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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읽는 2020년 한국문화 트렌드
김민정
중앙대 교수,
문화평론가

김민정 (중앙대 교수, 문화평론가)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간을 대하는 방식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전면적인 전환을 요구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란 이름으로 우리는 이웃을 멀리하고 친구를 멀리하고 가족을 멀리해야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무서운 감염력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사람이 사람을 두려워하는 언택트 시대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이 지독한 바이러스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인간관계가 얼마나 상호호환적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될 예정이다. 우연히 한 엘리베이터를 탔을 뿐인데, 잠깐 담배를 같이 피웠을 뿐인데, 우리는 바이러스를 공유하는 ‘친밀한’ 사이가 된다. 하루 수만 명씩 증가하고 있는 전 세계 코로나 확진 현황은 우리의 관계성이 한국을 넘어 세계 구석구석까지 뻗어있음을 증명해준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우리는 서로의 연결고리가 되어 하나의 작은 원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그야말로 지구‘촌’이다.


소설가 조해진과 「완벽한 생애」

지금 여기 우리가 직면한 상황을 떠올려봤을 때 동료 문인 백 명이 투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2020년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에 조해진 작가의 단편소설 「완벽한 생애」가 선정된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조해진 작가는 2008년 출간된 첫 번째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부터 ‘타자의 작가’라고 불리며 현실의 논리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다루어왔다.

소수자를 따뜻하게 끌어안는 조해진 작가만의 연대의 방식은 수상작 「완벽한 생애」에서 홍콩에서 영등포로 온 ‘시징’과 영등포에서 제주로 떠나는 ‘윤주’의 삶을 사이좋게 나란히 서술하는 것으로 형상화된다. 작품 안에서 국적이 다른 두 주인공은 이메일과 메모를 주고받을 뿐 단 한 번도 만나지 않는다.

조해진 작가는 서로 무관해 보이는 두 세계가 접점을 이루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서로 다른 세계에 살아가는 우리가 긴밀하게 얽혀 있는 ‘운명공동체’라는 진실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요즘처럼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얼굴의 전 세계가 한마음 한뜻으로 이어진 적은 없었다. 코로나, 함께 극복해요.


방탄소년단과 <작은 것들을 위한 시>

전 세계를 하나로 묶은 것은 사실 코로나 바이러스보다도 BTS가 먼저였다. 대중음악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BTS와의 첫 기억은 음악프로그램이 아니라 9시 뉴스였을 것이다. BTS에게 열광하는 외국 소녀팬들을 배경으로 ‘제2의 비틀즈’가 등장했다는 앵커의 보도를 들었거나 미국 뉴욕 UN본부에서 연설하는 리더 RM의 당당한 모습을 보았거나 UN연설에서 RM 김남준은 “진정한 사랑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를 주제로 “여러분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피부색은 무엇인지, 성 정체성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말하세요.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면서 여러분의 이름을 찾고, 여러분의 목소리를 찾으세요.”라고 말한다. 그들이 외친 ‘Speak yourself, love yourself’는 아름다운 노랫말로 그치지 않고 일상과 실천의 영역으로 깊게 파고들었다.

글로벌 인기 토크쇼 <앨런쇼>에서 방탄소년단은 한국어로 노래하고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이 전 세계적인 아이돌이 되는데, 비영어권 나라의 중소기획사에 소속된 아티스트라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BTS 라이브 콘서트에서는 세계 곳곳에서 접속한 다양한 얼굴의 75만 명이 함께 모여 그들이 부른 한국어 노래를 들었다. 국적, 인종, 젠더, 성 정체성, 장애 등 세상의 모든 경계를 뛰어넘어 BTS는 다양성의 아이콘이 되고 ‘작은 것들의 시’가 된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 브리핑에 수어 통역사가 등장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된 것처럼 말이다.


펭수와 유튜브 <자이언트펭TV>

뽀로로와 방탄소년단을 보고 대스타가 되기 위해 한국행을 결심했다는 ‘남극 출신’ 펭수는 기존 EBS 어린이 캐릭터의 전형성을 벗어난 파격적인 언행으로 화제를 모으며 구독자 200만 명의 골드버튼 유투버가 되었다. “늘 쓰고 다니는 헤드폰의 브랜드는 뭐냐”는 질문에 펭수는 ‘김명중’이라고 답한다. ‘회사 사장님 성함을 함부로 말할 수 있느냐’는 지적에는 “사장님이랑 편해야지 회사도 잘 되는 겁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이보다 대범한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존재할까. 사람이 아니라고, 한국인이 아니라고, 펭수는 절대 주눅 들지 않는다.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타파하는 펭수의 거침없는 행보는 소속사 EBS에서 시작해 경쟁사인 다른 공중파 방송국으로 이어진다. 타 방송국의 프로그램에 거리낌 없이 출연하는 것은 물론이고 ‘더 좋은’ 조건을 제안받고 심각하게 이직을 고민하기도 한다. 평생직장이란 단어가 유효성을 상실했듯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기존 플랫폼의 질서는 흔들리고 있다. 플랫폼보다는 콘텐츠, 그러니까 크리에이터의 중요성이 더 커진 것이다. 역시 사람이 미래다.

한때 코로나에 감염된 외국인 확진자의 치료비 전액 지원제도에 대한 논란이 불거진 적이 있다. 한국인도 아닌 그들을 왜 우리의 세금으로 치료해주어야 하는가, 비난 여론이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역시나 플랫폼이 아니라 콘텐츠이며 국적이 아니라 사람이다.


유재석과 예능 <놀면 뭐하니>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인간관계는 좁아졌지만, 그 덕분에 예전보다 가까워진 사람이 한 명 있다. 바로 나 자신이다. 타인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줄어든 만큼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은 오히려 많아질 수밖에 없다. 수백 번을 휘저어야 만들 수 있다는 ‘달고나 커피 만들기’가 유행하고 모든 사람이 혼자 놀기의 달인이 된 것도 다 그 덕분이다.

최근 화제성 지수 1위를 기록한 <놀면 뭐하니?>는 예능프로그램으로는 획기적으로 고정출연자가 유재석 한 명이다. 유재석 혼자 트로트도 불렀다가 닭도 튀겼다가 드럼도 쳤다가 한다. 유고스타, 유산슬, 유르페우스, 닭터유 등 유재석의 ‘부캐’는 최근 프로젝트 혼성그룹 ‘싹쓰리’에서 ‘유두래곤’으로 변주되면서 스펙트럼을 계속 넓혀가는 중이다. 릴레이와 확장을 기반으로 다채로운 매력을 갖춘 유재석 유니버스(YOO니버스)가 구축되는 것이다.

이제까지 다양성의 세계가 타인의 다름을 수용함으로써 세계의 크기를 확장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2020년 지금 여기’의 다양성은 내 안의 타인을 깊이 이해하고 인정해줌으로써 나의 세계가 점점 견고해지는 방향으로 진행 중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다양성 존중의 최신 버전인 셈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 그동안 등한시했던 나의 숨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는 시간을 갖는 건 어떨까. “놀면 뭐하니”

김포신문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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