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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에서 출토된 유물의 규모와 김포관아 금릉관
  • 정현채 김포문화원 사무국장
  • 승인 2021.03.02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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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신도시에 식수를 공급하는 배수지를 만들기 전에 모담산 정상 주변에 관한 지표조사가 있었다. 그 결과 1800년 前 마한시대 금귀고리가 한반도에서 최초로 출토되었다. 지금은 김포에서 볼 수 없는 금귀고리와 칼, 구슬을 비롯하여 30〜40년 동안 김포 전역에서 출토된 유물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김포시 지원으로 문화원에서 파악하고 있다. 개인이 보관하고 있거나 기록되지 않은 것을 찾아내는 것은 어려울 것이나, 그동안 출토된 유물을 기록한 것을 토대로 시대별, 유물별로 체계적으로 정리한다면 전시할 수 있는 규모를 산정할 수 있고 김포의 정체성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프로젝트를 수립하는 기초자원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조와 봉림대군이 김포에서 강화로 건너가기 위해 넘었던 공해루 현판, 40년을 전쟁 속에서 살았던 장만 장군의 영정, 金浦라고 찍힌 명문 기와를 비롯한 김포 전역에서 출토된 유물의 규모와 내용. 보관 장소를 2021. 8월이면 알게 될 것이다. 시민의 적극적인 제보나 도움도 필요하다. 문제는 조선시대와 근대를 거쳐서 최근까지 정치문화경제 중심지였던 북변동이다.

아쉬운 것은 20년 동안 급격한 신도시 형성과정에서 김포문화자원은 역으로 놓치고 있었다. 정치문화경제 중심지였던 고려와 조선시대 행정구역인 통진관아는 2020년에 학술연구를 마치고 2021년 지표조사를 시작한다. 문제는 북변동이다. 100년 200년 후에도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과연 어떻게 문화자원을 이어 줄 것인지 논의해야 하는 마지막 시점이다.

김포 고욤나무를 살려야 한다

북변동에 있는 김포관아 건물과 남아 있는 터는 1950년 6. 25 전쟁으로 대부분 소실되었다. 그때까지 유지된 것도 있었으나 70년 동안 북변동은 현재의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김포관아 외삼문 앞의 한양을 바라본다는 망화루, 정조가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금릉관을 비롯하여 김포관아의 정확한 위치를 추정하기 위한 학술조사가 진행 중이다.

개발을 앞둔 북변동 일대의 김포관아 터의 복원과 부분복원 및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을 수 있는 건물존치 등을 논의조차 하지 않는 것은 수천 년 문화유산 터전에 대한 무지요 책임성 회피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다양한 도시문화의 존재를 위해서도 보존과 개발이 함께 이루어지는 지혜가 필요하다. 도시문화의 가치를 확장하는 생명력은 역사문화자원임을 부인할 수 없다.

새로운 문화를 지역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50년에서 100년이 걸린다. 가장 빠른 것은 그 지역의 고욤나무에 다른 지역의 우수한 감나무를 접목해서 맛좋고 우수한 품종의 김포 감을 생산하는 이치다. 즉 김포 고욤나무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북변동의 고욤나무는 김포관아 용금루, 망화루, 금릉관 오청헌 터를 비롯하여 김포군청, 천주교 성당, 구 경찰서, 사택 및 그곳에서 대대로 살아왔던 시민의 생활상이다. 이곳에 새로운 문화를 접목하여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문화도시로 변화하는 노력에 중지를 모아야 한다.

김포 출토 유물 기록자료 수집과 김포관아 학술조사는 김포와 북변동의 고욤나무를 찾고 알리고 논의하여 김포역사문화자원에 새로운 콘텐츠를 접목할 수 있는 기회를 잃지 않기 위함이다. 문화로 소통하는 용기가 절실하다.

정현채 김포문화원 사무국장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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