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한 페이지

이연자

 

전갈은 사막의 한 페이지

사막여우가 꽃나무 뿌리를 파는 동안
전갈은 더 깊이 숨으려 한다

금빛 전갈이 왔다
낙타 모양으로 가로질러가는 노을빛이었다

서늘한 선인장의 옆구리에 걸려있었다
누가 저 화폭을 박제해놓았다

 

[프로필]
전남 장흥, 문예바다 신인상, 여수해양문학상 외 다수, 2020 시집(세 개의 심장이 뛰는 연못)

 

[시감상]
전갈傳喝은 사막의 전갈全蠍처럼 불현듯 나타난다. 늦가을의 한때, 농익은 홍시를 보다 지천으로 뒹구는 낙엽을 밟다 스란치마처럼 펼쳐놓은 새벽노을을 보다 먼 길의 어디쯤을 보다, 문득 떠오르는 친구의 목소리. 어쩌면 그 모든 것들이 내게서 잊힌 사람들이 내게 보내는 따듯한 안부, 전갈이다. 모든 풍경에는 풍경이 전해주는 배경이 있다. 서늘한 선인장의 옆구리에 걸려있는 그대의 안부를 읽는 어떤 날. 가을이 촘촘하게 익은 어떤 날. 오래된 친구에게 안부를 묻는다. 내 전갈이 문득 풍경이 되어 그대에게 안온한 화폭으로 전달되길 은근히 바래보는 어느 가을. [글/ 김부회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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