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는 축구부가 있다. 고(故) 이광종 감독이나 김두현 선수 등 유명한 국가대표 축구지도자와 선수들을 배출하기도 하였다.

20년 가까이 학교에서 아이들과 생활을 하다 보니 정말 다양한 축구부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몇몇 아이들은 축구 국가대표로 선발되기도하고 프로리그에 진출해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운동 선수로 성공한다는 것이 정말 쉽지않다. 많은 친구들이 여러 이유로 운동선수로서의 삶을 포기하게 된다. 얼마 전 우리반이었던 인성이가 친구와 함께 교무실 문을 열고 나를 찾았다.

“무슨 일이 있어?

“네. 선생님. 여쭤보고 싶은게 있어요.”

“뭔데? 무슨 일이야?”

“선생님. 제가 지금 운동을 접고 공부를 시작해도 잘 할 수 있을까요?”

인성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초등학교부터 운동을 시작해서 중학교 생활에서는 나름 에이스로 미래가 괜찮았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가을 왕중왕 전에서 부상을 당한 이후 스스로 느끼기에도 기량이 예전만 못한 것 같다는 것이다. 계속 시합에도 나가야 어느 정도 성적을 낼 수 있고, 그렇게 여러 지도자의 눈에 띄어야 대학 진학을 하거나 프로팀에 갈 수 있는데, 도무지 자신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인성이와 이야기를 마치고 나니 예전에 인성이와 비슷했던 철희가 떠올랐다.

“철희야! 요즘 지각이 너무 많은거 같은데, 일찍 오는게 어떨까?”

“····.”

녀석은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린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혼을 낸 것도 아닌데, 다 큰 녀석이 눈물을 흘리다니.

“선생님, 제가 요즘 얼마나 힘들게 학교에 다니는지 아세요? 너무 섭섭해요.”

철희는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학교에 부임해서 처음으로 만난 제자이다. 나의 첫해 제자인 철희. 철희는 고등학교 1학년까지 축구부 활동을 했었다. 시합 중에 무릎을 크게 다치면서 선수생활을 할 수 없어 학업에 열심인 녀석이었다. 녀석은 쉬는 시간마다 옆반 친구에게 영어를 배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수업시간에도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 주었다. 그런 녀석이 내게 섭섭하다며 눈물을 보였다.

오후에 철희를 불러 다시금 이야기를 나누었다. 철희는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학교에 와야 하는데, 김포 시내에서 학교로 오는 버스 시간이 일정치 않아 조금씩 지각을 하는 것이라 했다. 지금은 9시 등교를 시행하고 있지만, 당시 우리학교는 8시까지 등교를 해야 했다.

“철희야, 넌 이제 무엇을 하고 싶어?”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요.”

“너 그림에 재주가 있어? 한번 보여줄 수 있어?”

“아뇨, 그림 못 그려요 그래서 한 번 배워보고 싶어요. 그렇지 않아도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싶었어요. 선생님 저 직업반으로 옮길 수 있을까요?”

“직업반으로? 왜?”

“직업반으로 옮겨서 방과 후에는 학원을 다니고 싶어요. 그림도 그리고, 영어 공부도 제대로 하고 싶어요. 지금 우리반에선 제가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질문을 많이 하는 것도, 야자에 빠지는 것도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서 조심스러워요.”

“···미안하다. 철희야! 네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고민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네 말대로 직업반으로 옮겨서 미술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 수 있도록 선생님이 한번 알아볼게.”

철희와 상담을 마친 후 바로 교감선생님을 찾아가 이과반에서 직업반으로 학급을 옮기는 것이 가능한지 알아보고 조치를 취하였다. 그래서 철희는 우리 학급에서 1학기를 마치고 2학기부터는 직업반에서 학교생활을 하게 되었다.

철희는 3학년이 되었다. 학기 초에 나를 보더니 멀리서 달려오며 인사를 건넨다.

“선생님. 저 오늘 코피가 났어요.”

“야 임마! 코피 나는게 뭐가 좋은 일이라고. 많이 피곤해?”

“저 운동하던 때도 코피 난 적이 없어요. 미술학원에 갔다가 영어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고 있어요.”

“아침에 세수하다가 코피가 났는데,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철희 너 정말 열심히 하고 있구나.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거야! 힘내렴.”

하지만 그해, 철희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철희의 말로는 그림 실력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고 했다. 철희는 재수를 선택했고, 아예 미술학원 근처에서 자취를 하며 대입을 준비하고 있었다.

체육대회 날이 되었다. 작년 우리반은 모든 학생들이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냈지만, 남학생으로만 이루어진 1학년 5반에게 종합우승을 빼앗기고 학년우승에 만족해야 해서 아쉬움이 컸었다. 하지만 올해 우리반 녀석들은 축구, 줄다리기, 풍선 터뜨리기에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어서 오후의 결과에 기대감이 컸다. 그때 철희가 왔다. 검은색 통을 등에 매달고 왔는데, 나를 보자마자 통을 꺼내 종이를 펼쳐 보여 준다.

“선생님. 이거 제가 그린 그림이에요.”

“이게 누구지? 미술실에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아그립바에요. 소묘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그림인데, 오늘 학원에서 처음으로 칭찬을 들었었어요.”

“벌써 3년째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칭찬을 들은 건 오늘이 처음이에요 너무 기분이 좋아서 선생님 보여드리려고 왔어요.”

“자식, 정말 잘 그렸네, 그림을 잘 모르는 내가 봐도 너무 멋지게 그렸네.”

이후 체육대회 오후 일정이 시작 되는 바람에 철희와 더 이상의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그림을 배우며 대학 진학을 준비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는 철희와 다시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해 겨울, 수능이 끝나고 다른 친구를 통해 철희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대학교 디자인과에 합격을 했다는 소식 이었다.

고2가 되어서야 공부를 시작했던 아이가 1년간의 재수생활을 거쳐 전혀 다른 분야의 대학에 입학했다는 사실이 참 대견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오랫동안 철희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다시 연락이 닿게 된 건 당시에 유행한던 SNS인 ‘싸이월드’ 덕분이었다. 싸이월드를 통해 한 친구가 철희와 연락이 닿았고, 그것을 핑계 삼아 학급 회장이었던 정수가 반창회를 열었다.

내가 철희를 비롯한 첫해 제자들은 만났던 나이가 27세였다. 우리의 첫 반창회는 녀석들이 27세가 되던 해였다. 대학 입학 후 디자인 공부를 위해 같은 과 동기와 유학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과 연락이 잘 닿지 않았던 것이었다.

지금 철희는 디자인 회사에 취업을 해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무엇을 하던 모든 것이 늦지 않았다는 것을 직접 깨우쳐 준 철희. 철희와의 만남은 내가 학교에서 만나는 모든 아이들의 현재와 미래를 바라 볼 수 있도록 이끌어준 소중한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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