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오늘 동아리 활동 마치고 집에서 쉬다가 깜박 잠이 들었어요. 얼른 갈게요. 저 갈 때 까지 시작하면 안돼요.”

민지로부터 문자가 왔다.

오늘은 학급 야영을 하는 날이다. 학기 초 공동체 의식을 높이고 서로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야영을 계획 했었는데. 10월 중순에야 야영을 하게 되었다. 야영 프로그램 중에 아이들이 가장 기대하는 것은 일명 ‘담력훈련’이다. 하지만 난 ‘담력훈련’을 하지 않는다. 작년에 야영을 하던 중 성철이가 무섭다고 복도에서 뛰다가 넘어져서 자칫 크게 다칠 뻔한 기억이 있어서이다. 대신 올해는 공포 영화를 보고 복도 곳곳에 숨겨놓은 보물을 찾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드디어 영화가 끝나고 보물을 찾아 떠난다.

“몇 번이 제일 좋은 선물이에요”
“우리반이 5반이니까, 5번이 제일 좋은 선물일 거야.”

아이들 대부분이 스펀지 볼을 찾아 복도를 헤매는데, 몇 녀석들이 교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지만 얼굴표정들이 어둡다.

“야! 너희들은 보물찾기 안 해? 혹시 영화가 무서워서 그런 거야?”
“아니에요. 영화 별로 안 무서웠어요. 저희들도 이제 보물찾기 하러 갈거예요.”

민지가 애써 웃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다른 녀석들도 황급히 자리를 뜬다.

“선생님. 일어나세요.”

아이들과 이런 저런 게임을 하다 잠자는 아이들을 챙긴다고 복지실에 내려왔다가 깜박 잠이 든 모양이다. 아이들이 아침 일찍 뒷정리도 깔끔하게 해 놓고는 집에 가자며 깨운 것이다. 아이들에게 문자가 온다. 대부분 ‘즐거웠다.’다음에 또 하자.‘ ’우리 반 최고.‘ 뭐 그런 내용들이다. 월요일부터 다시 새롭게 열심히 살아보자는 답장을 보내며 한 주일을 마무리 했다.

“신송희.”
“네.”
“최민지.”
“민지 안 왔니”
“네 민지 안 왔어요.”

무슨 일이지? 교무실에 내려와 핸드폰을 확인하니 민지 어머님에게 부재중 전화가 와있다.

“여보세요.”
“네. 선생님. 오늘 민지가 몸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오늘은 학교에 가기 힘들 것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지난 야영이 좀 무리였나 보죠? 많이 힘들어 하나요?”
“모르겠어요. 야영 마친 날 밖에 친구 만나러 나갔다가 왔는데, 그때부터 몸이 안 좋다고 계속 누워 있네요.”
“알겠습니다. 우선 오늘은 쉬도록 조치해 주시고요, 특별한 일 있으면 연락주세요.”

3교시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니 부재중 전화가 또 와있다. 전화를 걸어 어머님에게 민지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민지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아서 병원에 데려가려 방에 들어갔더니,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고 있더라고요. 무슨 일인가 싶어 물어봤더니, 대답도 없이 울기만 하네요. 혹시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뇨. 저도 한 번 알아 볼 테니, 어머님도 민지랑 계속 대화를 나눠 주세요.”

민지 어머님과 통화를 마치고 나서야, 지난 야영 때 민지와 이야기를 나누던 아이들이 생각났다. 그중 한 친구를 불러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봤다.

“혹시 민지에게 무슨 일이 있니?”
“····”
“무슨 일이 있는지 말해줄 수 있겠니” 말하기 곤란한 내용이니?“
”사실은 지금 민지가 친한 친구들하고 갈등이 조금 있어요.“
”우리반?“
”우리반 아이들과도 관련이 있긴 한 대요. 조금 길어요.“
”그래도 말해 보렴. 선생님도 알아야 할 이야기 같은데.“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민지의 상황이 좀 난감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에게 전화를 드리고 민지 집으로 찾아갔다.

“민지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선생님한테 자세하게 말해줄 수 있겠니?”
“선생님 너무 억울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무섭기도 해요.”
“지난번에 아이들이 싸워서 서로에 대해 안 좋은 점들을 이야기하기에, 전 가운데서 공감해 준다고 그때마다 아이들 편들면서 이야기한 것이 다예요. 그런데 자기들끼리 화해하고 제가 자기들 뒷 담화 했다면서, 저보고 사과하라고 메시지가 왔어요. 저한테 왜 그랬냐면서요. 전 그냥 친구들 이야기에 공감해 준 것 뿐인데.”
“그럼 그 친구들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 되지 않을까? 내일 선생님이 친구들이랑 이야기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볼까?”
“네 선생님. 내일은 꼭 나갈게요. 나가서 아이들이랑 이야기도 해 볼게요.”

다음 날 민지와 친구들은 상담실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입장을 들어보라고 당부했었지만 내 생각으로 대화가 전개되지 않았던 것 같다. 4명이 1명에게 따지는 모양으로 대화가 전개되다 보니, 민지는 방어적인 태도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모처럼 용기 내서 대화를 하고자 마음먹었는데, 민지는 더욱 위축 되고 말았다.

민지는 중 1 사회수업시간부터 만났던 아이다. 1학년 여학생 두 명이 학생부에 와서 선배들이 자신들을 불렀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때 1학년 아이를 불렀던 아이들이 민지와 친구들이었다. 2학년 아이들에게 들어보니 1학년 아이들이 화장도 진하게 하고 다니고 ‘페이스북’에서 선배들에게 안 좋은 이야기도 해서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 하려고 했다고 한다.

“민지야. 민지는 1학년 때 2학년 선배들이 불렀을 때 어땠어?”
“음. 저도 좀 무서웠고, 저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게 싫었던 것 같아요.”
“그래. 너도 그런 경험이 있어서 지금 1학년 아이들의 심정을 잘 이해 할 수 있을거야. 지금 1학년 아이에게는 너희들이 아무리 좋은 감정을 가지고 이야기 한다고 해도 많이 무섭고 두려울 것 같아.”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오늘 이후로 1학년 후배들에게 간섭하지 않을게요.”

그 날 이후 민지는 그 약속을 지켰다.

“선생님. 저 2학년 때 선생님하고 이야기 나눈 뒤에 그 약속 지켰어요. 그러니까 그때 그 기억으로 저를 보시면 안돼요. 저 3학년 때 정말 열심히 할 거예요. 잘 부탁드려요.”

민지는 그런 아이였다. ‘한다면 하는.’ 정말로 3학년이 되고나서 모든 일에 적극적이며 열심이었다. 그런 민지가 친구들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고 많이 힘들어 하고 있다.
난 민지를 믿는다. 다시 한 번 용기 내어 친구들과의 대화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민지야! 너라면 분명 할 수 있을 거야!’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