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기 좋은 세상> 엄마 독서모임 ‘딥 인더 북(Deep in the Book)’

일주일에 한 번씩 세계명작동화 그림책 읽고 모여 토론

유대인 교육법 ‘하브루타’ 질문법으로 심도 있는 대화 이끌어

책 읽어주기 변화 커 “많이 읽어주기보다 제대로 읽어주게 됐다”

부모라면 누구나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서의 중요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아이의 안정적인 정서와 바른 인성 형성을 위해,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 생각의 깊이와 확장을 위해, 타인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을 키우기 위해... 부모마다 추구하는 바가 조금씩 다르긴 해도 책 읽는 아이로 커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똑같다.

이에 ‘책 읽어주기’는 부모의 빠질 수 없는 하루 일과가 됐다. 하지만 집안에서, 일터에서 녹초가 된 부모 입장에서 성의를 다해 아이와 대화를 이어가며 제대로 ‘책 읽기’를 해내기란 쉽지 않다. 한글을 뗀 아이들의 경우 스스로 읽게 할 수도 있지만 12살 이전까지는 부모가 읽어주는 독서가 필요하며, 부모의 목소리를 통해 책의 내용과 함께 부모의 사랑도 함께 전달되기에 소홀할 수 없는 부분이다.

▲김서원(5) 엄마 남궁주영 씨, 박이훤(5), 지훤(2) 엄마 박서린 씨, 송다겸(11), 다교(7), 다원(5) 엄마 박수영 씨, 정하윤(7), 하람(5) 엄마 김현정 씨, 하우진(5), 채은(2) 엄마 신수정 씨.(왼쪽 첫째 줄부터 시계방향 순서)

풍무동 한 아파트 단지의 다섯 엄마들이 아이들 ‘책 읽어주기’에 대한 이런저런 고민을 함께 나누며 답을 찾아가기 위해 지난여름 독서모임을 꾸렸다. 일주일에 5세 3권, 6세 4권, 7세 5권씩 독서가방을 집으로 보내며 독서의 중요성을 실천하고 있는 ‘해나라 유치원’ 5세반에 아이들을 보내고 있는 김현정(46), 남궁주영(38), 박서린(42), 박수영(40), 신수정(42) 엄마가 그들이다.

일주일에 세계명작동화 그림책을 한 권씩 정해 읽고 약속한 요일 아침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수영 씨 집에서 모인다는 이들은 지난주 벌써 17번째 모임을 가졌다. 그런데 독서모임의 운영방식이 남다르다. 그림책을 읽고 서로 느낌을 공유하는 대화가 이어지겠지, 하는 선입견은 취재수첩 한쪽으로 접어 넣어야 했다.

충실한 내용 파악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기까지

이 모임을 꾸린 진행자 수영 씨는 내용질문, 심화질문, 메타질문 순으로 나눠 엄마들에게 책을 읽고 나온 저마다의 질문을 물어보고 있었다. 그런데 질문의 단계가 올라가면서 엄마들의 대화가 점점 깊어졌다. 이날의 그림책은 ‘브레멘의 음악대’. 독일 그림형제의 동화로 당나귀, 닭, 개, 고양이를 의인화해 늙어 쓸모없어진 약자들이 주인으로부터 탈출하고 우연히 만나 음악대를 만든다는 내용이다. 고난과 역경을 함께 이겨내는 교훈의 동화다.

독서모임 엄마들은 처음 내용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해, 심화질문에서 협동과 협업, 공감, 배려 등의 키워드를 찾아 대화가 이어지고 마지막 메타질문 단계에서는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노년의 인생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존재 자체로 감사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 인생 전반에 걸친 질문으로 확장되며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으로까지 이어졌다.

“4차 산업 시대에 질문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독서는 물론 공부할 때도 질문을 서슴없이 할 수 있고, 물음을 통해 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 깨달음이 있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할 수 있는 대화 방법을 이 독서모임을 통해 먼저 배우고 있다”고 말하는 박수영 씨는 그래서 그림책도 7살 정도에 읽게 되는 세계명작동화를 선정해 미리 읽고 있다고 했다.

▲그림책을 읽고 각자 적어오는 하브루타 질문지.

질문 많은 아이로 키우기 위한 엄마들의 질문 연습

이들이 독서모임에서 이용하고 있는 질문법은 유대인의 교육법인 ‘하브루타’다. 몇 년 전부터 교육에 관심 있는 이들 사이에 알려지기 시작해 이제 자격증 과정까지 생겨난 교육법이다. 하브루타는 1:1로 짝을 이뤄 서로 소리 내어 읽고 질문을 주고받는다. 아는 것을 자신의 말로 표현해냄으로써 학습한 내용이 자기화하는 과정을 거치며, 통제받지 않는 자유로운 질문을 통해 새로운 배움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 모임은 하브루타에 관심이 많았던 수영 씨가 셋째 유치원 친구 엄마들에게 해보자고 제안하면서 이뤄졌다. 그러나 엄마들 입장에서 그림책을 읽고 3단계로 이어지는 질문을 만드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진 세대이다 보니 자유롭게 하는 질문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 모임 초반 질문을 만들지 못하는 엄마들도 있었다. 하지만 매주 함께하다 보니 심화단계는 물론 메타질문까지 자연스럽게 질문이 나와 이제 모두 A4 용지 가득 질문을 만들어 모임에 오게 됐다.

▲서로 질문을 나누며 대화하고 있는 엄마 독서모임.

5개월여 매주 진행된 모임의 성과는 의외로 컸다. ‘책 읽어주기’로부터 받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함께 그림책을 읽으며 아이도 엄마도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책을 ‘많이’ 읽어줘야 한다는 강박하게 하나를 읽어주더라도 아이와 대화하며 잘 읽어줘야 한다는 ‘질’에 더 신경 쓰게 됐다.

“이전엔 아이에게 다른 걸 하라 하고 기계적으로 책을 쭉 읽어줬다. AI나 다름없었다고 해야 하나. 지금은 단순 읽기가 아니라 아이와 정서적으로 교감하며 책 읽기를 하고 있다.”(박서린 씨)

“두 아이를 키우다보니 각자 두 권씩만 가져와도 1권에 20분씩 시간이 꽤 걸렸다. 힘들어서 책 읽어주는 펜을 이용해 페이지를 찍으며 읽어줬다. 그러니 아이들도 귀로만 듣더라. 지금은 권수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돼 한 권을 읽어주더라도 아이들이 질문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준다.”(김현정 씨)

“그림만 보고 빨리 읽어줬었다. 이제는 느리게 읽으며 아이와 충분히 대화를 한다. 그러니 아이도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엉뚱한 질문을 해도 대답해주고 기다리니 아이의 상상력도 늘어나는 것 같다.”(신수정 씨)

“확실히 여유가 생겼다. 아이와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게 됐다. 그림 안에 숨은 이야기를 함께 찾아보게 된다. 이제 표지부터 보며 무슨 내용일까 생각해보게 하는 것부터 책 읽기를 시작한다.”(남궁주영 씨)

“독서가방에 배달되는 책을 끝까지 읽어주는 게 목표였다. 완전 내 만족이 우선이었다. 이제는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책을 읽으며 아이와 충분히 질문과 대화가 이어졌다고 생각하면 다 읽지 않아도 그만두고 내일로 미룬다.(박수영 씨)

엄마들마다 쏟아내는 독서모임의 성과다. 이사를 포기할 정도로 모임을 지속하고 싶다고 말하는 엄마들은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어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