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블레이크-

최형미 동화작가

2015년, 메르스의 공포가 한국을 뒤흔들 때 다섯 살이 된 딸아이와 나는 인적이 드문 시골로 피신을 떠났다. 늘어가는 확진자 수와는 상관없이 시골은 마치 영화 지중해의 한 장면처럼 나날이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그곳에서 나는 직장 때문에 서울에 남은 남편을 생각하며 공포와 소문이 만들어낸 혐오감을 담은 <소문 바이러스>라는 작품을 썼다.

그 작품이 나온 지 3년을 채우기도 전에 우리는 더 큰 바이러스의 공포에 떨게 되었다. 이웃 나라에서 일어난 전염병 정도로 생각했던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전 세계를 마비시켜 버렸다.

뉴스를 보기가 무서울 만큼 많은 사람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목숨을 잃었고, 먼 나라 일이라 생각했던 질병에 대한 공포는 어느새 성큼 내 삶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외갓집 식구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 집단 감염이 일어났고, 친한 후배는 자가격리자가 되었다. 아슬아슬한 차이로 확진자와 동선이 겹치지 않아 다행이었다는 지인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버렸다. 마스크 없이는 외출할 수 없게 되었고, 확진자의 수와 동선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일상이 바뀐 우리에게 제일 먼저 닥친 공포는 죽음이었고,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조금 무뎌지자 먹고 사는 일에 대한 공포가 다가왔다.

재택근무가 권장되고, 휴직, 퇴직이 줄을 이었다. 그러는 사이 공포감에 질린 얼굴들은 어느새 우울감이 가득 찬 얼굴로 바뀌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도 봄이 오고, 어느새 여름이 왔다. 불안과 공포로 우울증도 만성이 되어버린 요즘, 내 가슴을 흔드는 문장이 있다. 바로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명언이다. “바쁜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

언제나 그래왔듯 우리는 이 공포와 불안의 시기를 어떻게든 살아낼 것이다. 그러니 슬퍼하고만 있을 수 없지 않은가? 슬퍼하고 불안해하며 지내기보다는 더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내일을 살아낼 중요한 아이들이 있으니까.

기약 없이 개학을 기다리던 아이들은 어느새 온라인 개학을 했고, 한 학기를 마쳤다. 우리 아이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교실에서 마음껏 웃을 날을 위해 우리는 슬퍼하는 대신 꿀벌처럼 각자의 위치에서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이다.

그만 슬퍼하자. 그리고 안전수칙을 지키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 그러다 보면 우울증과 슬픔 대신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가장 경이로운 선물이 되는 그날이 다시 오지 않을까?

<구성 : (사)한국문인협회 김포지부 고문 이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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