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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잔소리 철학> 한글날에 세종대왕을 생각한다
  • 신상형 안동대학교 (철학)명예교수
  • 승인 2020.10.14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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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형
안동대학교
(철학)명예교수

지난 금요일은 한글(훈민정음) 창제 577주년, 반포 574주년 기념일이었다. 조선의 4대 임금인 세종대왕께서 하신 이 치적은 그 자체로서 엄청난 의미를 갖는 역사적 사건이다. 아울러 어떻게 15세기에 아시아 대륙의 끝자락인 작은 조선에서 인근국가 모두가 쓰던 중국어(한문)와는 다른 이 같은 과학적이고도 창의적인 구조를 가진 한글을 창제하셨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비하고도 놀랍기 짝이 없다. 세종대왕의 의도를 간소하게나마 기림으로써 한글날의 의의를 되새기고자 한다.

대왕께서는 우리 국민이 기록으로는 중국어(한문)를 택하고 공·사적활동에서는 우리말(조선어)을 쓰는 불편을 안타까워하셨다. 한문의 사용은 우리나라가 국가의 형태를 갖춘 고조선시대부터 2천 년 간이나 계속된 관행이지만, 대왕께서는 비판적 사고를 갖고 처음 이 문제를 지적하시면서 구체적 대안으로 한글 창제를 이룩하셨다. 고려는 물론 특히 조선은 중국을 향해 노골적으로 사대주의를 표방하였는데, 대왕의 이 같은 반역(?)은 조정과 관리들의 반항을 일으켜 3년간 반포를 지연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을 향한 애민정책으로서 한글 창제를 끝까지 추진하여 마무리를 하셨다. 이것은 정치사적으로도 특기할 만한 치적이다.

대왕께서는 더 나아가 아예 한문과는 전혀 다른 글자를 창제하셨다. 이것은 단순히 한문을 가져다 부분적으로 수리한 일본어의 조립과는 격조가 다르다. 사상적으로 조선은 중국의 변방이 아니라 주체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천명한 획기적 선언이다. 말과 글을 빌어서 쓰는 나라는 그것을 빌려준 나라의 사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역사가 말하듯, 열강들은 의도적으로 통일성과 편의성을 표방하며 말과 글의 획일적 사용을 약소국에 강요해 온 것이다. 일제가 그러했고, 실제로 오늘날까지도 사실상 ‘해가지지 않는 영국’이 그러하다. 영연방은 영국문화의 그늘에서 여전히 참된 홀로서기를 못하고 있다. 영국에서 만난 싱가포르 계 학생이 ‘당신은 당신 고유 언어(한글)를 갖고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고 울먹였다. 이런데도 아직 한글도 제대로 못 뗀 자녀에게 영어부터 가르치는 극성엄마들은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다.

창제일, 창제자, 창제목적, 제자원리를 구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말은 한글이 유일하다고 한다. 또 중요한 것은 글말(문어)인 중국어(한문)와는 달리 한글은 입말(구어)을 그대로 담아냈다는 것이다. 글말은 생각을 추리고 이것을 훈으로 담아 다시 그 훈을 뜻하는 다른 그릇인 용기(뜻글자)에 담는 과정을 밟는다. 유영모 선생에 따르면 자유로운 생각을 거듭 죽이는 절차가 바로 이런 추리 및 언어화라는 과정이다. 즉 우리의 생각은 말로 바뀌고 글자로 깎이는 사이에 원래의 의도가 왜곡되는 것이다. 멋을 핑계 대어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다. 그러나 한글은 생각에서 바로 입말로 가는 절차를 갖는다. 말하는 이의 의도가 곧바로 전달되는 것이다. 일상의 언어생활이 간편하여 활력이 돌 수 있다. 대왕께서는 이런 과정으로 임금과 국민 사이에서도 의사소통의 통치를 하시려고 노력하신 것이다.

이런 점은 한글의 쓰임새에서 바로 드러나고 있다. 자연을 있는 대로 표현하는 의성어와 의태어가 발달해 있고, 외국어의 발음을 거의 완벽하게 표현가능하다. 2012년 10월에 태국 방콕에서 열린 세계문자 올림픽에서 한글이 1위를 차지한 것은 이를 뒷받침하며, 세계 최고의 여류작가였던 펄 벅은 “세계에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훌륭한 글자”라고 극찬했다. 옥스퍼드 대학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아마도 지금은 쓰지 않는 순경음들까지를 잘 살린다면 v, f 음까지도 포함하는 완벽한 문자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한문혼용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사라지자 요즘은 영어를 무분별하게 섞어 쓰는 신사대주의(?)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세련이나 국제화를 가장한 이런 경향은 조선의 고집스런 사대주의 유학자들처럼 도리어 거칠고 폐쇄적인 심기의 다른 표현이다. 이런 거친 마음은 매사에서 좌우로 갈라지는 싸움으로 드러난다. 이제 광화문광장에서 한 번이라도 세종대왕의 석상을 쳐다보며 애민정신으로 노심초사 한글을 창제하시던 그분의 마음을 헤아려보면 어떨까? 한글날에 세종대왕을 기리면서 고운 한글로 한 자락의 생각을 써본다면 거친 시위와 무분별한 외래어 사용은 줄어들지 않을까?

신상형 안동대학교 (철학)명예교수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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