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찬 소설가

양성지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이제 빠르면 며칠 후에는 저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양동이는 물론이고 토정 선생님과 헤어질지 모릅니다. 고개를 돌려 흘끗 보니 양성지 영감 옆에 토정 선생이 졸린 눈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말을 이었습니다.

“생거진천 사거용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보통 뜻으로 충북 진천은 물이 좋아 풍수적으로 좋고 경기도 용인은 죽어서 묻힐 때 명당이 많은 곳이라는 것인데 여기에는 두 가지 전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진천에 사는 처녀가 용인으로 시집갔는데 아이 하나를 낳고 남편이 죽었습니다. 혼자 아이를 키우던 여자는 아이를 시동생에게 맡기고 진천으로 개가했습니다.”

그 뒤로 용인의 아들은 장성해서 재산을 많이 모아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진천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진천에서 낳은 이복동생과 의부는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소송을 벌여 원님 앞에 갔습니다. 한참 고민하던 원님은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렸습니다.

“어머니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진천의 의부와 그의 소생이 모시도록 하고 계부가 죽으면 어머니를 용인으로 모셔와 함께 살도록 해라.”

이때부터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합니다. 토정 선생을 바라보니 눈을 번쩍 뜨고 있었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눈치챈 것 같습니다.

“다음은 용인 땅에서 가난하게 사는 추천석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저승사자가 들이닥쳐 추천석을 잡아 염라대왕 앞으로 왔는데 이름이 같고 생년월일이 같은 진천 선비 추천석과 헷갈린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염라대왕이 이것을 알고 호되게 저승사자를 꾸짖자 사자는 급히 용인 농부 추천석의 영혼을 데리고 용인으로 달려왔지만 가난한 살림의 집안인지라 그날로 지게에 싣고 산에 들어가 땅에 묻어 버려 육신이 상했던 것입니다. 낭패를 본 저승사자는 용인 추천석을 데리고 급히 진천으로 갔습니다. 진천 선비 추천석은 밤새 책을 읽다가 쓰러져 잠이 든 것을 보았습니다. 얼른 영혼을 빼놓고는 그 몸에 용인 추천석을 들이밀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아버지가 밖에 나오지 않자 아들이 방으로 들어가 보니 난감한 표정을 짓고 중얼거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는 내 집이 아니야. 내 집으로 가고 싶어.”

추천석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아우성치자 할 수 없이 가족들은 추천석과 함께 용인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얼굴이 다르고 신분이 다른 남자가 내가 남편이요, 아버지다 하니 믿겠습니까. 모두 관아로 가서 우리 남편, 우리 아버지를 판별해 달라고 하니 원님도 처음 대하는 재판이라 어쩌지 못했습니다. 간신히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추천석에게 영혼이 뒤바뀐 까닭을 물으니 저승에서 염라대왕 앞에서 있었던 상황을 말해 주었습니다.

“원님은 고민 끝에 진천에서 그냥 살다가 죽으면 용인에 묘를 쓰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원님이 보기에 부유한 선비 집안에서 잘 먹고 잘 살게 놔두는 것이 좋아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진천 집으로 간 추천석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신분이 선비이니 매일 책을 읽어야 했는데 까막눈 농부 출신이 뭘 하겠습니까. 집안 식구도 혼이 뒤바뀐 남으로 여기니 책은 낮잠 잘 때 베개로 쓰면서 하루 세 끼 주는 밥 먹고 식곤증으로 쓰러져 자는 나날이었습니다. 그는 쓸쓸하게 살다가 죽어서야 간신히 용인에 묻혔습니다.

“이렇게 저승사자 잘못으로 혼이 뒤바뀌는 예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듣는 사람들은 놀랍고 재미있다는 표정이었으나 토정 선생의 눈은 무섭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내가 저승에 대한 말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자신은 저승에 들어가지 못했기에 모른다고 딱 잡아떼셨습니다. 하지만 이미 죽은 분이 어찌 저승세계를 모른다는 말입니까. 말하기 싫어서 하는 것이겠지요. 토정 선생은 잠시 쏘아 보고는 눈을 감았습니다.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