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형
안동대학교 
(철학)명예교수

이번 주 금요일은 크리스마스이다. 벌써 한참 전부터 크리스마스 계절 흥취가 사라져갔는데, 설상가상으로 코로나 19가 온 세계를 얼어붙게 만들어, 크리스마스 운운하는 것은 민망하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크리스마스의 참뜻을 새겨본다면 우리의 삶의 불꽃도 새롭게 피어나 활력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크리스마스Christmas의 로마자는 그리스도Christ + 마스mas로 분절된다. 이는 그리스도를 예배(미사)한다는 말이다. 그리스도는 헬라어로, 메시야는 히브리어로, 구세주라는 뜻이다. 구세주란 세상을 구원하는 임금을 뜻한다. 

또 성탄절(聖誕節)은 성자(聖子)가 탄생한 절기라는 의미이다. 뭉뚱그리면 세상을 구원할 성자가 탄생한 기념 절기가 크리스마스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특정한 종교인 기독교를 모든 인간들의 공통된 표준으로 삼는 것을 싫어한다.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그렇게 되는 것을 편향된 시각이라고 여기며 스스로 기독교인인 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어떻게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태어난 예수가 인류 역사의 중심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더 큰 중국에는 공자가 있었고, 인도라는 대국에서는 석가모니가 있었고, 유럽을 대표하는 정신적 지주는 대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있었는데.....’ 하지만 인간 역사의 현실은 아주 합리적으로만 돌아가는 작동원리는 아닌 것 같다.

오늘은 세계의 표준으로 2020년 12월 20일이다. 내가 어릴 때 사용했던 한국의 단기로 올해는 4353년이고, 북한의 주체 109년, 일본의 헤이세이 32년에 해당한다. 나라마다 고유한 연대기 표시가 있지만, 표준연도는 전 세계적으로 이 ‘서기’(서력기원)로 통일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서기’는 약자로 표현하면 AD(Anno Domini, 예수 후)와 BC(Before Christ, 예수 전)가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수의 출생을 기점으로 전 역사를 통틀어 기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History를 그의 His 이야기 story라고 한다. 

이런 점을 기피하는 이유는 그들의 오만에서 비롯된다고 기독교는 본다. 오만이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과 자신들에게는 잘못이란 없다는 마음가짐을 말한다. 바로 들이대서 말하면, 사람들은 무력하며 철저히 잘못되어 있다. 이런 인간에 대한 믿음이 기독교의 교리이다.

인간의 한계란 수시로, 곳곳에서, 누구에게나 경험된다. 우리는 100리 밖을 내다볼 수 없고, 단번에 두 나라에서 활동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 마음을 모른다. 어릴 때부터 악한 것을 먼저 터득하며, 자기의 유익을 도모하려고 혈안이다. 실존주의 철학은 우리는 이런 한계 상황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고 한다. 이런 약점은 우리의 원죄로부터 비롯된다. 죄는 값을 요구한다. 

그러나 죄의 사슬에 묶인 인간 스스로는 값을 치룰 수 없다. 이런 철저히 무능한 죄 덩어리인 인간을 구원코자 하나님이 내려온 것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겠다’(임마누엘)는 약속의 성취, 바로 크리스마스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아들을 우리의 죗값으로 보내셨기에 이것을 복음(기쁨의 소식)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찬송으로 화답해야 한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들아 그를 맞으라!”

인간의 눈은 오만으로 가득 찰 때 자기 식으로 세상을 보고 욕심을 펼친다. 그러나 한계를 깨닫고 낮아지면 보지 못하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 욕정을 씻을 때 귀에 들리는 소리가 있고, 손에 만져지는 온기가 있으며, 입에 느껴지는 맛이 있고, 떠오르는 마음의 대상이 있다.

이때 느껴지는 다른 것(타자)은 철학자 레비나스의 말처럼 ‘바로 나에게 다가오는 보다 참된 나’이다. 이 크리스마스 시절에 우리의 집념을 내려놓고 들려오는 천사들의 합창을 들어보자. 헐벗은 자신들의 처지를 잊고 이 땅에 내려온 성자를 반기던 목동들의 노랫소리를 음미해보자. ‘하늘에는 하나님께 영광, 땅에는 사람에게 평화’이제 주위로 나아가 그들에게 평화의 인사를 전하며 우리의 구원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이웃을 향하여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그냥 전하는 성탄절을 만들어보자.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세상의 평화를 기원하는 크리스마스 교도가 되자. 엄혹한 코로나 사태가 더 이상 우리에게 죽음의 공포로만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웃은 바로 곁에서 웃고 있다. 메리 크리스마스!

※외부 기고문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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