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집고 나오는 것은 차갑고 뭉클하다
어둑한 부엌 한 구석
던져둔 파 한 뿌리에서,
샛노란 빛
한 줌 새어 나온다
연두로 날이 선,
그 뒤에는
살비듬 섬뜩하다
목구멍 위로 성난 갑상선처럼 움이 비어져 올라올 때
흰 뿌리 사이로 흙 알갱이 몇 알 바스락거린다
몇 장의 겉 잎
누렇게 지쳐갈 때,
저, 환히 비집는 화살촉 하나
아궁이 불꽃처럼 화끈하다
움찔, 떨고 있다
밑둥치 껍질
나비 날개처럼 투명해지는 동안
볼록, 씨방 하나 베어 문 새 촉
곧, 흰나비 떼 뭉클뭉클 파 꽃 고랑을 구르리라
촉이 제 속도로 날아가는 동안
쿨렁하게 속을 비우는 파 대궁,
오래 전 어두워진
내 자궁 길에도 환히 불길 타 오른다

[프로필] 심상숙 : 광남일보 신춘문예 당선, 김장생 문학상외, 시집[흰 이마가 단단하구나]

시 감상
파 한 뿌리,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뿌리는 여전히 삶을 빨아들이고 있다. 마치 우리네 어머니가, 혹은 내가 그렇게 질긴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파가 자라는 동안 봄이 왔고, 계절이 갔을 것이다. 어쩌면 파는 한 개의 화살촉인지도 모른다. 삶이라는 과녁에 명중하기 위하여 그녀가 그렇게 안달복달 솟구치며 살아온 어느 한 생을 뭉근하게 내보이듯. 누가 알든 말든 그렇게 사는것, 부엌 한 구석 던져놓은 파 한 뿌리 같은 어머니.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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