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형
안동대학교
(철학)명예교수

수년 전‘ 알파고’라는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이 깐깐한 바둑선수인 이세돌 9단과 바둑을 둬 4대1로 승리를 거두자, 난리가 났다. 대부분의 텔레비전 시청자들은‘ 이제 큰 일 났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 반응은 단순한 사실의 수용이아니라‘, 충격이다. 이제 곧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시기가 도래할 것이고, 인간은 그 하수인으로 전락할 것이다.’는 우려를 담고 있었다. 그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에 폭발적 관심을 보이고,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각광을 받게 되었다. 급기야 선도적인 대학들은 앞을 다투어 인공지능 강좌를 개설하고 나아가 인공지능 단과대학까지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이미 유수한 대학에 인공지능 전문 인력을 배출하고 있는데, 삼성전자와 같은 회사에서는 그런 전문 인력을 ‘모셔오는 데’상상을 초월하는 특별대우를 마련해 놓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왜 이와 같은 기현상이 인공지능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인공지능을 더 빠르게 발전시킬수록 인간 자신의 미래가 더 끔찍하게 불행하게 될지도 모른다는데, 이런 인공지능의 발전을 도모하는 일은 도대체 무슨 연유에서인가? 왜 이런 역설적 사태가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가? 이 역설적 현상은 최근 인터넷을 통한 가상공간의 창출로부터 빠르게 촉진되었다.

앞으로는 이 가상현실이 확장되어 실재현실과 합쳐진 증강현실로 이동하면서 인간의 삶이 달라지리라는 가정이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증폭시켰다. 이 증강현실의 세계를‘ 초월세계’라고도 한다.

1990년대 닐 스티븐슨이라는 사람이 <폭설>이라는 소설을 쓰면서 ‘초월세계’(메타버스, metaverse)라는 개념을 사용하였다. 메타버스란 초월meta과 세계universe라는 단어의 합성어로서 가상현실과 실제현실이 공존하는 증강현실의 세계를 말한다.
이것은 인터넷을 조작하여 생성하는 가상세계까지를 포함하는, 확장된 세계이다. 실제세계(현실)는 우리가 평소에 경험하는 세계이고, 가상세계(가공된 현실)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조작하는 세계를 말한다.

초월세계란 이 양자가 같이 어우러지는 공존의 세계를 말한다. 따라서 초월세계란 인공지능과 인간이 상호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는 전제에서나 실현 가능한 세계이다. 즉, 인간과 인간이 만든 로봇이 상호 존중할 때 비로소 초월세계는 멋진 모습을 띌 것이다.

인공지능의 도래를 보는 입장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부정적이고도 배타적인 입장이다. 이런 입장은인간지능과 인공지능을 대치시키면서 인간의 역할은 선, 인공지능의 그것을 악이라고 치부하면서 인간과 인공지능(로봇)을 상호 갈등관계로 파악한다. 한 직능을 차지하려고 서로경쟁을 벌이는 두 존재로 묘사하는것이다. 그러므로 알파고가 거둔 바둑의 승리는 인간에 대한 로봇의 바둑판 정복이 되는 것이다. 상당수의 인문사회학자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또 하나는 긍정적이고도 수용적인 입장이다. 로봇은 기껏해야 인간의 시종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적지 않은 공학자들이 여기에 동참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리 간단하지 않다. 비록 지금까지는 로봇이 간단한 연산과 자기 학습을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정도의 직능을 수행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복잡한 자기 학습을 통해 인간의 통제 너머로 그 기능을 확대할때, 그 파장은 엄청날 수 있다.

이제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하늘에서 훔친프로메테우스의 불과 같은 것이다. 이미 그것은 인간 세상에 도래했고 잘못 다루거나 무섭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흉기가 된다. 대신, 긍정적으로 다루면 그것보다 유익한 것도 없다. 우리가 혐오하는 궂은 일을 대신하는 것은 물론, 자질구레한 일도 군소리 없이 해치운다. 심지어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생각한 인사채용문제도 편견 없이 과감하고도 깔끔하게 처리하는 세련됨을 보여주었다.

많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뺏는다고 인공지능의 채용을 기피하지만, 이제 새로운 각도에서 그들과 일을 공유하는 용기를 발휘하는 일이 우리 인간에게 남아있다. 우리는 지혜롭게 행복한 메타버스의 도래를 희망해야 되지,미련하게 불행한 메타버스를 선택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인공지능과 함께하는 증강현실은 이제 필연적으로 닥칠 미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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