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형
안동대학교
(철학)명예교수

철학자 플라톤은 <이상국가론>을 말했다. 그는 국가를 구성하는 계급을 세 개로 나누고 각 계급을 특성화하여 계급마다 도달할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덕이라고 불렀다. 이 덕이 잘 실천될때 국가는 그 기능을 최대로 발휘할 것으로 믿었다. 계급은 생산, 수호, 통치의 직능을 가지며, 그것은 각각 욕구, 기개, 이성을 발휘하는 사람들의 군거집단이다. 이들이 직능을 이상적으로 발휘할 때 실현하는 덕은 각각 절제, 용기, 지혜가 되며 이것이 세 계급 모두에서 이루어질 때 이것을 따로 선(善)이라고 하는데, 이 네 가지 덕목을 통상 플라톤의 사주덕(四主德)이라고 부른다.

플라톤은 계급을 인간의 신체에 비유하여 생산계급을 배, 수호계급을 가슴, 통치계급을 머리에 빗대어 그것의 덕목으로 절제, 용기, 지혜를 강조하는데, 이것을 영혼삼분설이라고 한다.

이런 덕목은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사람을 교육을 시켜 20세가 되면 평가를 해서 일정한 수준에 도달한 사람만 더 교육을 시키고 나머지는 생산계급으로 편입하기를 제안했다. 또 10년을 교육시켜 평가를 해서 수준에 미달한 사람은 수호계급으로 편입시켜 국가를 받들게 했다. 수준에 도달한 사람을 더 교육시켜 마지막으로 통치계급에 편입시킴과 동시에 출중한 사람을 뽑아 쉰 살이 되기까지 철학적 훈련으로 덕을 함양시켜 국가의 지도자로 삼도록 권고했다. 플라톤은 최고의 통치술은 온갖 지적 훈련을 거쳐 지혜를 갖춘 철학자에게서 나온다고 믿었으므로 그는 최고의 정치가는 철학자이자 왕인 사람이 맡아야 최고의 국가를 만들 수 있다고 보았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철인왕 philosopher king이다.

플라톤은 아테네의 민주정치가 빚어낸 선생 소크라테스의 독살을 보면서 중우정치의 환멸을 맛본 나머지 이상적 정치제도로 왕도정치를 주장하면서 철인왕의 도래를 고대했었다. 그러나 정치의 현실은 늘 이상을 등진다. 고대 그리스나 현대국가에서나 간에 철인은 왕이 될 생각이 없고, 왕은 철학을 통해 정치를 하지 않는다. 따라서 플라톤의 철인왕은 역사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플라톤의 통치철학은 여전히 유효하다. 유럽의 선진국은 늘 이것을 염두에 두고 정치를 작동시킨다. 현재 계급을 직능으로 이해한 삼분설을 염두에 두고 통치를 실현한다.

생산자나 수호자의 부분적 사고로 정치에 미숙하게 뛰어들지 않는다. 즉, 욕구나 기개의 차원에서 배나가슴으로 정치활동은 하지 않는다. 플라톤 이래 정치를 최고의 종합적 예술로 간주하는 유럽인은 국가의 구성원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노력에 머리로 정치를 한다. 자신들의 이념실현이 아니라 국민들의 행복 실현을 위해 지혜를 짜내는 데 집중한다. 지나친 충동이나 이념적 파쟁은 간헐적으로 일어 났다가 사라졌다.

우리나라의 현재 정치는 안타깝게도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기개를 펼친다. 머리에서 보면 양팔은 한 몸에 붙어있는 가까운 지체인데 반해, 가슴에서 보면 한 팔은 다른 팔과는 정반대편에 붙어있는 전혀 다른 지체이다.

이쪽 팔이 좋으면 저쪽 팔은 싫다. 이렇게 대한민국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네편 내편으로 가르고,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극단적 파당정치를 하는 바람에, 나라의 형국은 엉망이 되고, 국민의 삶은 피폐해지고, 급기야 옳고 그름의 기준조차 모호해졌다. 이것은 차가운 머리 대신, 뜨거운 가슴을 작동시킨 까닭이다. 수호계층인 군인이 전장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며 자기의 결정을 절대화하듯이, 현실정치를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일을 전투적으로 처리하는 수호계층의 심리는 기개를 최고의 미덕으로 삼고, 사건을 단순화시켜 호불호로 구분 짓는다. 이런 가슴의 정치는 전체를 지혜롭게 종합하고 합리적으로 조화를 조성하는 철학적 통찰력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슴으로 수행한 정치는 독일과 일본군국주의가 보여주듯이 역사상 불가피한 오점을 남겼다.

이제 우리는 플라톤의 제안을 다시 새겨 바른 정치를 되찾아야 한다. 기개를 통해 모든 것을 일사천리로 처리하는 방식은 방호직능에나 통용된다.

정치는 지혜가 필요하며, 철학적 통찰력을 요구한다. 지혜를 통해 각 직능의 사람들이 각각의 덕목을 실천하도록 인도하고, 통치자는 이 책임을 자각하는 사명을 가져야 한다. 자기중심의 뜨거운 가슴을 내려놓고 국민을 위한 방편을 제시하는 차가운 머리를 가진 지도자가 필요한 통치자(대통령, 철인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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