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석(李揆錫) (주)풀무원 대표이사/사장

올해로 창업 20주년 맞는 (주)풀무원의 창업멤버

상장회사 CEO로 고향 떠나 살다보니 가족·친구에 빚진 기분

“항상 받아주고 언제나 기다려주는 김포, 노후 돌아와 살고싶다”

옛 김포군산림청 1호 조합장을 지내신 부친 이건종(91)씨의 5남5녀 중 막내로 태어난 이규석(52) (주)풀무원 대표이사·사업부문 사장의 출생지는 통진읍 마송리. 마송초등학교 졸업 후 서울로 유학, 수성중·중앙고를 나와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정치학 석사가 어떤 경로를 거쳐 식품회사 사장이 되었을까. 대학원 졸업 후 학교에 남는 길과 사회로 진출하는 방법 두 가지 길을 놓고 고민하던 그는 해병대 장교로 자원입대해 소위로 1년, 중위로 2년 근무했다. 굳이 해병대로 간 이유를 물으니 해병대 본 고장인 김포 통진의 기(氣)를 받은 것 같단다.
당시는 1980년대 초, 군부시대라 군인을 우대하는 분위기여서 취업이 잘됐다. 한국건업, 벽산그룹, 한국화약 등을 거쳐 흥국생명에서 영업소장으로 일하는데 84년도에 현 (주)풀무원의 CEO인 남승우 사장이 ‘능력있다고 소문난’ 그를 찾아와 함께 일해볼 것을 권해 현 부천시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인 원해영씨와 남승우 사장, 그리고 이규석 사장이 공동으로 풀무원식품(주)를 법인화해 오늘에 이르렀고 지난 5월12일 창사 2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13살까지 김포에서 성장했지만 고향에 대한 추억은 많다. 운동을 좋아해 4학년 때부터 학교 축구대표를 맡았고(그때 함께 뛰던 친구 중엔 통진신협의 전석철 전무도 있다,) 축구부 주장을 하던 6학년 때는 각 면 대항으로 비기고 있던 게임에서 패널티킥을 잘못 차서 졌던 기억이 남아 있다고. 52∼53세가 되어 머리가 희끗해진 당시 친구 20여명은 ‘송우회(松友會)’라는 이름으로 두 달에 한 번씩 모여 서로 격의없이 친목을 나눈다.
이 사장의 형제는 5남5녀로 그 중 1남1녀는 성장기에 세상을 떠났고 남은 4남4녀 중 맏형 이규세 전 경기도의회의장이 부친을 모시고 고향을 지키고 있으며 모친은 한달 전쯤 노환으로 작고하셨다. 큰형인 이 전 의장과는 20년의 나이차가 나서 동생으로서 형이 어려웠는데 고향을 지키며 지역봉사를 많이 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럽다고. 부친과 큰형을 뵙기 위해, 또 집안이 커서 일이 많아 김포에 2주에 한번 꼴로 온다는 그는 “태어나고 성장한 김포를 떠나 상장회사 CEO가 되니 고향에 빚을 진 기분”이라며 “부모님을 고향이나 고향친구들한테 맡긴 것 같아 항상 미안한 마음이다. 그래서 또 고향이 아니겠는가. 고향은 나를 항상 받아주고 언제나 기다려주었다. 친척과 친구들이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길 바라고 나 또한 노후에는 김포로 돌아가 형님 옆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 사장 일가가 소유하고 있는 통진읍 마송리 일대 땅 1만여평을 비롯한 가옥·전답등은 택지개발예정지구에 포함, 모두 수용된다. “다른 곳 신도시 발표할 땐 남의 일 같았는데 막상 내 앞에 그런 일이 닥치니 허해지더라. 발전의 긍정적 측면을 인정하나 머릿속에 있었던 옛날 고향이 사라진다니 안타깝다. 산과 논과 밭이 있던 곳에 온통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안 좋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 아니겠는가”며 신도시 개발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향을 잃은 셈이 돼버렸다고 섭섭함을 비쳤다. 덧붙여 그는 김포가 모범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도시로 성장하길 바라며 제대로 된 복지시설이 있고 쾌적하고 아름다운 계획도시가 될 수 있도록 종합적이고 장기전략적으로 신도시를 계획하고 건설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상장회사 CEO로 성공한 비결을 물으니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간단히 답하면서 그동안 많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당시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으며 미션에 대한 책임감이 높은 편이라고 자평했다.
현 거주지는 분당. 부인과의 사이에 2남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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