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찬소설가

양동이를 놔둔 채 토정 선생은 내 팔을 붙잡고 말했습니다.
“양동이는 아까 약과에 수면제를 발라놓았다. 동이는 지금 세상에서 할아버지인 눌재 영감을 돕고 있는 것이 좋아.”
말씀은 이리하셨지만 내 생각으로는 같이 갔다가 염포교에게 잡히거나 일제 식민지 시대로 돌아가면 괴로운 일이 더 많을 것을 짐작하신 것입니다. 
우리 두 사람은 우리가 이곳으로 타임 슬립했던 양성지 선생 묫자리로 갔습니다. 토정 선생이 뭐라고 주문을 외우더니 내 팔을 잡아끌었습니다. 그 순간 정신이 아찔했는데 눈을 떠보니 눌재 선생 묘 위에 엎드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토정 선생은 우두커니 서서 저를 바라보고 있더니 말했습니다. 토정 선생은 염포교가 설공찬을 잡아 저승으로 보냈다는 말과 함께 내가 미래로 가는 방법을 일러 주셨습니다.
“풍문, 나는 이제 다시 죽어 저승으로 간다. 언젠가 네가 죽으면 만나게 될 것이다.” 하고는 스르르 사라졌습니다. 이제 토정 선생님과는 죽기 전에 만날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좋은 스승을 모신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한참 내려가는데 눈에 익은 사람들이 지나갑니다. 

재담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지만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제 트레이드마크인 혹도 떨어진 데다 성형수술한 것처럼 바뀌었으니 알아볼 수 없겠지요. 내가 살던 집 근처까지 갔는데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목이 말라 주막에 들어서려다 나는 돈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낭패다 싶어 더듬으니 허리춤에 괘낭이 보이고 열어보았더니 종이돈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토정 선생이 넣어둔 것이겠지요. 나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선생님에게 감사를 드리고는 주막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누굽니까? 뺑덕어멈입니다.
“호호호. 손님 어서 오세요. 무얼 드릴까요?”
뺑덕어멈은 전혀 나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한쪽 구석에서 염포교와 일행이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시치미를 떼고 물었습니다.

“나는 이 고장 사람이 아니지만, 예전에 한 번 온 적이 있소. 그새 주인이 바뀌었소?”
“네, 한 달 전에 이 주막을 인수했지요.”
뺑덕어멈은 수다를 떨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막걸리를 시키자 뺑덕이가 소반에 안주와 막걸리를 얹어 가져왔습니다. 그녀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어디에서 본 듯한 사람이라는 표정을 지었을 뿐입니다. 염포교가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백마도가 몇 번 나오길래 나직하게 뺑덕어멈에게 물었습니다. 백마도에 무슨 일이 있냐고.“아뇨, 거기 벙어리 사내가 사는데 낚시로 물고기를 잡아 사람들에게 팔고있어요.”

그 말을 들으니 가문돌은 잘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2020년이나 그 이후의 날을 선택해야 합니다. 막걸리를 마시고 나서 셈을 치르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때 슬며시 누군가 다가왔습니다. 뺑덕이었습니다.

“저, 풍문 아저씨죠?” 그녀의 말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자 뺑덕이는 풍문의 얼굴이바뀌었지만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고 말하며 내 뒤를 따라왔습니다. 나는 시치미를 떼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감바위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동무인 조헌이 낚시질을 자주 하던 감바위에서 쪽배를 타고 한강으로 나가면 된다고 했습니다. 쪽배가 타임머신이니 가고 싶은 시대만 생각하면 간답니다. 쪽배가 정말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믿어야 합니다. 나는 뒤따라오는 뺑덕에게 소리쳤습니다.

“아가씨, 왜 나를 졸졸 따라오는 거요?”
“풍문 아저씨! 왜 그러세요?”
“나는 그럼 사람이 아니오, 쫓아오지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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