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형
안동대학교
(철학)명예교수

대학 2학년 때의 일이다. 친구와 도서관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말싸움을했다. 내가 본 입장을 객관적이라고 하고 남이 본 생각을 주관적이라고 우겼다. 친구는 나보다 더 시골뜨기라, 그를 얕잡아보면서 좀 제대로 알고 얘기하라고 우격다짐으로 몰아세웠다. 2학기 기말시험 준비를 하면서 그런 내용으로 서로가 언쟁을 벌인 것이다.

나는 정말 한심한 철학과 학생이었다. 그렇게 흔하게 쓰는 개념을 당연히 제대로 알고 있어야 했고, 이것을 시비 삼았다는 자체가 웃기는 일이었다. 그러다가우리는 이듬해 봄에 나란히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각각 다른 부대로 전출해 갔다.

사실 진짜 한심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자대에서 우연히 책을 읽다가 결정적으로 주관과 객관을 혼동하여 우긴 장본인이 바로 나였음을 발견한것이다. 이런! 내가 무식했을 뿐만 아니라, 친구에게 무식하다고 뻔뻔스럽게 큰소리를 쳤던 것이다. 나는 스스로 부끄러움에 살이 떨렸다.

기억을더듬어보니 아직까지도 사과를 하지않았다‘. 미안하다 친구야. 담에 만나면 양심선언을 하고 밥 한 그릇 사마’ 돌아보면 이런 무지는 옹졸한 내 자신을 숨기려고 상대방을 깔본 미숙함에서 비롯되었다. 우리 세대는 한자와 한글 병용세대이다. 한자용어를 한 번만 헤아려 봤더라도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관이란 임금 혹은 주인 주(主) 볼 관(觀), 즉 주인이 보는 입장이고, 객관은 손님 객(客)에 볼 관, 즉 손님이 보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주인이 보는 것과 손님이 보는 것은 다른가? 다르다. 평가되는 값이 다르다. 예를 들어, 엄마가 보는 아기는 귀엽기 짝이 없고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그러나 낯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 아기는 그저 그런 애일 수 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공부를 2등하는 학생의 부모는 그가 안타깝고 한심한 녀석이다. 조금 더 하면 1등인데, 자기보다 못한 친구까지 챙기면서 놀고 있으니 안타깝다 밉기 짝이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 눈에 그아이는 리더십을 갖춘 큰 그릇이다.

그래서 보는 관점이란 다르기도 하지만 상황에 따라 요구되는 관점도있다. 주관적인 생각이 옳은 생각이 되려면 주관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즉 1인칭의 사람이 편견이나 선입견을 내려놓고 사실로 다가서는 냉정함을 유지해야 하고, 동시에 사태파악을 통해 나오는 결론을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무사 공정한 태도를 가져야 된다.

그런데 사람이란 감정의 영향을 받는 존재이다. 따라서 불편부당의 태도를 가지기 위해 객관적인 생각을 동시에 투과시켜야 한다. 아무리 판단자의 생각이 옳다 하더라도 이런 절차를 가지는 것은 인간이 잘못을 저지르는 나약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동시에 공정한 판단을 이끌어내려는 목적이 있다.

지금 한국은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싸움을 지켜보는 조마조마한 비일상적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주에는 검찰총장의 징계를 결정한다고 한다. 문제는 총장의 징계를 결정할 징계위원을 법무장관이 지명한다는 것이다. 장관은 총장을 잘라내려는 주관을 갖고 있다.

이렇게 되면 징계위원회는 법무장관의 생각의 되풀이, 즉 법무장관의 주관이 반복되는 절차라는 것이다. 검찰총장의 징계를 당연시하고 진척시키는 법무장관의 행위는 이미 검찰에서 뿐 아니라 법원 내부에서조차 부당하다고 판단되었다.
이를 무시하며 표독스럽게 밀고 나가는 법무장관의 태도는 객관이 반영되지 않은 주관일색이다. 더 한심한 것은 객관을 수용하여 검찰총장으로 임명해 놓고는 자기 뜻에 반한다고 그를 쫓아내는 수순을 밟는 대통령의 주관이다. 늘 자기네 편만 챙기며 주관과 객관을 편의에 따라 혼동하여 쓰는 그의 무지가 안쓰럽다.

정치란 사태의 주관과 객관을 잘 파악하여 균형을 유지시킴으로써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주관과 객관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면서 설득하는 통치술이 수사학이다. 그러나 수사학을 오용하면 사기술이 된다. 사기술은 주관을 객관으로 혼동 시켜 사람들을 바보로 만드는 일이고, 수사학은 주관과 객관을 구분하도록 사람들을 똑똑하게 만드는 일이다. 전자는 주관만 남고, 후자는 양자가 공존한다. 서양의 위대한 철학자 칸트는 말한다. ‘내용(객관) 없는 주관은 공허하고 생각(주관) 없는 객관은 맹목적이다.’ 

※외부 기고문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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