어택을 하고 있다. 화장품 용기는 90%가 재활용할 수 없는 복합재질로 만들어지고 있다. 이에 다 쓴 화장품 용기를 모아 화장품 회사에 보낼 생각이며, 재활용이 안 되는 용기의 표시사항을 넣고, 일부 포장재 회수 조건으로 화장품업계가 얻은 재활용 포장재 사용 편리성 단계 ‘어려움’ 등급 표기 제외규정을 되돌려야 한다는 의견을 모아 촉구하는 어택을 진행 중에 있다.

알맹상점이 “특별하지 않은 보편적인 상점이 되는 시대를 바란다”는 이 대표는 “무포장과 용기의 값이 무조건적으로 매겨져 내가 용기를 들고 가 제품을 담아오는 문화가 당연해지기”를 소망했다. 또한 가장 손쉬운 쓰레기 줄이기 실천방법으로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않는 ‘텀블러, 장바구니 갖고 다니기’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재활용품 분리수거 방법 등 환경 관련 서적도 눈에 띈다.
▲플라스틱 뚜껑을 모아오면 치약짜개로 재탄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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