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형
안동대학교
(철학)명예교수

수년전 단과대학장으로 임명될 때의 일이다. 국립 대학교 단과대학장은 고위공직자여서 병적과 재산 등록을 한다. 강원도와 경기도에서 각각 육군현역생활을 마친 나와 아들의 병적을 단숨에 기록하여 제출하니 뿌듯하였다.

이윽고 점심시간이라 구내식당에서 이 얘기를 꺼내면서 주위를 향해 허장성세를 했다. “대통령이 나를 장관으로 추천해주면 청문회를 시원하게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앞자리에 있던 교수가 웃으면서 내 말을 받았다. “교수님, 잘 모르시는 가본데, 장관 자리는 자격을 완벽하게 갖춘 자를 추천하지 않습니다. 시청률이 제일 중요합니다.

시청률을 올리려면 확실한 결격사유를 가진 사람이 끈질긴 청문자들을 오리발과 닭발을 이용하여 휘젓는 실력을 보여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교수님의 무미건조한 이력은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습니다. 본인과 아들 중 최소한 한 사람은 병적 상 하자가 있어야 인정을 받죠.” 물론 이것은 우스갯소리였다. 당시 한 코미디언이 프로그램에서 ‘시청률’ 운운 하는 꼭지로 인기를 끌고 있었기에 빗댄 이야기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공직자의 주가는 여전히 시청률에 연동되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한 달 이상 매일 법무부장관이 신문에 도배가 되고 있다. 아들의 군대생활이 파헤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한 미군부대 배속병인 아들의 근무지 배치와 휴가 시 규율위반을 무마하기 위해 엄마인 장관이 직위를 이용한 탈법을 지속적으로 자행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소문이 아니라 명백한 범법행위를 관여한 군인들이 자백하는데도 장관은 그 비리들을 덮기 위해 오리발을 내미는 후안무치는 ‘역시 능력이 다르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노골적으로 은폐 두둔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고소하는 사람들을 탄압한다는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더 나아가 정부여당의 많은 인사가 이것을 동조하고 감싸는 사태는 어처구니가 없다. 현 정부의 이런 모습은 분명히 그 전과 차원을 달리한다. 또래집단으로 똘똘 뭉친 결속력을 보이면서 철저히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분명히 틀린 것도 그것을 상대방의 것으로 바꿔치며 난처한 입장을 만드는 탁월한 기술을 발휘하기도 한다. 자기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을 보이는 한편 반복하는 실수에 대해서는 내로남불의 논지로 치고나간다. 행동을 멈칫하거나 태도를 중지하는 일은 시청률이나 지지도가 떨어질 때가 유일하다. 이들이 신뢰를 보내는 것은 맞고 틀림,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의 가치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인지도이다.

연예인들의 최고 신뢰도는 시청률 즉 인기이다. 해서 그들은 인기를 위한 일이라면 무슨 짓이든 기를 쓰고 한다. 심지어 나쁜 것까지도 시청률만 올라간다면 그들은 “만사 오케이!”다. 그 이유는 시청률이 그들의 수입과 삶의 의미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시청률 상승은 경매 시 고가 낙찰과 같다. 낙찰된 가격이 그 상품의 가치이다. 이렇듯, 연예인과 정치인의 시청률 혹은 인기도는 자신들의 가격을 확인하는 계량화한 자산 자체이다. 그런데 상품의 값은 이런 상징적인 가치도 있지만, 그것이 갖는 역사적 가치도 있다. 역사적 가치는 객관적인 진실성에 의해 평가된다. 왜냐하면 상품은 그것이 갖는 사람의 선호도도 있지만, 그 효용성 자체가 가진 의미 때문에 그것의 값을 가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천 쌀은 브랜드 때문에도 비싸지만, 그것이 갖는 쌀 자체의 영양가 때문에도 값이 비싸게 매겨진다.

마찬가지로 정치인과 그의 가치는 사람의 호감에 잘 부응하는 능력에도 있지만 그 보다는 객관적으로 추구하고 실행하는 정치적 실천능력이 역사적인 사실과 관계를 지을 때 비로소 높아지는 것이다. 시청률에 목을 매어 유권자들에게 아첨하기보다는 좀 진부하더라도 역사적인 사실과 가치체계에 충성스럽게 이바지하는 정치가가 더 훌륭하다고 기억된다. 예컨대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이들이 더 신뢰를 받는다. 힘들고 진부하겠지만, 정한 때에 아들을 군대 보내고 아들 주변의 동료 젊은이들과 동조토록 응원할 때, 자기 아이를 향한 은밀하고도 집요한 ‘사랑(?)’을 보여주는 치졸함을 극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비로소 부자가 한국전에 동시 참전하여 전사한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긴 밴 플리트 미군 사령관과 같은 품격을 가진 법무부장관을 모시게 될 것이다. 시청률은 진실보다 결코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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