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싶다-

오늘도 학교 주차장은 조리(사)실무사님 차와 내 차가 제일 좋은 자리를 선점한다. 20년 넘게 학교근무중이지만 아무리 주차장이 좁은 학교에서도 주차 걱정 없는 7시 40분 아침 출근길이다. 

학교에 도착하면 내달리듯 위생복으로 환복하고 마치 수술실을 들어가듯이 손톱솔로 박박 손을 씻는다. 한 숨 돌리기가 무섭게 납품업체 차량의 행렬이 이어진다. 축산물 농산물 공산품 수산물 김치 차량들이 줄이어 들어오면 조리(사)실무사님과 품질상태, 수량, 유통기한, 온도 요즘에는 납품하시는 분들 건강상태 체크까지 빠짐없이 확인하고 조리(사)실무사님들과의 조회를 시작한다. 

오늘의 급식설명을 시작으로 조리방법 논의 식재료의 품질상태 논의, 전날 미흡했던 사항과 오늘 꼭 수행해야 하는 일들을 설명하고 의논하다 보면 어느덧 조리시작시간 9시. 이제 다 같이 스트레칭을 열심히 한 후 조리작업장으로 향한다.

드디어 나는 물을 끓여 커피를 탄다. 뜨거운 물을 붓고 마시려고 (아 맛있겠다!) 하면....

조리(사)실무사님의 호출이 시작된다.

“선생님 무는 이렇게 썰면 되요?”

“네 좀 얇은 것 같아요. 12mm로 내려 볼까요?”

“선생님 아까 말씀하신 메추리알은 봉지에 98개에요.”

“네 그럼 가만있어보자... 1~2학년은 3개씩 나머지 학년은 4개씩 주면 되겠네요.”

“선생님 갑자기 소독고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요.”

“아 어제까지는 괜찮았죠? 잠시만요 에이 누전차단기가 떨어졌네요. 어느 실무사님이 벽에 물 뿌렸어요. 하하호호..조금 있다가 올려 볼께요.”

“선생님~~~”

아 내 커피는 오늘도 식었구나...

아. 나는 미지근한 커피를 좋아했지. 아닌가 뜨거운 커피를 마셔 본 적이 없는 걸까?

그렇게 정신없이 아침을 보내고 나면, 이제 본격적으로 급식 준비가 시작된다. 적게는 300명에서 많게는 2천명 가까운 점심준비를 2시간 이내에 완료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해진 업무분장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다지고, 썰고, 튀기고, 볶고, 끓이고 여기저기서 조리가 진행된다. 그 시간동안 나는 조리실을 들락거리면서 중심온도 체크, 염도 확인, 간보기 등 안전한 급식이 제공될 수 있도록 확인한다. 11시30분~12시면 완료된 급식이 배식을 기다린다. 

드디어 아이들이 급식실에 차례차례 들어오면 배식이 진행된다. 요즘에는 코로나-19로 분산배식을 진행하기 때문에 우리학교의 경우도 꼬박2시간 배식을 지켜봐야 한다. 배식이 끝나 한숨 돌리고 사무실에 앉으면, 부재중 전화는 5통이고 못 읽은 메시지는 가득하다. 정리해야 할 일지, 처리해야 할 공문, 다음주 발주등 남은 업무는 오후시간에 처리해야 한다. 영양교육을 위해 자료도 찾아보고 연수도 들어야 한다.

나는 초등학교 영양교사다.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자면

1994년 나는 학교영양사(식품위생직)임용 문의를 위해 교육청에 문의를 한다.

나 : 영양교사 임용에 관해 질문이 있는데요?

교육청 담당자: 영양교사라는 직군은 없습니다. 딸깍

나 : 저기 저기:::::

 

1994년 학교에는 영양교사는 없었다. 당연히 교육과 급식은 별개였다. 영양사(식품위생직공무원)라는 직군만 존재했었다. 그해부터 학교급식은 숫자를 늘리기 시작했다. 정부예산으로 미처 못 지은 급식실을 외부 자본을 끌어 들여 위탁급식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며 100%가까운 급식실시학교를 이뤄냈다.

그러다가 학교급식에 큰 전환점이 발생하는데 2005년 일본발 O-157 장출혈 대장균이 발생했고, 우리나라는 위탁급식 학교를 중심으로 대규모의 식중독이 일어난다. 학교급식은 큰 위기를 맞았고 haccp이라는 위생관리시스템이 도입되었고, 위생안전 관리가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위탁급식업체는 직영급식체제로 전환되기 시작했다.(기부채납등의 형태도 많았다)

한쪽에서는 영양식생활에 대한 인식이 크게 고무되면서, 국민들의 식생활 건강증진 교육도 필수라는 국민적 요구에 2007년 학교급식 전담직원으로 근무하던 영양사가 영양교사로 근무할 수 있는 제도가 입법. 통과되게 되어 배치되기 시작했다. 비로소 급식도 교육으로 제도적 완비가 된 것이다.

학교급식법은 학교급식의 질을 향상시키고 학생의 건전한 심신의 발달과 국민 식생활 개선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고,

학교급식 담당자와 국가는 영양교육을 통한 학생의 올바른 식생활 관리능력 배양과 전통 식문화의 계승·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시책을 강구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그 의무에 대하여 곱씹는 계기가 있었다.

 

또 다른 에피소드이다.

씀바귀는 봄에 나는 채소다. 겨우내 언 땅을 뚫고 나온 봄채소는 그냥 먹어도 약이다. 그 맛이 써서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봄에 씀바귀를 먹으면 그해여름 더위를 타지 않는다” 하여 3천년 전부터 먹어오던 나물이다. 생뚱맞게 씀바귀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내가 존경하는 선배님께서 씀바귀를 제공하고 고초를 겪으셨기 때문이다. 봄에 딱 한번 씀바귀 나물을 제공했더니, 학교에서 어떻게 씀바귀를 주냐고 민원전화를 받으셨단다. 물론 몸에 쓰지만 건강에도 좋고 이런저런 나물이 있으니 가정에서 접해보지 못한 나물을 학교에서 먹어보는 것도 어떨지 전통문화 계승차원에서 제공해봤다고 점잖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렇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건강은 집에서 챙길테니 선생님은 애들 입맛에 맞게 맛있게만 하라”였다고. 그러면서 그래서 찾은 아이들이 하나도 남기지 않는 음식을 찾으셨다고...

두둥 나도 정말 궁금했다. 뭘 해줘도 남기고 버려지는 음식이 속상하니 이 아니 반가울까?

정답은 초코우유

 

내입에는 다 맛있고 건강한 식재료들 투성이인 급식을, 더운여름이나 추운겨울이나 땀을 뻘뻘흘리며 최선을 다해 제공하는데 왜 아이들은 먹어보지도 않고 버리는 걸까?

늘 고민이 된다. 혹 영양선생님이 미워서 급식도 싫은 걸까?

맞다. 세간을 뜨겁게 달궜던 랍스타 급식학교 영양선생님은 연예인급 여신미모였지...

내가 이런 생각까지 해야 하는 걸까?

아이러니하게 이런 생각들이 모여 식생활 교육의 주제가 된다. 아이들의 생각을 태도를 조금이라도 바꿔보자는게 식생활 교육의 목표가 된다. 채소의 좋은 점을 이야기 해주고, 우리전통식생활의 우수한 점을 설명해주며, 친환경농산물의 가치를, 실습을 통한 요리의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 바로 식생활 교육의 주제가 되어 다시 급식을 이해하고 건강한 식생활로 연계되도록 노력한다. 나는 우리아이들에게 건강한 식습관이 깃들여지기를 그래서 생활습관이 바뀌기를 식품의 선택과정에서 한 번 더 고민할 수 있는 건강인으로 자라기를 소망한다.

배식시간 내내 꼬박 식당을 지키다 보면 나의 만보기는 또 만보를 가뿐히 채운다. 나는 오늘도 우리가 해준 건강한 급식을 먹고 자란 아이들이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것이라고 확신하며 교육급식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바라며 꽉 찬 주차장을 향해 즐겁게 퇴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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