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지의 대형마트 모두 석권

▲ ◇ 사이버212L ◇ 유로212L신형 ◇ 장난감카트 ◇ 주니어카트-레인보우
▲ ◇ (주)삼보사장 전창옥씨.
생산자동화율 90%. 국내시장 점유율 1위. 통진면 마송리 (주)삼보(대표 전창옥)의 수식어이다.
삼보는 대형할인점, 백화점, 하이퍼마켓, 수퍼마켓 등에서 사용하는 쇼핑카트, 진열대, 운반기기 및 제품진열에 필요한 소도구 등을 납품하는 연매출 200억대의 통진면 대표적 기업중 하나다.
삼보의 쇼핑카드 생산 전과정은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도 가능하다. 사람의 손을 필요로하는 것은 쇼핑카트를 정비하는 정도. 17억을 투자해 산업용 로봇과 자동화 설비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자동화기기도입으로 24시간 자동생산시스템과 대량생산이 가능해져 매출액은 02년 130억에서 03년 200억으로 대폭 증가했다.
국내시장의 1위 시장점유율 삼보는 이마트, 까르프, 농협 하나로클럽, 롯데마트, 월마트, 이마트, 테스코등 국내외 최고의 유통업체와 연간계약 조건으로 납품하고 있다.
굴지의 대형 할인마트를 공략하기까지 삼보의 기술개발 노력은 대단했다. 20건의 관련 특허가 이를 반증한다. 전사장은 기술 개발을 위해 미국, 독일등 수많은 선진국들을 벤치마킹했다고 말했다.
외국계 대형할인 마트에 납품당시 국산 카트는 쳐다보지 않을 정도로 콧대가 높았다고 전사장은 회고했다. 하지만 국내 체형에 맞는 맞춤형 카트라는 점을 집중 부각, 삼보는 국내소재 외국계 대형마트도 석권하게 됐다.
삼보는 2000년 ISO 9001,Q 마크등을 획득했고 1998년 중소기업대상수상(경기도), 1999년 신지식인상수상과 2003년에는 벤처기업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여장부 전창옥사장
(주)삼보를 운영하고 있는 전창옥(여 67)사장. 전사장은 오늘도 어김없이 카트생산현장을 둘러보며 생산오류등을 체크하고 있다. 환갑을 훨씬 넘긴 여장부다.
전창옥 사장은 36년간 철재제품을 만져왔다. 종로에서 삼보상사를 창업할 60년대 당시 여성이 사업에 뛰어든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상황.
전사장의 속칭 ‘장사꾼기질’이 돋보이기 시작한 것은 50년전 1ㆍ4후퇴시절이다. 당시 전사장의 나이는 고작 13살.
전사장의 가족들이 모두 열차 위에서 이불 덮고 남쪽으로 피난갈 당시 “언니들은 두려워 열차위에서 내려오지 못한채 소변도 위에서 해결했죠. 제가 열차밖으로 내려와 이곳 저곳을 누비며 끼니를 해결했습니다” 고 회고했다.
전사장은 대구에 도착해서도 미군이 남겨논 담배등을 팔아 가족들을 챙겼다.
이때부터 전사장의 장사꾼기질과 여장부기질이 차츰 드러났다.
전사장의 36년 철재인생이 시작된 것은 덕성여자대학교 약대를 졸업한지 5년째가 되던 해.
당초 서울대 응용미술학과를 학비문제로 중퇴한 것이 연이 되어 덕대 졸업당시에도 동기들의 졸업작품을 도맡아 했으며 졸업후 5년간의 교직생활 당시에도 철에 대한 미련과 장사꾼기질을 뿌리치지 못했다.
전사장은 약대 졸업후 시작한 5년간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철로 된 정원인테리어 소품이나 화장대 등 철재 악세사리를 만들어 대학가 까페등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전사장은 이어 68년 삼보상사를 창업하고 본격적인 철재 인생을 시작했다.

여자 ‘박정희’
창업후 전사장은 1년의 단기 계획과 5년의 중장기 계획을 동시에 수립해 회사를 운영해 갔다. 이때부터 여자 박정희란 별명이 붙어다니게 됐다. 당시 박정희대통령이 집권기간인 1963년~1979년과 맞물렸기 때문에 박 전대통령의 5개년 계획에 빗대 주위로부터 여자 박정희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고.
또한 맘먹으면 꼭 이루고야 마는 성격과 1등 아니면 안된다는 성격등도 자주 박 전대통령과 비교됐다.
전사장은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나폴레옹의 말을 인용, 목표를 설정하고 성공에 대한 확신만 있다면 모든일이 가능하다면서 사업시작후 한번도 후회하거나 계획이 빗나간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전사장은 60년대 후반 생선을 10만원에 사다 12만원에 팔아 부녀사업 먼저 시작했다면서 새마을 사업도 박정희 전 대통령보다 먼저 시작한 것 아니냐고 한마디 했다.
전사장은 또한 사업외 라이온스클럽회장, 서대문구 어머니회장등을 도맡아 할 정도로 사회일에도 열성적이었다. 하지만 새벽에 아이들 도시락을 꼭 손수 싸줄 정도로 가사일에도 충실했다.
전사장은 시간이 부족해 대신 잠을 줄여 아주 어릴적을 제외하곤 60평생 5시간이상 자본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전사장의 꼼꼼한 성격 때문에 삼보는 30년간 탄탄대로를 달려왔다.
하지만 삼보도 한때 부도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98년 IMF 당시 달러화의 강세로 무려 10억 가까운 환차손을 맞은 것.
당시 30년간 기업을 운영해온 전 사장은 삼보가 마치 자식같아 버릴 수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또한 직원들도 생계를 꾸려나가는 가장이니 도저히 팽개칠 수 없더라고 .
전 사장은 저임금 전략을 활용, 인력구조조정없이 IMF를 극복해 갔다. 이로인해 98년 경기도청 유망중소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김만구기자 mk@i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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