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水葬

              정미

세탁기 하나
노인병원 마당 귀퉁이에 모로 누워 
비를 맞고 있네

문짝 떨어져 휑하니 드러난 가슴
날마다 빨랫감을 품속 가득 안던
커다란 몸뚱어리를 빗물이 씻겨주네

물목을 건너는 행상처럼
벌컥벌컥 맹물 마셔대며 일하던 강철 몸이
녹슬고 혈관 터져 
비로소 일에서 놓여난 노구의 저물녘

노인들의 떼를 곧잘 받아주던 폐 세탁기
빗방울 세례를 받으며
한세상 건너가고,
좁아터진 세탁실에서 몰려나온 듯한
저 허리 끙끙 앓는 소리 흐느껴 우는 소리
빗소리와 섞여 흙탕물로 튀고, 흘러내리고

흙물이 쓰는 그 조서弔書를
치매의 우리 어머니 창가에 몸져누워
덧없는 눈길로 읽고 있네

시 감상
새해다. 신축년의 새해다. 새해가 반가운 것은 새것이라는 말과 묵은 것을 털어낸다는 의미가 있어서다. 한자어는 다르지만, 신축은 새로 짓는다는 의미다. 무엇을 새로 지을지 고민해야 한다. 그러기 전에 돌아보자. 어머니, 어머니는 묵은 때를 벗겨주는 세탁기였다. 
좁아터진 세탁실에서 평생 더러운 옷을 말없이 세탁해주던 어머니, 당신이 지금 요양병원 혹은 빈집의 어디선가 흙물의 조서를 읽고 계시다. 새해에는 아주 조금만 더, 부모부터 길 줄 아는 당연한 孝를 실천하자. 뭐가 어려운가? 기본이 된 사람은 무엇을 해도 잘된다. 새해는 기본에 충실한 나를 가다듬어 보자. 거기서 출발하는 것이다. 신축년 새해는.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프로필]
 정미 : 무등일보 신춘문예 당선, 아테나 아동 문학상 외 다수 수상, 
계간 문예바다 편집장, 시집<개미는 시동을 끄지 않는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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