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형
안동대학교
(명예)철학교수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그러나 11월 3일 하루에 끝난 선거를 수일이나 걸려 개표를 하고 그 결과로 승부를 선언하는 일이 지지부진하다. 게다가 현 대통령이 개표의 공정성 시비를 걺으로써 온 미국이 분열과 갈등에 휩싸인 사태를 바라보는 세계인의 시선은 당황스럽다. 저게 세계의 자유민주주의 진영을 선도하는 미국인가, 과연 미국이 앞으로도 세계를 이끌 수 있을까 라는 회의가 든다. 미국선거의 문제는 사실 대통령 선거 방식이 복잡하다는 데 있다. 선거 당일 실제로 미국국민들은 대통령의 선거인단을 뽑는다. 선거인단은 상하원의원으로 구성되는데, 상원은 주마다 2명, 하원은 각 주의 인구수에 비례해서 뽑는다. 이상한 것은 2개 주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 이긴 당이 선거인단을 독차지하는 승자독식의 방법을 쓰는 선거제도이다. 마치 도박장에서 판돈을 거는 방식처럼, 실제로 더 많이 득표한 후보가 질 수도 있다. 이런 이상한 제도로 지난 번 선거에서는 285만 표를 더 받은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도널드 트럼프후보에게 대통령직을 내주었다. 이런 일은 미국역사상 5번이나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의 선거구호는 ‘미국을 위대하게!’ ‘미국을 먼저!’였다. 그러나 이런 구호로 그가 실제로 한 일은 미국의 잇속을 제일 먼저 챙긴 상행위였다. 한편으로 그의 심정은 이해가 된다. 미국이 세계 속에서 맏형 내지 아버지 노릇을 하느라 각종 세계사에 관여를 했고, 그 결과로 생긴 재정적 적자를 감수해 왔다. 네 편 내 편을 막론하고 모든 나라와 모든 문제를 흥정 또는 협상을 해야 하는 처지이므로 미국의 ‘늘 잘 해주고 욕먹는’ 입장을 개선하자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이런 역할로 미국이 손해만 보는 것은 아니다. 발언권과 세계의 관리권을 미국 편의로 행사했고, 지역적인 이해관계에도 빠짐없이 개입해 이익을 챙긴다. 따라서 미국의 역할은 이런 차원을 넘어서는 중후하고도 격조가 있는 모습으로 도모해야 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런 일에 대해 철저히 실패했다. 그는 저급한 언행과 돌출적인 기행으로 국내에서는 사람들을 가르고 국제적으로는 동맹들까지도 등을 지기 일쑤였다.

품격을 잃은 트럼프의 기행에 신물이 난 미국 국민은 평생을 의회주의자로 살아 온 착한 조 바이든에게 많은 표를 주었다. 바이든은 평생을 합리성과 건강한 상식으로 산 정치인이다. 그는 사고로 가족을 잃는 중에도 공적인 일에 우선을 두는 성실성을 일관성 있게 보여주었다. 그의 당선 후 일성은 ‘미국을 미국답게’였다. 무너진 대통령직과 미국국가의 세계적 위상을 회복시키겠다는 다짐이리라. 대신 많은 미국시민은 개인의 비행이 심판받을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백악관 칩거를 고집하며 몽니를 부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너는 해고야!’라고 통보하고, ‘너는 실패자야!’라고 낙인을 찍었다. 이 표현은 트럼프가 후보시절 시민들과 지지자들에게 외치던 인기 멘트였다. 불과 4년이 지나지 않아 이 표현을 돌려주는 것을 보면, 분명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끝났고, 조만간 어떻게든 미국은 평정될 것이다. 또 삼권분립의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는 미국이기에 선거의 후유증을 곧 해소할 것이다. 문제는 대한민국이다. 우리의 정치현실은 참으로 암담하다. 민의를 대변하기 위해 광화문으로 집무실을 옮겨 국민과 소통하겠다던 대통령이 개발독재시대보다 더 청와대에 칩거하고 있다. 취임 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다던 총리와 장관들은 국민을 호도하고 있을뿐더러, 기회만 있으면 자신이 속한 부처의 업무를 돌보는 시간에 자기 부하직원들을 지목하면서까지 피아로 구분하여 갈등으로 몰아넣는 장관들을 보고 있자니 허탈하다. 현 정권이 붕괴시킨 것은 바로 공무원의 품격이다. 공무는 공공의 것으로 사무를 우선한다는 것이 공무원의 신조이다. 대통령부터 장관 및 국회의원까지 내 이익에 눈이 멀어 공무의식을 져버리고, 허언을 쏟아낸다. 허탈하게도 이제는 야당도 여당도 종적이 모호하다. 맘속으로 ‘당신들은 해고야!’라고 외쳐본다.

미국을 보면서 느낀다. 한 사람의 대통령이 제대로 서지 않으면 국가체계는 헛돈다. 이제 우리도 돌아야 할 때인가 보다. 저 고대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주장을 음미해 본다. ‘만물은 돈다.’ 도는 게 피할 수 없는 철칙이라면, 다음번에는 아름다운 추억을 갖고 싶다.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