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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혹부리 영감의 김포이야기> 공처가들
최영찬 소설가

토정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어려서 충격을 받아 자세마저 굳어진 것이 말더듬의 원인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자세를 교정하는 방법을 알았으니 본인의 노력여하에 따라 말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기쁜 마음에 혹을 곧 떼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래, 너와 나 그리고 양동이가 세조 시대로 온 것은 다 하늘의 뜻이었다. 네가 선조 시대에 그냥 있었더라면 혹을 떼 낼 수 있었겠느냐? 또 우리가 이곳으로 오지 않았더라면 눌재가 말을 똑바르게 하겠느냐?”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양동이도 기억이 흐릿해진다고 하지만 일제 식민지시대까지 꿈속에서 살아보았으니 좋은 의견을 많이 내는 모양입니다. 그날 저녁상은 호화롭기가 짝이 없었습니다. 양동이와 지성안도 함께 자리해서 고기에, 생선에 푸짐하게 먹었습니다. 저는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습니다. 포구에서 선주들이 재담을 듣겠다고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급히 서둘러 도착해보니 선주들도 식사를 마치고 횃불을 켠 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재담꾼 풍문이 인사 올리겠습니다. 첫 이야기는 공처가입니다. 여러분, 모두 공처가시죠?”

선주들이 모두 하하하 하고 웃었습니다. 이 시대가 유교의 영향으로 남자가 전횡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알고 보면 대부분 공처가였습니다. 본색이 들켰기에 웃었던 것입니다.

“위엄이 넘치는 장군께서 부하들을 집합시키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습니다. 어제 술을 잔뜩 먹고 늦게 들어갔다가 밤새 마누라가 바가지를 긁어 기분이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마누라에게 권위를 훼손당한 장군은 부하들에게 분풀이로 부하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주인에게 혼난 하인이 강아지 배로 차는 것과 똑같지요. 한참 준엄하게 꾸짖으니 속이 풀리자 말이 부드럽게 나오더니 급기야 이런 말을 합니다.

“여기 빨간 깃발, 파란 깃발을 꽂아 놓아라. 그리고 자신이 공처가라고 생각되면 파란 깃발에 아니면 빨간 깃발에 가서 서라.”

장군의 명령에 누구 거역하겠습니까? 우르르 파란 깃발 뒤로 줄을 서느라 부산입니다. 장군은 부하들도 자기와 마찬가지로 공처가임에 위안을 삼는데 빨간 깃발 뒤로 딱 한 명의 군졸이 서 있는 것이 아닙니까. 보니 체격도 왜소한 것이 마누라 휘어잡고 살 것 같지 않은데 공처가가 아님을 드러내니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진짜로 마누라를 휘어잡고 사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장군이 그런데 왜 빨간 깃발에 섰느냐고 물으니 답했습니다.

“부인께서 말씀하시기를 남자 셋만 보이면 여자를 두고 음탕한 말을 늘어놓으니 따로 있으라고 경고했다고 합니다. 장군이 손뼉을 치며 너야말로 진정한 공처가라고 칭찬했다고 합니다.”

선주들이 일제히 하하하고 웃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마누라가 구박하자 아침 일찍 가출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여복이 없을까 한탄했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마누라에게 잘못한 것이 아닐까 반성도 하면서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성 밖으로 나갔습니다. 거기서 자기 나이 또래 남자가 요강을 들고 와 채소밭에 뿌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맞아, 내가 저렇게 집안 살림에 도움을 주지 못했기에 구박당하는 거야.”

처절한 반성과 함께 남자에게 다가가서 가정의 행복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찬양했습니다. 그러자 남자가 고개를 들어 흘끗 바라보더니 소리쳤습니다.

“여보슈! 내가 아침부터 이 짓을 하고 싶어서 했겠소. 마누라 등쌀에 못 이겨 나온 거요.”

그 말에 남자는 입을 다물어야 했습니다. 내가 말을 이었습니다.

“옛날 어느 나라에 전쟁이 벌어질 조짐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두 나라의 여자들 대표가 만나 결의했습니다. 만약 사내들이 전쟁을 벌이려고 하면 잠자리를 보이콧 아니 거부하자구요. 그 결과 전쟁은 벌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자들만의 비장 무기죠. 잠.자.리.”

김포신문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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