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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부리 영감의 김포 이야기] <198> 돌아갈 길
  최영찬 소설가

미이라처럼 붕대를 얼굴에 칭칭 감고 약 한 달 동안 양성지 영감의 별채에 머물렀습니다. 그동안 토정 선생은 양성지 영감의 방에 드나들며 발성교정을 했습니다. 여전히 목을 갸우뚱해야 제대로 발음이 나오지만, 점점 상태가 좋아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서울로 가서 임금인 세조에게 좋은 정책을 건의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양성지 영감에게 미래에 대한 말을 하려고 했지만 토정선생이 만류했습니다. 그것은 시간의 룰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요.

 “풍문, 이제 어찌할 것인가? 우선은 선조 시대로 돌아가야 하네. 그런 다음 거기서 결정해야 해. 몇백 년 뒤 김우희가 사는 김포로 갈 것인가. 아니면 더 먼 미래로 갈 거냐?”
양동이가 일제 식민지 시절 이후의 세계를 모르듯이 저도 2020년 이후 몇 년까지만 알지 그 이후는 모릅니다. 4차 산업 이후의 세상은 무엇일까.

2100년의 세계는, 2200년은. “너는 아주 먼 미래로 가고 싶겠지만, 그것은 무리다. 그때는 모든 일은 인공로봇이 하고 인간은 만날 띵까띵까 하며 노는 세상이다. 너는 그런 세상이 좋으냐?”
“싫습니다. 저는 제가 꿈속에서 보았던 그 시대에서 살아보고 싶어요. ”나는 젊은이로 변할 수 있다면 김우희와 멋진 연애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이는 50. 20대 여자의사 와는 어울리지 않지요.“선생님, 제가 20대로 젊어질 수 있나요?”

“그건 안 된다. 시간의 룰에서 벗어나는 것이야. 그 여자 의사 때문이지?” 토정 선생은 내 속셈을 환히 꿰뚫고 계십니다.
“그러면 2050년 세계로 가고 싶어요.” 그때 가면 김우희도 50대 여자가 된다. 토정 선생이 빙긋이 웃고 나서 말했습니다.
“그 나이면 그 의사는 20대 자녀를 두고 있을지 모르는데. 
“그래도 좋아요. 결혼했으면 그냥 친구로 만나고 싶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지금까지 숫총각이었으니 2050년에도‘ 한 번도 안 해본 남자’가 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좋아, 네가 그런 마음이면 가보는 것이 좋겠다. 10년쯤 뒤로 가면 김우희는 60대가 되는데. 그러면 너는 연하의 남자가 된다. 60대라고 연애 못하겠니?”
토정 선생님이 저를 놀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도 반격해야지요.
“선생님은 앞으로 어쩌실 건데요. 벌써 작고하신 분이니 저승으로 돌아가셔야겠지요.”
“음, 그렇겠지. 지금 이 상태는 살았지만 죽은 몸이니.”
“설공찬 그분은 어찌 되셨을까요? 염라대왕에게 붙잡혔을까요?”

제 물음에 토정 선생이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내가 저승에 가면 확실히 알겠지만, 지금은 알 수 없구나.” 저는 염포교 아니 염라대왕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설공찬을 찾아 나서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무단으로 저승의 세계에서 도망쳤으니 큰 벌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한 달이 후딱 지나갔습니다. 토정 선생이 틈틈이 천을 벗기고 인두로 지진 곳에 고약을 발랐습니다. 나는 거울을 보고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선생님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상처가 남아 있어. 마지막 날에 보면 네가 얼마나 미남인지 알 수 있을 거야.”
결국, 이렇게 열흘이 지나고 나서야 붕대를 풀 수 있었습니다. 약과를 먹던 양동이가 들이미는 거울 안에 혹이 떨어진 흔적은 없고 본래와 다른 멋진 남자가 있었습니다.
“풍문, 이제 떠날 때가 왔다.” 토정 선생의 말이 끝나자마자 양동이가 약과를 떨어뜨리고는 픽 쓰러졌습니다.


 

최영찬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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