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식
전 김포대 총동문회장,
전 김포시의회 의장,
전 경기도의원

평생을 농부로 일하면서 나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가슴에 담고, 힘들다고 하늘만 원망하지 않고 씨앗을 뿌려 거둘 때까지 여든 여덟 번의 손길이 갈 정도로 공이 많이 든다는 의미를 담은 쌀 미(米)자의 가르침대로 여든 여덟 번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농사를 지어왔다. 옛 선인들이 남겨놓은 일성록(日省錄)처럼 내가 농부로 살아오면서 일상적으로 깨우치고 생각해왔던 내용을 몇 가지 정리해보고자 한다.

1. 농사 속에서 우리는 생명의 신비로움과 살아있음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경제적 측면을 따지더라도 농업은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말처럼 정직의 경제를 말한다.
또 ‘콩 세 알을 심어, 한 알은 새가 먹고 한 알은 땅벌레가 먹고 나머지 한 알은 내가 먹는다’는 말처럼 나눔과 보살핌의 경제가 바로 농업이다. 나아가 ‘농사는 사람이 짓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이 짓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겸손과 감사의 경제를 실천하는 것이 농업이다.

2. 추수를 마치고 최근에 <장태평의 새벽을 여는 편지>를 다시 읽어보았다. 그 책에는 저자 말대로 ‘현장의 지혜와 아이디어, 용기와 희망, 꿈과 비전’ 그리고 ‘길이 보이지 않아 막막하거나 난관 앞에서 마음이 약해졌을 때 용기를 주고 지혜를 줄 수 있는’ 사례들이 담겨있다.

첫째,  동기부여 전문가인 마크 샌번이 지은 <우체부 프레드>라는 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우체부 프레드는 실존인물이다. “프레드는 지극히 평범하고도 단조로운 우편배달이란 일을 아주 특별한 일로 만들어 감동을 준다.

그는 우편물을 아주 깔끔하게 묶어 구겨지지 않도록 우편함에 넣어 받아보는 사람을 아주 기분 좋게 한다. 뿐만 아니라 우편물을 배달하면서 현관문에 부착된 광고물을 떼어내고 인도에 흩어진 신문도 치운다. 
청소차가 아무 데나 놓은 재활용 쓰레기통까지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옮겨놓는다. 도둑이나 강도가 그 집이 비어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프레드는 아주 평범한 일을 특별하게 해서 특별한 사람이 된 것이다.” 우리 농업계에도 프레드 같은 사람이 많다. 매일 매일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분들이 있기에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 농업이 이만큼 유지되는 것이다. “

당신이 하는 일에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면 누구도 그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책 속의 말처럼 국민의 먹거리 산업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최고의 가치산업인 것이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우리 농업인은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자격이 충분하다.

“다른 사람의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행동하는 프레드가 되어라. 그래서 다른 사람의 가슴에 불을 당기는 불꽃이 되어라.” 처음 이 문장을 접했을 때부터 나는 우리 농촌을 건강하게, 튼튼하게 하는 일이라면 내가 먼저 기꺼이 앞장서서 불꽃이 되겠다는 다짐으로 살아왔다.

둘째,  장석주 시인의 <달과 물안개>라는 산문집에 실린 시 한 편이 소개되어 있다. “대추 하나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한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 한 알, 벼 이삭 하나, 어느 것도 그냥 영글어지지 않는다. 어디 태풍 ·천둥·번개뿐이겠는가. 우리 농업인들의 한숨과 땀이 깊게 배어야 모든 작물이 제 몫을 할 수 있다.
살아가면서 태풍 하나, 천둥 하나 만나지 않는 인생이 있겠는가. 아무리 큰 위력의 태풍도 다 이겨내고 더 단단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주 작은 비바람에도 무너지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특히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분들은 누구보다 혹독한 비바람을 이겨냈을 것이다.

3. 봄에 뿌린 땀만큼 가을이 풍성하다고 했다. 인생도 농사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어떻게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
오늘 우리가 흘린 땀이 내일 달콤한 열매로 돌아올 수 있도록 ‘어렵다, 힘들다, 외롭다’고 주저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신난다, 즐겁다, 보람있다’는 진취적인 자세로 공부하면서 일해보자.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긍지는 가장 위대한 에너지원 중의 하나라고 한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미래가 바뀔 것이다.

4. 세계적인 투자전문가인 로저스 홀딩스의 짐 로저스 회장은 “농부라는 직업이 지난 30년간 어려운 직업 중 하나였지만 향후 20년간은 가장 선망되는 직업이 될 것”이라며 “만약 미래에 직업을 바꿀 예정이라면 농부가 되라고 조언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로저스는 우리에게 긍정적이고 잠재력이 있는 미래를 바라보라고 한다. 그런데 농부가 되고 싶다고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하늘이 불러주어야 농부가 되는 것이다.

5.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모든 행위는 공부다. 우리는 누구나 매일 공부를 하고 있다. 상인의 공부는 장사고 농부의 공부는 농사다. 일 년 사계절 농부는 씨 뿌리고 거둘 때까지 공부의 연속이다.
작가 서정홍 님은 <농부의 인문학>에서 사람은 누구나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농부는 우리 식구가 먹는 음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 왔는지 반드시 알아야 한다. 어느 나라에서, 누가,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생산했는지도 알아야 한다.

더구나 음식 속에 어떤 성분이 들었는지, 이 음식을 먹고 나면 앞으로 내 몸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날지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 한다. 한 사람이 병들면 한 가족이 병들고, 한 가족이 병들면 한 나라가 병들고, 한 나라가 병들면 지구 전체가 병드니까요.”

농촌사회는 유구한 한국인의 정서적 뿌리다. 이웃과 함께하는 배려와 정다움, 공동체 감정 그리고 이를 근간으로 하는 지역향토문화가 있다. 정서적으로 행복한 농촌을 만들고, 농민들의 공동체의 삶의 질을 향상시킴으로써 김포평야 전체에 흥이 넘치는 풍년가가 연연세세(年年歲歲) 울려 퍼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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