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목사의 자전적 에세이-3

박영준

김포중앙교회 원로목사

내가 중학교에 다닐 당시 우리 김포 통진지역에는 인삼을 많이 심기 시작하였으며 우리학교 주변에도 인삼밭이 많았다. 나는 그때 소 두 마리가 큰 쟁기를 끌며 밭을 가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큰 쟁기를 황소 두 마리가 꾸벅 꾸벅거리면서 끌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쟁기는 소 한 마리가 끄는 것으로만 생각했고 그것만 보았었기 때문이다.

인삼밭은 1년 된 종삼을 모종을 내어 5년 동안 키운다. 그래서 뿌리를 잘 내리도록 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몇 번을 깊이 갈아엎어서 흙을 부드럽게 만들어 인삼이 뿌리를 곱게 내리게 할 뿐만 아니라 병충해 예방과 토양개량을 위해서도 한 해 동안 그렇게 밭을 관리한다. 김포 통진지역에는 생각이 앞선 분들이 인삼을 많이 심어 경제적으로 재미를 본 사람들이 많았다.

그 당시, 내가 다니던 통진중학교의 교무실 현관에 걸린 큰 유화 한 폭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그림이 나에게 강한 메시지를 주어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이다. 등록금을 납부하기 위해 학교 현관으로 들어서면 왼쪽에는 교무실이 있고 오른 쪽에는 서무실인데 그 전면 벽에 큰 액자가 걸려 있었다. 이마에 태극기를 질끈 동인 50대 노동자가 오른손을 들어 검지를 앞으로 향해 “너는 조국을 위하여 무엇을 했는가?”라고 외치는 그림이었다. 그 그림은 당시 미술교사였던 강환섭 선생님이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나는 그곳에 들어갈 때마다 “너는 조국을 위하여 무엇을 했는가?”라고 묻는 그 물음이 바로 나를 향해 묻는 것으로 보고 듣게 되었고, ‘내가 저 사람과 같은 50대가 되었을 때 저 물음에 나는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곤 했다.

중국 양(梁)나라의 왕언장(王彦章)은 “표사유피(豹死留皮), 인사유명(人死留名)”이란 말을 했다. 범은 죽어서 아름다운 가죽을 남기고,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죽은 뒤에 훌륭한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청년시절에 가끔 학교 서무실 현관에 걸려있는 벽화를 생각하며 ‘나의 생애가 끝날 때, 나는 무엇을 남겨놓을 것인가’를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떳떳하게 대답할 말이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목사가 되어 40여 년간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해 열심히 달려온 것만은 사실이다.

한 때 세계를 제패했던 알렉산더(Alexander) 대왕의 아버지 필립 2세는 자신의 충직한 종을 항상 데리고 다녔는데, 그 종에게 아침마다 첫 인사를 할 때 “대왕이여, 당신은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라고 이상하게 여겨지는 말을 하게 했다고 한다. 이 말이야 말로 모든 인간이 꼭 기억해야 될 말인 것 같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피할 수 없는 엄숙한 죽음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기는 죽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줄로 착각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 목회지가 어느 정도 안정되었을 때, 내게 귀한 메시지를 전해 주었던 모교의 그 그림을 생각하며 후배들에게 장학금이라도 주어 그 그림이 준 교훈의 고마운 마음을 표하고 싶었다. 우리교회 G안수집사께서 모교의 교감으로 취임하면서 나는 두 명의 졸업생에게 각각 20만 원씩 장학금을 주게 되어 내 마음이 얼마나 홀가분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내가 은퇴할 때까지 수년간 전할 수 있었다.

그 즈음에 나의 가난하던 시절에 힘들게 공부하던 일을 생각하며 모교인 서암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을 찾아가 만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돕고 싶은데 어떤 방법이 있겠습니까?” 물으니 “결식아동들이 있으니 그들을 도와주면 좋겠습니다.”고 해서 2년간 3명 어린이들의 급식비를 지원했는데 그 후 출금이 되지 않기에 학교에 전화해서 확인을 해 보니 담당교사가 전근해 가면서 업무 인수인계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 되었다며 다시 연락 주겠다고 하더니 그 후 감감무소식이어서 서운한 마음으로 나도 마무리하고 말았다.

“너는 조국을 위하여 무엇을 했는가?” 중학교시절에 나에게 던져주었던 그 질문에 아주 작게나마 실천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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