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수상 - 소설부문 >

 

코로나 학교 

 

                   배 철 호(경기도 하남시)

 

“얘들아, 조별로 개구리 모두 준비해 왔지? 모두 여기 수조에 넣어!”

“어이 회장! 요즘은 그 흔한 개구리도 구하기가 왜 이리 힘드냐? 어제 겨우 이 개구리 정말 힘들게 구해 놓고 도망이라도 갈까 걱정돼 지키느라 난 잠도 설쳤어.”

학급회장 준서가 조례 시간에 소리치자, 1조의 민환이가 의기양양하게 맞장구치고 있었다. 이처럼 5교시 우리 반의 과학수업 실험 준비는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교실 순회를 하는 교감 선생님의 구두가 파리도 미끄럼을 탈 만큼 반짝반짝 광택과 윤이 났다. 우리가 일주일 내내 땀 흘린 청소 덕분에 거울처럼 반들거리는 복도바닥에 구두 뒷굽이 부딪칠 때마다 매우 건조한 금속성 소리도 났다. 그 소리는 최근 어제나 그제나 오늘도 시계추처럼 규칙적이었다. 우리 반이 위치한 4층 교실 복도를 적당히 울리며 군대 사열관의 위엄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그야말로 완벽했다. 1층 교무실의 회의용 큰 테이블에 늘 보기 좋게 놓여있던 붉은 장미꽃 수반(水盤)은 처음으로 책상보를 덮어씌운 교실 담임 선생님 책상 위에 보기도 좋게 놓였다. 게다가 교실 칠판의 왼쪽에서 담임 선생님 책상과 짝을 이루고 있는 의자에는 누군가의 체온이 채 가시지 않은 꽃무늬 방석마저 분위기 있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남고(男高) 교실임에도 여고 교실 분위기가 물씬 났다.

최근 설치한 빔프로젝트 전자 칠판도 완벽했다. 오른쪽 일반칠판에는 지우개 자국은 물론 칠판 턱에는 분필 가루 하나 없었다. 교탁 위의 교탁보, 교단과 바로 옆 벽에 걸린 미술 그림 액자까지 그동안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닦아낸 탓인지 소나기가 지나간 가을 하늘처럼 깨끗했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어 보였다. 태극기, 교훈, 급훈, 바람직한 학생상 등의 액자도 단 1도의 오차 없이 팽팽하게 걸려 있었다. 교실 뒤쪽의 청소함이며 물받이, 주전자, 컵, 양동이, 심지어 창가 이래에 가지런히 놓인 화분까지 도무지 흠잡을 데가 없었다. 모두 것이 군대 열병식처럼 질서정연했다.

그때 갑자기 교실 문이 열리며 담임 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그리고 누구도 예상치 못한 엄청난 소식을 전할 때, 우리 반 친구 모두는 너무나 놀라고 당황스러워 잠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리에겐 그것은 마치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어제 늦게 K시 교육청에서 연락이 왔어요. 오늘 5교시에 있을 우리 반 시 대표 생명과학 실험수업은 장소가 교실에서 생물실험실로 바뀌게 되었어요. 그동안 모두 청소하고 준비하느라 수고와 고생이 많았는데, 약품을 사용하는 해부학실습 실험수업인 관계로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부득이하게 수업 장소가 갑자기 변경이 된 만큼 여러분이 충분히 잘 이해해 줄 것으로 믿어요.”

우리는 5교시 생명과학 수업이 느닷없이 교실에서 실험실로 변경됐다는 너무나 뜨악한 현실 앞에 몹시 당혹했다. 이 소식을 전해준 담임 선생님은 그만한 어쩔 수 없는 이유와 상황이라고 위안의 말씀을 하셨지만 우리는 얼른 받아들이지 못했다. 교실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갑자기 동공에 압력이 차오르면서 초점이 흐릿해졌다. 오늘을 위하여 교실 청소와 교실 환경미화 등 우리가 그간 바친 열정을 어디서 누구에게 보상받는다는 말인가. 물론 처음부터 즐겁고 행복한 수업 시간을 기대하진 않았다. 그래도 왠지 찜찜했다. 한창 코로나19 시국인 올해뿐만 아니라 그 전에도 언제나 학사 일정은 교육청이나 학교의 높은 분 몇 분에 의해 손바닥 뒤집듯이 했다. 그나마 있던 학교의 재량권과 결정권은 코로나19 이후 아예 없었다. 그러니 이번도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우리가 이심전심으로 걱정한 것은 교실과 달리 각종 화학 약품 냄새와 어울려 차가운 생물 실험실이 주는 섬뜩한 느낌이었다. 더군다나 평소와 달리 오늘 수업 분위기는 팽팽하게 당겨진 화살 시위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으로 머리카락마저 곤두서게 만들고 우리 모두의 뼛속까지 파고들게 분명했다.

이윽고 담임 선생님이 교실을 나가자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불만을 토해냈다.

“아니, 그러면 처음부터 생물실험실에서 한다고 했으면 이 개고생은 안 했잖아!”

사실 어제 조례까지만 해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마스크를 하고 부쩍 잦아진 교실 순회를 하는 최장집 교감 선생님은 우리 반을 보고 몹시 흡족해했다. 소란스러웠던 평소와 달리 당신의 발자국 소리에도 모두 묵묵히 책만 들여다볼 뿐, 복도 창가 쪽으로 고개조차 돌리려 하지 않는 우리 반 아이들의 일률적인 모습 때문이었다. 더욱이 최근 코로나19 발열 검사와 함께 안전생활부의 한층 강화된 마스크 착용 지도, 용의 복장 지도가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사관생도 스타일의 우리 학교 교복은 명문고를 가진 K시의 자랑이 되었고 언제나 멋스러운 모습이었다. 두발 상태 역시 남성 전문미용실의 베테랑 미용사들이 똑같이 커트한 것처럼 자유스러우면서도 단정해서 유난히 폼이 나 보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수업 교실 변경이라니 우리는 모두 당황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생명과학 선생님도 황급히 교실로 달려오셨다. 아울러 담임 선생님의 재촉이 많아지면서 우리들도 함께 모두 몸과 마음이 덩달아 바빠졌다. 우리 반의 일이 곧 우리 일이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을 최대한 이용해서 생물실험실 청소와 정리 정돈을 해야 했다. 이제 교실은 대이동 분위기로 전환되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교실은 세탁기의 탈수에서 헹굼 모드로 바뀐 것처럼 방향 대전환의 뭉실뭉실한 흔적이 그 배수구인 교실 바닥으로 쏟아졌다. 쉬는 시간마다 부랴부랴 수업에 필요한 물품들이 또다시 탈수와 헹굼 모드에 이르자 세탁물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처럼 균형을 잡지 못하고 교실은 우당탕탕 굉음을 내질렀다. 그때마다 학급회장이 달려가 일시 정지 버튼을 눌러야 했다. 엄청난 속도로 회전을 하던 세탁기의 세탁조인 교실이 서서히 멈췄다. 그리고 안정을 찾았다. 이윽고 교실이 잠잠해지자 우리는 마치 이어달리기 선수처럼 생물실험실로 달려가 옮긴 수업 도구들이 정확하게 정리된 것을 두 눈으로 분명히 확인한 후에야 안도하며 교실로 돌아왔다.

드디어 5교시가 다가왔다. 점심시간이었지만 급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코로나19로 2개 학년만 등교해서 급식에 시간적 여유가 있었지만, 우리에겐 그럴 심리적 여유가 남아 있지 않았다. 사실 우리는 숨조차 크게 쉴 수가 없었다. 모두 실험실 가운으로 갈아입고 정해진 자리에 앉아 의식을 기다리는 사제처럼 엄숙했다.

최근 요 며칠에 걸쳐 ‘최고집’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고집이 세고 근엄하기로 유명한 최장집 교감 선생님의 우리 반 방문은 매우 잦았다. 근엄한 당신의 교실 순회를 보여줄 겸, 의식적으로 구두의 뒷굽 소리를 요란하게 내면서 우리 교실로 들어왔다가는 휘익 휘둘러보고는 말없이 돌아나갔다. 그때마다 마스크 위로 우리 반 스물다섯 명 모두 오십 개의 눈이 뭔가 몹시 불안한 빛으로 당신의 뒤를 쫓았다.(중략)

 

< 수상소감 - 배철호 >

툭툭 내뱉는 말처럼, 언어의 가벼움이 문학의 가벼움으로 이어질까 염려하는 문단 원로작가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시와 수필은 논외로 하더라도 언어의 큰 집인 소설마저 최근 그 주제와 메타포가 새의 깃털처럼 많이 가벼워졌습니다. 이제 내가 쓴 소설의 우열(優劣)과 수상 여부(與否)를 따지기보다는 독자들이 공감하는 글을 쓸 생각입니다.

특히 학교 이야기를 전문적으로 쓰는 교단문학 작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다만 남겨진 과제는 학교라는 공간이 인간적으로 한없이 따뜻한 곳이면서도 한편 경쟁이 심한 그 현장을 어떤 언어로 포착해 어떻게 소설화하는, 즉 문학적 형상화를 제대로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번 소설은 최근 코로나19 와중에서 혼란과 시행착오를 겪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가장 민감한 학교라는 상징적인 공간과 접맥해보고 싶었습니다. 앞으로 아이들의 가슴 절절한 사연을 다룬 소설이라면 장차 내 소설의 주된 독자층, 미래의 훌륭한 독자를 가질 수도 있다는 기대도 해봅니다. 그리하여 제가 꿈꾸는 소망의 소설은 문단에 조금이라도 이름값을 하는 독자들에게 기억되는 작품으로 남는 것입니다.

나만의 대사와 행동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함께 어우러져 몸과 마음을 담그고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살이의 소중한 장면을 소설로 그려보고 그 언어의 온도를 직접 느껴보려 했습니다. 오늘 이후 지금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이 부드러워지고 더 날렵해져서 세상을 향해 더 힘차게 날아오르는 새들을 더 많이 날려 보낼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새들을 보고 독자들이 무뎌진 감정을 되찾았으면 합니다. 어떤 물과 공기, 그리고 꽃과 보석보다도 더 절실하고 아름다운 소설과 행복하면서도 지난(至難)한 동행을 지난날 문청(文靑)의 열정으로 시작합니다.

끝으로 소설의 무대에서 마음껏 나만의 개성 있는 연기를 펼칠 수 있도록 오로지 작품만 보고 정진과 격려의 힘을 주신 심사위원님을 비롯한 수고하신 김포문학상 관계자 모든 분, 항상 응원하는 가족, 문미회(文美會) 동인과 지인들께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앞으로 게으르지 않는다면, 살아온 세상의 경험에서 얻은 연륜을 바탕으로 제법 철학적 사유가 있는 농익은 소설을 쓸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약력
<동서문학> 신인상 수상
<현대시문학> 신인상 수상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경북일보> 문학대전 시부문 수상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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