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효

성냥

정영효

말하자면 재빠른 판단 같은 것이다 툭, 하는 순간
자국을 채우면서 무너질 교각을 건너는
마침내 확신에 도달하는 가정처럼
온전한 빌미를 딛기 위해 형체를 추적하는
함정에 가까워지는 건너편과
사라질 직전까지 자리를 겨냥해야 하는 위기
불이라는 것 사물을 쫓는 날쌘 투기는
소모될 길이를 세며 솔직해진다
편리가 익숙해져 낭비를 감추더라도 이것은 당연한
그래서 이변을 기대하기 힘든 기회
단번이 내미는 빠듯한 곡예를 만진다
지친 질량을 버리고
복종을 거부할수록 더욱 드세질 후문을 붙잡는다
순간이라는, 얼이 빠져버린 고통은
속박이라 불러도 좋을 성질이라서
어딘가로 던져줘야 할 성냥을 끝까지 들고 있으면
생몰의 거리에서 잠깐
남은 어귀와 다급한 집념이 어긋날 듯하지만
검은 뒤꼍이 이미 물러나기 시작한다
도착이 안내하는 원근이 허방 너머로 미뤄진다
사그라지는 귀퉁이에서 완성되는 붕괴, 결국
단번의 부족함이 잇는 방향은 의심이 없어서 다급하다
반복된 각오처럼 열기로 이어지는 마지막
다 타버린 길이에 내가 화해하고픈 방해들이 남는다

[정영효 프로필] 경남 남해,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 감상]
요즘은 보이지 않는 성냥, 옛날 시골에서 쓰던 아리랑 성냥, 비사표 성냥, 팔각 성냥, 딱성냥, 아득하게 기억나는 그 이름들이다. 성냥을 키고 불을 붙이고 성냥이 꺼지는 그 짧은 순간에서 삶의 단면을 끌어낸 시인의 눈초리가 매섭다. 성냥을 그을 때 타는 적린의 냄새 속에는 고향이 숨어있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연초 냄새가 그립다. 한 번뿐인 생의 시간을 확 긋고 검은 재로 사라진 어떤 기억의 편린들. 어쩌다 한 번 켜 보고 싶은.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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