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손사래를 치며 뺑덕이를 쫓아냈지만, 그녀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풍문 그 사람은 나도 재담할 때 보았소. 혹이 매달린 중늙은이 아니오? 나는 나이도 올해 마흔이고 혹도 없소.”뺑덕이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풍문 아저씨가 분명해요.” “아니라니까.”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는 한시라도 김우희 곁에 가고자 하는 마음밖에 없습니다. 뺑덕이가 앞길을 가로막자 짜증났습니다. 그러자 뺑덕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합니다 .“풍문, 아저씨. 아저씨가 사라진 후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힘들기는 무슨. 네가 뭐가 힘들어?”그 순간 아차 했습니다. 내가 풍문이라는 것을 시인한 셈이니까요.

“아저씨, 혹도 떨어지고 얼굴도 비뀌었지만 나는 아저씨를 알아보았어요. 사랑하는 남자는 아무리 꾸며도 사랑의 눈으로 알아볼 수 있는 거예요.”
뺑덕이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더니 엉엉 우는 것이었습니다. 난감했습니다. 뺑덕이가 나를 좋아한다고 딸에게 질투한 뺑덕어미 때문에 양성지 영감 시대로 도망쳤던 것 아닙니까.

아무리 사랑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고 하지만 뺑덕이를 여자로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내게는 오직 도야지 아씨 그리고 그녀가 환생한 김우희 의사뿐입니다. 이제 김우희와 썸을 타려고 미래로 가는데 여자 혹이 달라붙었습니다. 뺑덕이가 눈물을 닦으며 말합니다. “아저씨, 알아요? 조금 있으면 염포교가 포졸들 데리고 이리 올 거예요.”

“뭐, 뭐, 뭐.”
“제가요. 아저씨 따라오기 전에 우리 집에서 심부름하는 개똥이에게 말했거든요.”
뺑덕이는 주막에 든 낯선 남자가 나,  풍문임을 단박에 알아차린 것입니다. 
그래서 개똥이에게 자기가 나간 뒤 십 분쯤 뒤에 염포교에게 풍문이 변장하고 나타났다고 말하라고 시켰습니다. 그러니 지금 염포교는 육모방방이를 움켜쥐고 포졸들과 함께 쫓아올 것입
니다.

“아저씨, 이제 저하고 도망칠 수밖에 없어요. 염포교가 아저씨를 잡으면 능지처참시킨다고 늘 벼르고 있었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갈등했습니다. 염포교의 끈질기고 잔인한 성품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여기서 도망친다면 조선 팔도 어디로 가겠습니까. 또 이제 내년 4월이면 일본군이 조선을 침략하는데 뺑덕이의 목숨이 보전될지도 알 수 없습니다. 

“알았다. 맞다. 내가 풍문이다. 다른 세계로 가서 혹도 떼고 얼굴도 손 봤다.”
이 말이 끝나기 전에 염포교가 포졸들과 함께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뺑덕아! 어서 감바위로 도망치자.” 그 말에 뺑덕이는 용화사 쪽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거기에 배가 있으니 배타고 도망치자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실랑이를 벌이다가 내가 감바위 쪽으로 뛰어가자 뺑덕이도 따라왔습니다. 감바위 앞에는 정말 쪽배가 있었습니다.

내가 저 쪽배를 타라고 소리치자 그녀는 어리둥절합니다. 그것은 진짜 배가 아니라 타임머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뒤에서는 염포교는 게 섯거라! 하며 쫓아옵니다. 내가 얼른 쪽배를 타자 뺑덕이는 보이지 않았지만 내 눈에는 쪽배를 향해 돌진하는 것이 보입니다. 

배는 한강을 향해 움직였고 간발의 차이로 우리를 놓친 염포교가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김우희와의 달콤한 로맨스도 사랑의 혹 뺑덕이 때문에 곤란해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쩝니까. 이게 다 재담꾼 풍문의 운명이니까요.
 

최영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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