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사설·기고
[기고]<혹부리 영감의 김포 이야기> 화목한 부부
최영찬 소설가

이 시대 사람들은 재담을 처음 들어서인지 내가 살던 선조 시대보다 반응이 좋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화목한 부부 이야기입니다. 어떤 코흘리개가 장가를 들었습니다. 맞이한 신부는 신랑보다 대여섯 살 많은지라 꼬마 신랑은 응석을 잘 부렸습니다. 어느 날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밭으로 일하러 나갔을 때 새색시는 빨래하고 있었습니다. 한참 일에 열중하고 있는데 서당에 갔던 꼬마 신랑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색시가 빨래를 널고 있는데 신랑이 치맛단을 부여잡고 칭얼거리자 번쩍 들어 초가지붕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돌아보는 순간 시부모들이 골목을 돌아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새색시는 너무 놀라 주저앉을 뻔했습니다. 아무리 아내가 나이가 위라 해도 하늘 같은 남편을 업신여기면 당장 쫓겨나는 시대였으니까요. 그때 꼬마 신랑이 말합니다.

“이 박이 익었나? 저 박이 있었나?”

신랑이 초가지붕 위에 걸린 둥근 박들을 작은 주먹으로 두들기는 것이었습니다. 왜 지붕 위에 올라갔느냐고 물으면 박이 익었는가 살피려고 했다고 변명해주려고 한 것입니다.

“그 후에 색시는 집에서 쫓겨나지 않게 배려한 꼬마 신랑을 받들며 화목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다음은 노부부의 이야기입니다.”

아들이 셋 있는 노부부가 있었습니다. 두 아들은 장성해서 자식을 낳았고 막내는 요즘 혼례를 올렸습니다. 시어머니는 아침부터 두부를 만들기 위해 콩을 삶았습니다. 세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두부 만드는 법을 배우고 콩물이 엉킬 때까지 칭얼거리는 손자를 보겠다고 업고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방에서 부엌의 동정을 살피고 있던 시아버지는 이제나저제나 두부가 될 때를 기다렸습니다. 부엌에서 시어머니 대신 두부가 엉기는 것을 보고 있던 큰 며느리가 논에서 돌아온 남편이 시동생과 함께 들어오자 얼른 순두부를 한 그릇 떠서 간장을 넣어 주었습니다.

단숨에 순두부를 먹는 것을 본 둘째 며느리가 이번에는 자기도 주걱을 들어 순두부를 떠서 간장을 넣어 남편에게 건넵니다. 이 광경을 문틈으로 내다본 시아버지는 입맛만 다셨습니다.

“체면에 며느리에게 나도 순두부 먹겠다고 하기가 민망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막내가 서당에서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아까부터 손윗동서들이 하는 모양을 지켜본 막내가 어설프게 국자로 순두부를 뜬 다음에 간장을 넣어 코흘리개 남편에게 건네줍니다. 후르륵 후르륵.” 내가 순두부를 마시는 시늉을 하자 손님들이 따라 합니다.

“이것을 지켜본 시아버지 마음이 어땠을까요? 모두 자기 신랑 챙기느라 방에 있는 자신을 몰라주는 것이 섭섭하지만 문 열고 나가서 나도다오, 하기에는 체면이 서지 않았습니다.”

순두부가 조금 더 엉키면 두부가 됩니다. 체념하고 문틈에서 눈을 떼는데 시어머니가 손주를 등에 업고 들어왔습니다. 아이를 며느리에게 넘기고 부엌으로 들어온 시어머니가 묻습니다.

“아버님에게는 드렸느냐?”

그제야 며느리들은 자기 남편만 챙긴 것을 알았습니다. 시어머니는 막 두부가 되어가는 순두부를 듬뿍 떠서 간장을 넣고 말했습니다.

“너의 아버님이 순두부를 얼마나 좋아하시는데.”

하고는 방으로 와서 건넵니다. 얼른 순두부 그릇을 받아든 시어버지가 흐뭇한 표정으로 지으며 말했습니다.

“나도 마누라가 있다!”

내가 시아버지의 흉내를 내며 말하자 손님들이 뒤집어집니다. 그날 나는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호주머니가 묵직하게 돈을 받고 가벼운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늦은 밤까지 양성지 영감의 방은 불이 켜있고 발성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김포신문  gimpo1234@naver.com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김포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포토뉴스
  • 1
  • 2
  • 3
  • 4
  • 5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