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형
안동대학교(철학)명예교수

좌고우면(左顧右眄)이란 말이 있다. 왼눈으로 둘러보면서 오른눈으로 곁눈질하는 것을 이르는 말로 통상 부정적으로 쓰이는 표현이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이것은 지혜로운 태도라 부를 수 있다. 무모하게 돌진하다가 사고를 일으키기보다는 주도면밀하여 최선을 다하면 좋은 마무리가 되고, 실수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1월(January)은 율리우스 달력과 그레고리 달력에서 한 해의 첫 달이다. 제뉴어리(January)라는 이름은 로마의 신인 야누스(Janus)에게서 따왔다. 야누스는 두 얼굴을 가진 괴물로 한 얼굴은 미래를, 다른 얼굴은 과거를 본다. 야누스는 출입문의 신으로도 불린다.

과거와 미래를 각각 밀고 들어가 그것을 바라보는 문의 신이다. 이 문들을 밀고 들어가면 어떤 일이 나타날까? 코로나 사태로 살기도 빠듯한데, 지나간 과거나 닥치지도 않은 미래로의 여행은 과연 무슨 소용이 있는가? 왜 야누스를 우리는 주목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 어릴 때 기억을 더듬어 보자. 시골집은 대부분 흙벽돌로 담을 쌓아 이웃집과 경계를 지었다. 겉으로 보기에 비슷했지만, 막상 나지막한 싸리문을 열고 들어서면 집집마다 풍경이 달랐다. 채소를 심은 집도 있고, 꽃을 가꾸는 집도 있었다. 초가삼간도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큰 방과 부엌 그리고 건넌방의 모습은 각각 서로 대조적이었다. 게다가 이웃으로 건너가면 그 집의 독특한 분위기는 또 다르게 연출됐었다. 

방앗간과 학교 그리고 과수원의 풍광은 다르기 이를 데가 없었다. 시간여행도 문을 통해 생경함과 이질감을 제공하기는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가 거주했던 시골의 대문을 열고 문지방을 넘어서면 불현듯 놀란다.

퍼뜩 드는 느낌은 지금의 풍경이 과거의 그것과는 너무나도 다르고, 특히 규모가 엄청나게 축소되었다는 것이다. ‘그때에는 저 느티나무는 아름드리 나무였었는데...... 학교 운동장은 너무 작아졌구먼!......’ 지금 고작 수십 명인 저 초등학교는 과거 한 반에 70여 명씩 그것도 오전 오후반으로 나눠 수백 명이 다니던 학교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놀았던 공간은 고작 소꿉놀이터였었다. 

우리의 생각은 기억과 반성으로 이루어진다. 기억은 과거의 사실을 마음에 새긴 것이다. 의지나 믿음과는 달리, 우리의 기억은 저장이라는 문을 통과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경험을 우리 맘속에 저장한다. 그러나 기억을 꺼내는 순간 곧이곧대로 믿었던 기억의 내용은 원래의 것과는 다른 것으로 바뀐다.

마치 회상하면서 찾아간 어린 시절의 집과 학교 그리고 동네가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것처럼. 크나큰 과거의 운동장과 작고도 작은 운동장 중 어느 것이 진짜인가? 분명히 지적도에는 같은 크기인데. 또 다른 생각인 반성은 우리의 학교에 대한 다른 두 느낌을 사실(지적도)로 접근하도록 만들어 준다.

어린 시절의 과장된 느낌과 현재의 축소된 느낌은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상상력은 자체로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를 사실과 멀게 한다는 점에서, 기억에서 거품이 걷힐 필요가 있다. 기억은 좋으나, 모든 기억이 좋지는 않다.

거품 낀 기억은 사실을 훼손하는 역기능도 한다. 그러므로 기억은 반성을 통해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럴 때 기억은 사실의 자격을 갖춘다. 과거가 이러할진대 경험해보지 않은 미래는 어떠한가? 과거의 검증이 동원되면, 미래는 바람직한 사실 쪽으로 방향전환을 할 것이다. 

이렇듯 야누스는 오류 많은 인간에게 과거와 미래의 문을 지혜롭게 열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2020년 한 해는 전 세계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태를 경험했다. 이런 경우 미련한 사람은 스스로 새로운 길을 개척한 것처럼 호언장담하며 돌진한다.

그러나 지혜 있는 사람은 야누스의 얼굴처럼 전고후면하면서 한발 한발 내딛는다. 지금은 지난 한 해의 기억에서 자기중심의 거품을 용의주도하게 걷어내야 할 시점이다. 자기의 오류가능성을 인정하는 사람은 비겁한 자가 아니라 절제하는 지혜를 소유한 지성인이다. 절제라는 중용의 미덕은 낭비보다는 인색에 더 가까운 품성이기 때문이다.

※외부 기고문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