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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혹부리 영감의 김포 이야기> 피묻은 열녀문
최영찬 소설가

기이한 이야기였는지 선주들은 󰡐선한 끝은 있어도 악한 끝은 없다.’라고 하며 자기들끼리 수근댑니다. 다음 이야기도 열녀문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어떤 무인이 친구를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벌써 죽은 지 일 년이나 되어 오늘이 소상이라는 말에 가족과 함께 제사상 앞에서 애도했습니다. 밤이 늦었는지라 무인은 별채의 작은 방에 하룻밤 묵게 되었습니다. 그는 친구와의 옛 추억을 더듬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무인은 직감적으로 도둑이 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활을 집어들고 살금살금 고양이 걸음으로 문밖으로 나가 소리가 난 곳으로 갔습니다. 그곳은 안채였습니다. 무인은 도둑이 친구의 부인이 자는 곳을 침범한다고 여기고 조심스럽게 살펴보니 방안에는 불이 켜져 있고 사내의 그림자가 보였습니다.

“큰일이군. 저놈을 어찌해야 하나?”

무인은 소리를 지를까 하다가 놓칠 것 같아 살금살금 뒤따라 가는데 여자의 간드러진 소리가 들렸습니다. 목소리를 자세히 들어보니 친구 부인이었습니다. 무인은 둘 사이가 불륜이라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그는 아까 친구의 소상 때 통곡하던 부인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가증스러움에 몸을 떨었습니다. 무더운 날씨이어서 그런지 방문이 반쯤 열려 있었습니다. 정원에 심은 나무 뒤에서 살펴보니 작은 술상에 고기 안주와 함께 술을 먹는 사내는 머리 깎은 중놈이었습니다. 친구 부인은 반쯤 벗은 몸으로 아양을 떨고 있었습니다. 당장 뛰쳐 들어가 두 년놈을 죽이고 싶었지만, 소란을 피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둘의 수작을 들으며 있는데 토할 것 같이 역겨웠습니다. 꾹 참고 기다리다가 잠자리에 등을 보인 중놈을 향해 활을 당겼습니다. 창호지를 뚫고 들어간 화살에 맞은 중놈은 비명을 질렀고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잠시 후에 방안에서 통곡 소리가 들렸습니다. 무인은 살며시 고양이 걸음으로 자기 방으로 돌아왔지만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치미는 분노와 함께 음탕한 친구 부인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했던 것입니다. 아침이 되어 밖이 소란스럽자 문을 열고 까닭을 물었습니다. 늙은 종이 대답했습니다.

“아이고, 손님. 어젯밤에 흉측한 중놈이 마님의 방에 침범했는데 마님이 은장도를 집어 달려드는 중놈을 찔러 죽였습니다. 집안 식구들이 소란 떠는 틈을 타서 목을 매 자결하려는 것을 간신히 막았습니다. 그러니 조용히 나가십시오.”

무인은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간통하던 중놈을 죽인 것이 누군지 알고 있음에도 뻔뻔스럽게 연극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활과 칼을 차고 집을 나와 길을 떠났습니다.

“일 년쯤 지난 후에 무인은 그 동네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동리 입구에 열녀문이 세워진 것으로 보고 근처를 지나는 노인에게 누구의 열녀문이냐고 물으니 바로 친구 부인의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목숨으로 정조를 지킨 열녀에게 조정에서 열녀문을 내리고 그 후손들은 벼슬길에 올랐다고 대답했습니다. 무인은 열녀문을 향해 가래침을 뱉고는 길을 떠났습니다.”

재담이 끝나자 선주 한 사람이 소리쳤습니다.

“그런 음탕한 여자를 그냥 두었다는 말이오? 그 열녀문은 어디 있소? 불살라 버립시다.”

여기저기서 맞소, 맞소 동조합니다. 내 재담에 감정이입이 잘된 사람입니다.

“이것은 재담입니다. 꾸민 말이라는 것이지요.”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예 말고도 집안에 열녀를 내기 위해 자살을 강요하는 예가 많았습니다. 집안에 열녀가 나오면 가문의 명예뿐 아니라 과거에 급제하지 않아도 작은 벼슬길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왜 열녀를 기렸을까요. 그것은 두 남편을 섬기면 안 되는 것처럼 두 임금을 섬기지 말고 충성을 다하라는 간접 신호였기 때문입니다.

최영찬 소설가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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