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식(전 경기도의원)

신광식
전김포대총동문회장
전파독광부협회 회장
전 경기도의원

나는 2018년 10월 29일자 <김포신문>에 기고한 ‘농부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글을 통해 “농부가 일군 땅은 우리를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 농부의 마음으로 우리의 마음을 갈고 경작해보자. 농부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에 우뚝 서자. 농심은 한결같다. 농심은 천심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글을 당시 초등학교 4학년생인 손녀딸 효정이에게 읽힌 후 소감을 말하라 했더니 “이 글은 농심으로 하면 안 되는 게 없다는 거예요”라고 어린애답지 않게 내 글의 의도를 꿰뚫고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가을걷이로 분주한 김포평야를 보면서 나는 또 다시 ‘농심은 천심’임을 깨우치고 있다.

코로나19로 지치고 기력을 잃은 우리들이 붙잡아야 할 희망의 메시지는 어디에 있을까? 탈진한 육체에 힘차게 살아갈 힘을 어떻게 불어넣을 수 있을까? 먹고 사는 것보다 소중한 것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그 답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묵묵히 땀 흘리며 농사짓는 농부의 마음에서 찾을 수 있다. 농부란 판단력과 지성, 그리고 의지를 나타낸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자연과 세상에서 일상의 기적을 일구는 농부들의 지혜를 함께 나눠보자.

첫째, 농부의 삶은 기적이다. 생명 농업의 선구자, 모든 권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활동하는 환경 운동가로 불리는 피에르 라비는 “대지는 모든 것의 토대이며, 확실한 가치를 지닌 유일한 것입니다. 대지와 교류할 줄 아는 사람들은 어떤 어려운 일이든 잘 극복해 나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언제나 완전한 보호 아래 있다고 느낍니다.”라고 말했다.

이 글귀를 통해 피에르 라비의 실천적 삶뿐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운 관계에 대한 폭넓은 사상까지 엿볼 수 있다.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라는 책에서 가장 감동적으로 읽은 구절이다. “매일매일 일상을 사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나는 늘 기적에 대한 말을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기적은 일상입니다. 흙 속에 씨앗 한 알을 심으면, 그것은 자라나 식물이나 나무가 됩니다. 밀알 한 알갱이 안에는 대지 전체에게 양분이 될 모든 에너지가 들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둘째, 농부는 정년이 없다. 소년농부에서 철학교수로(서울대 철학과 졸업 후 충북대 철학교수 역임), 다시 농부로 귀환해서 ‘변산공동체'를 일궈 운영하고 있는 윤구병 씨의 일상을 소개한 기사(2008.2.22. 오마이뉴스)를 보고 크게 공감한 적이 있다. 당시 나와 비슷한 나이의 그가 왜 그런 삶의 궤적을 그리고 있는 것인지, 그가 추구하는 것과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궁금하던 차에 기자가 “희망은 도대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나는 이 세상에서 보면 뒤늦게 정년을 맞이한 것이다. 서울에서 65살이면 전철표도 공짜다. 대학교수가 정년이 늦는데, 대학에 있었어도 올해 정년이다. 65살이 넘어도 일할 힘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몸을 놀리고 마음을 써야 한다. 농사일에는 계약직도 임시직도 없다. 농사에는 어린애부터 나이 많은 사람까지 할 일이 다 있다.”면서 제 몸을 움직이면 절망할 틈이 없다는 농부의 철학을 강조했다.

셋째, 씨앗에서 삶을 보자. 전남 곡성에서 토종씨앗으로 자연농을 하는 농부이자 ‘씨앗철학’의 저자인 변현단 씨가 지난 5월 30일 강연회에서 발언한 내용을 관심 있게 읽어보았다. 변 씨는 “씨앗이란 우리 삶 어디에나 존재한다. 일상에서 자주 섭취하는 쌀은 곧 씨앗이고 인간도 하나의 씨앗이다. 밥 한 공기에는 무려 약 3,000개의 쌀알이 들어가 있다. 밥 한 그릇에 온 우주가 담겨있는 셈이다. 우리 삶은 씨앗과 매우 가깝다”고 하면서 무엇보다 씨앗의 본질은 생존임을 강조했다. 특히 변 씨는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환경적 변화를 이야기하며 “우리 사회는 방법론적 방향만 제시하고 있다. 코로나는 지구환경이 살고 싶다는 외침이자 많은 오염들로부터 강제 회복기에 들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넷째, 농부들을 위한 기도문을 소리 내서 읽고 써보자. 농부의 마음으로 시를 써 ‘농부 시인’이라고도 불리는 서정홍 작가는 농부는 공기나 흙과 같다고 보고, 공기와 흙이 없으면 생명체가 살아갈 수 없듯이 농부와 농사가 없다면 사람은 살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인문학이야말로 사람과 사회를 조화롭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이라면서 <농부의 인문학>을 펴냈는데 그 책에서 가장 공감했던 몇 대목을 소개하고자 한다.

(1)언제나 공부하는 농부 - 사람은 누구나 공부해야 합니다. 특히 농부는 우리 식구가 먹는 음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 왔는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어느 나라에서 누가,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생산했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음식 속에 어떤 성분이 들었는지, 이 음식을 먹고 나면 앞으로 내 몸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날지,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병들면 한 가족이 병들고, 한 가족이 병들면 한 나라가 병들고, 한 나라가 병들면 지구 전체가 병드니까요.

(2)때를 아는 것은 관심 - 농부는 날마다 논밭에 심어둔 작물로 달려갑니다. 밤새 몰아치던 바람에 이파리가 상하거나 뿌리가 뽑힌 것은 아닌지, 수분이나 거름이 모자라지는 않는지, 솎거나 북주기할 때가 되었는지, 땅강아지가 논둑에 구멍을 내지는 않았는지... 날마다 살피지 않으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고,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야 합니다. 더구나 작물은 주인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하지 않습니까?

날마다 살피는 일이 고되지 않으냐고요? 세상 어느 일이든 무관심하게 내버려 두면 제대로 풀리지 않고, 물건은 고장 나기 쉬우며, 사람과의 관계는 결국 아무것도 아닌 남남이 되어 버립니다. 때때로 어떤 것들은 관심을 두어도 잘 안 풀릴 때도 있고요. 하지만 작물은 관심을 두면 대부분은 근사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니 하루하루 작물이 자라는 모습을 들여다보는 기쁨을 이 세상 무엇과 견줄 수 있겠습니까?”

(3)농부들의 기도 - 오늘도 해와 별과 달이 제자리에 있기를, 마을 뒷산에 오래된 나무들이 그대로 있기를, 새들이 숲에서 기쁘게 노래 부르기를, 무더운 한 낮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 주기를, 개울물이 쉬지 않고 졸졸 흘러가기를, 생명을 살리는 흙이 독한 농약과 화학 비료에 병들지 않기를, 비가 내려 들녘에 연둣빛 새싹이 돋고 고운 꽃이 피기를, 나무마다 건강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나라마다 제 땅에 맞는 토종 씨앗을 보존할 수 있기를, 사람들이 스승인 자연을 언제까지나 섬길 수 있기를, 그리하여 자연과 사람을 죽이는 탐욕과 전쟁이 사라지고 서로 가진 것을 나누며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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