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광
   김포우리병원
   기획관리실장

흔히들 십 년이면 강산이 한 번 변한다고 한다. 그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변함없는 맛과 정감을 주는 음식점이 김포에 있다. since1979!! 김포 박천순대국집이다.

음식점 문을 연이래 근 40여 년의 세월이 지나고 있지만 지금도 변함없이 예전과 같이 손님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집이다. 지금이야 김포한강신도시가 펼쳐져 있지만 80년대 초만 해도 김포 상권의 중심지는 북변동(北邊洞)이었다.

김포군청과 경찰서, 우체국, 한전, 대한통운, 태연약국, 칠성상회, 김포관, 평화의원과 5일에 한 번 열리는 김포5일 시장, 그리고 강화에서 출발해 김포를 거쳐 신촌은 물론 수원까지 연결된 직행버스 차부가 있는 터미널 인근이 김포의 중심지였다.

유동인구가 붐비고 관공서가 밀집해 있고 5일마다 장이 서는 곳. 더욱이 서울 등 대도시를 가려면 터미널을 이용해야 된다. 이러다 보니 자연적으로 이곳의 주변 환경은 매일 사람들로 붐비는 김포의 명동이었다.

이처럼 유동인구가 많고 왕래가 활발하다보니 때가 되면 먹어야 되고 찾는 곳이 음식점으로, 당연히 사람들의 발걸음 또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음식점을 찾는데 그중 하나가 박천순대국집이다. 그 순대국집이 오늘날까지 근 40년 이상을 함께하고 있다.

아마도 김포지역에서 40년 이상 가업으로 이어가며 활발히 영업되는 음식점으로 유일할 것이다.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북적거리고 자주 들락거리는 곳을 호기심 또는 단골로 찾기 일쑤다. 
순대국은 나이 좀 드신 분들이라면 대부분 친근한 음식이다.

다양한 먹거리가 있고 널린 게 고기이고 배달음식이나 맛집이 있어 선호하는 음식을 골라 먹는 요즘에 비해, 그 당시만 해도 그리 먹거리가 흔치 않고 다양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고 친숙한 음식점이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친근감이 갔고, 자주 찾는 음식 중 하나가 순대국밥이었는지도 모른다. 

박천순대국집의 박천(博川)은 이북 평안북도의 남부에 위치한 지명이다. 40년 전인 1979년도에 북변동 소망약국 골목 초가집에서 상호명 ‘박천식당’으로 첫 개업한 이래 김포 북변동 5일시장과 함께 오랜세월을 부대끼며 오늘날까지 명맥은 물론 활발히 번창 중이다. 20여 년 전에 창업식당에서 벗어나 좀 더 규모가 있는 300여미터 떨어진 지금의 (구)터미널 인근으로 확장 이전해 ‘김포박천순대국집’으로 줄곧 이어져 오고 있다. 

식당 안에 들어가면 창업주 어르신 두 분의 사진이 다정하게 걸려있다. 1대 창업주로 오래 전에 작고하신 고창득(아버지)-김학경(어머니) 어르신이시다. 두 분의 고향은 이북이다. 고창득 어르신은 평안도 박천 태생이시고 부인 김학경 어르신은 평양이 고향이다.

6·25전쟁으로 남쪽으로 피난오시어 김포에 정착했는데 먹고살기가 힘들고 하도 못살아 뭐를 해서 먹고 살아가야 할지 사는 게 막막할 때 영등포시장에서 우연히 먹어본 국밥 한 그릇을 떠올리고 박천 고향의 맛을 기억해 창업한 것이 순대국집이었다.

처음에는 작게 시작했다. 순대 한 관, 간 몇 개, 고기 약간, 김창 경 여사의 맛깔스런 음식 솜씨가 손님들의 입맛에 맞아서인지 날이 갈수록 단골 손님이 하나둘씩 늘어 갔고 제법 국밥집이 잘됐다. 읍내는 물론 월곶, 양촌, 강화, 심지어 서울인천에서도 한 번 왔다간 손님이 다시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세월은 흘러 자식들 공부와 출가를 다 시키고 김포는 물론 인근 도시까지 이름 난 순대국집으로 자리매김되어 갈 즈음에 국밥집 창업주셨던 부모님들이 돌아가셨다. 평생을 외골스럽게 지켜온 삶의 터전인 국밥집은 자연스럽게 딸(고선화, 60세)이 2대 사장으로 물려받게 됐다.

어르신들로부터 오래 전부터 전수받은 레시피와 경험을 바탕으로 그 맛의 비결은 고스란히 이어져 오고 있고 지금도 변함없이 성업 중이다. 현재는 고선화 사장의 아들(이문환, 40세)과 며느리(권은숙, 40세)가 바톤을 이어받아 3대째 사장으로 가업을 이어 가고 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오래 전의 일화가 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기업인 유한킴벌리 회장님께서 강화쪽에 일을 보고 김포에서 점심이나 하겠다고 우연치 않게 들른 곳이 박천순대국집이었다. 이북이 고향이셨던 그룹 회장의 입맛을 확 사로잡은 비결은 고향의 맛이었다. 망향의 아픔과 애환 그리고 감동을 순대국 뚝배기 한그릇에서 느꼈다.

그 후 수시로 오시는 특별 단골 분 중에 한 사람이었다. 북에 가족을 두고 홀로 피난 오셔서 자수성가하신 그룹 총수의 입맛에 감동을 준 것은 고향에서 먹었던 그 맛 박천순대국이었다. “순대국 첫 숫갈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고 그 어떤 산해진미에 비길 데 없는 맛이었다”고 했다.
 
나 역시 박천순대국집의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 군대에 간 아들녀석 면회를 갔는데 점심으로 굳이 잘 아는 맛집 순대국집을 가고 싶어 했다. 젊은애가 무슨 순대국 타령이람 하면서 연천의 전곡역 인근으로 아들 동기 몇이서 동행하면서 끝내주는 맛이라며 순대국을 먹었다.

평상시 김포 박천순대국 맛에 입이 길들여져 있던 나는 맛에 대한 평가를 하지 않고 몇 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아들녀석과 동기들이 제대 말년 휴가차 우리집에 놀러왔을때 박천순대국을 사주며 연천의 순대국집과 비교해 보라했다. 밥을 먹고 나온 녀석들은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세상에나 이런 순대국 맛이 있었다니..” 이구동성으로 “최고 최고”라며 엄지척을 해댄다. 이후 이 녀석들은 사귀는 여자친구 또 결혼 후에 장인 장모등 어른들을 모시고 와서 박천순대국을 대접하고 있다고 한다. 

요즘은 젊은이들이 순대국집에 많이 온다고 한다. 다양한 인스턴트 식품과 맛집 등을 찾아 즐기는 문화에 길들여진 젊은층들이 토속적인 순대국을 먹고 나서 그 특유의 엄마가 해준 집밥의 추억 같은 음식 향수에 젖어 아마도 입맛을 바꾸는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다. 또한 순대국 맛에 빠진 젊은이들이 인터넷에 올리고 다양한 리플도 달고 하다보니 저절로 홍보가 된다는 2대 고선화 사장님의 말이다. 순대국과 거리가 먼 요즘애들 입장에서 ‘담백하고 맛있는 순대국으로 인정’한다니 순대국은 우리의 일상과 가장 밀접한 서민 음식으로 입맛이 길들여지면 다시 먹고 싶은 대표 음식이 아닐 수 없다.

순대국밥, 따로국밥, 술국, 머리고기, 오소리감투, 아바이백순대 등 메뉴도 다양하다. 박천순대국집에는 확고한 원칙을 지킨다. 식재료는 무조건 국내산을 고수한다. 
이유는 손님들께 믿음과 양심이 부끄럽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재료는 매일 정해진 육곡간(풍무동 도축장)에서 공수해 온 것을 사용하고 사골육수는 밤새 정성을 다해 고아 국밥 육수로 쓰며 순대에 들어가는 고기, 야채, 당면, 양념장, 선지도 직접 손질하고 다듬고 씻고 삶아 청결과 신선함을 최선으로 담아 손님상에 정성껏 내 놓는다.

혹가다가 손님들 중에 농담으로 “무슨 음식이 이리도 맛있냐. 혹시 음식에 마약이라도 넣었냐, 순대국이 맛있어 중독될 것 같다”는 등 많은 칭찬을 해주고 있어 2대 고사장님은 “행복하다, 더욱 친절하게 이 맛을 꾸준히 지켜가겠다”는 의욕이 넘쳐 난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음식은 와인, 수프, 국수, 빵, 육포라 한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음식은 100년이 훨씬 넘은 토쿄의 소바집이라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외식업은 국밥집이다. 옛날에 서울의 북촌과 청계천 주변에서 인기를 누리던 장국밥을 비롯해 선짓국, 평안도 사람들이 즐겨 먹던 꿩고기로 만든 온반, 탕국 등은 물론 늘어나는 식솔들에게 함께 배불리 먹었던 국밥은 사람들에게 배를 채워주는 끼니 음식이었고 온종일 노동으로 지친 몸을 잠시라도 편안하게 해 주었던 우리나라 가장 오래된 대표 외식메뉴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여전히 인기를 누리는 메뉴가 국밥이다. 우리 민족 고유의 녹녹한 삶과 애환이 듬뿍 담긴 뚝배기 순대국. 김포에 100년의 전통을 어어갈 음식점이길 희망해 본다. 맛과 역사가 서려있고 우리의 입맛을 오래도록 변치 않게 할 대를 이어 온 김포박천순대국집이 언제나 우리 곁에 있어 마냥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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